마음이빚진

배우 이얼 님의 명복을 빕니다.

나어릴때 2022. 5. 26. 23:41

 


배우 이얼 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뉴스를 포털에서 보았다. 선명한 마지막 기억은 출연 사실을 미처 몰랐던 [82년생 김지영]에서 아버지로 나온 모습을 보고 놀라고 반가웠던 순간이다. 어렸을 때 연극 [마술 가게]의 주인공이었던 그를 좋아했었다. 박광정 아저씨의 연출작이어서 보러 갔고, 상도 받고 하면서 은근히 장기공연을 하던 터여서 친구들을 꼬셔가며 여러 번 봤었다. 언젠가 대학로 넓은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목격한 이얼 님은 김현식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느낌이기도 해서 괜히 더 애틋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얼마 후 뤼미에르 극장에서 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짧은 여행의 끝]을 보았고, 난생처음 극장에 달랑 혼자 앉아 본 영화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주목 받고 많이 알려지는 게 반가웠고, 이후 [사마리아]를 부러 극장에 가서 보기도 했었다. 단체에서 일하며 연극과도 영화와도 멀어졌던 시기가 있었고, 늘 궁금해할 만큼의 관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씩 생각이 나면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의정부 어디에서 식당을 한다던가 하는 소식을 접한 적도 있었던 것 같고,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82년생 김지영]에서 82년생의 아버지로 손색이 없는 모습을 보며 세월을 실감했었다. 처음 알게 된 계기가 [마술 가게]여선지 아무래도 내게는 박광정 아저씨가 함께 떠오르는데,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의 삶에 주관적인 기억을 엮어 대상화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암튼 그렇다. 며칠 전 지인의 컬러링으로 '꿈이 있는 자유'의 "소원"을 무척 오랜만에 들으며, 투병 중이던 박광정 아저씨의 싸이홈피에 흐르던 노래라는 게 떠올랐었다. 그때 많이 슬펐고 아주 가끔은 [서울 노트]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떠나신 지 벌써 14년이 흘렀다는 것도 새삼스럽다.

이얼 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모르고 수십 년 연기 인생의 어떤 순간들을 잠시 보았을 뿐이지만, 그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도 몰랐지만, 닿지 못할 마음이라도 평안한 곳으로 가시기를 빌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