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32


'벼랑에서 살다' 는 조은이라는 부드러운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본업(?)이 시인이라는 그녀의 시편들을 나는 아직껏 만나보지 못했지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조용히 풀어내는 산문은 내게 충분히 풍부하고 충분히 시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비슷한 느낌의 영화 'before sunset', 마치 9년이나 조용히 기다려왔던 듯 반가운 마음으로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은 영화의 ost cd와 함께 내게 건네졌다. 침대 맡의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귀로는 줄리델피의 음성을, 눈으로는 조은의 문장을 음미하며 나는 오랜만에 참으로 순정한 영혼의 포만감을 느꼈다.
 

책 속의 그녀는 스스로를 너무나 보잘 것 없고 평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온갖 납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돋보이려 기를 쓰는 사람들로 가득찬 시끄러운 세상에서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귀한 존재감으로 빛을 발한다. 걱정스러울만큼 어둡고 불온해 보일만큼 냉소적이며 불안해 보일만큼 건강하지 못했던 그녀, 순수한 동심의 빛깔로 기억되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건조하게 회고하는 행간에서는 스스로를 쉬이 꺾을 수 없었던 강인한 영혼의 부드러움과 여유가 진하게 느껴진다. 주눅들지 않은 조용함과 소란하지 않은 열정이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아님을, 가난한 집의 엉뚱한 고집장이 아이였던 그녀의 어린 날들과 극심한 정신적 성장통의 기록에서 어렵잖게 읽을 수 있다.
 

무엇이건 너무나 화려해진 세상이다. 텅빈 현재에도 불구, 너도나도 미래를 향해 내달려야 하는 세상인 것 같다. 과거에의 집착만큼이나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없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허한 현실에 대해 성찰할 작은 여유도 없이 우리는 모두들 참 바쁘고 각박하게 내몰리며 살아가고 있다. 조용한 열정을 품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급하게 휘몰아치는 세상의 물결 뒤로 침잠해버리고, 어지간한 자존감이 아니고서는 때때로 찾아드는 이유없는 허탈감이 너무 버겁다. 영혼과 정신이라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우울과 성찰이라는 말 역시 비생산적으로 치부되며, 정신없이 달리면 결국엔 모두가 결승점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환상만이 가득찬 세상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오늘이다.
 

소리 높임 없이, 자신을 내세움 없이, 크게 잘난 것도 없이, 적당히 맞춰주고 적당히 섞여들며 한 골목을 지키고 있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은 위안이었다. 주관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해주었고, 비타협적이되 조용할 줄 아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우리 모두를 둘러치고 있는 가족과 이웃이라는 때로는 부담스런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도 그녀의 정신은 자유롭게 물결치며 세상을 유영하고 있다. 시인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작가의 눈을 감지 않으며, 그녀는 나와 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은 이야기들을 우울하되 따스하게 전해준다. 나이를 잘 먹어간다는 게 그런 것 아닐까.


2005-02-07 01:33, 알라딘



조용한열정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조은 (마음산책,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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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31


사실은 '베스트셀러'가 먼저였고, '베스트셀러'의 박민규를 알게 해 준 언니의 간곡한(?) 권유로 목록에 넣게 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그 다음이었다. 우연스럽게 잠시 마주했던 그에 대한 기억에서, 너무너무 재미있다는 언니의 독후감은 그다지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아 한참을 밀쳐두다가, 너무나 우울한 몇 날중 문득 집어들어 넉넉히 일주일은 기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던 그의 두번째 소설은 꽤 힘이 셌다.
 

그리고 방금 전에 나는 '지구영웅전설'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삼미..'에서 그가 보여준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과 이도 저도 아닌 것에 대한 경쾌하고 정밀한 묘사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느껴도 좋다면 소설 속에서 그가 지향하는 세상의 모습 또한 나로서는 동의할 만한 것이었다. 좀더 재기발랄하고 좀더 냉소적이며 좀더 빤짝거리는, 그리고 꽤 진하게 마이너리티를 풍기는 남자 은희경 쯤으로 나는 그에게 유쾌한 기대를 걸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D.C 코믹스가 제작하고 지구 전체가 열광한 주요 캐릭터들에 대한 유년의 추억은 사실 내게 없다. 슈퍼맨의 망토나 원더우먼의 팬티 색깔은 그저 원색이었겠거니 하는 정도의 기억이고, 배트맨은 아쉽게도 영화로조차 만난 일이 없으며, 아쿠아맨은 솔직히 그런 게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유년 시절 만화영화에 대한 추억은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내가 태어나 꾸준히 살아온 이 지구에 그 많은 영웅들이 그렇게나 심대한 영향을 미쳤었나 싶을 만큼 좀 생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과 만화의 중간 쯤에 걸터앉아 이리로 저리로 나를 안내하는 작가의 발랄한 상상력과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개연성 덕분에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어린 시절 세상은 온통 이분법이다. 내게 뭔가 중립적이거나 복합적인 것을 고려할 능력이 없기도 했겠지만, 누구나에게 어린 시절의 세상은 엇비슷하다. 자라면서 그리고 세상사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나와 나 아닌 누군가에게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대략 인정하게 되고, 조금 더 지나다보면 세상에 아주 나쁜 놈은 또 별로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의 일은 대체로 양면이 있기 마련이라는 어줍잖은 긍정이 일상에 배어들기 시작하면, 사실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어 라는 위험한 안주로 빠져들기도 한다.
 

도식적이고 단선적이라는 지적에 일면 수긍을 하면서도, 이 만화같은 소설을 읽으며 유쾌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인파이터가 되고프다는 작가의 식지 않은 열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나 뻔히 아는 일이고 세상은 이미 그렇게 재편되어버렸으니 이제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는, 그 시스템에 적절히 적응하며 사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한낱(?) 소설에서조차 확인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일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소설은 소설, 작가의 모든 진심을 행간에서 읽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리 비틀고 저리 뒤집는 장난 같은 이야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지구영웅전설' 식으로 말하자면 '그만' 진실이다. 일상에 묻혀 잊고있었던 세계의 공공연한 비밀, 그 진실을 이렇게나 우습고도 슬프게 마주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2005-01-31 02:49, 알라딘



지구영웅전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대표소설
지은이 박민규 (문학동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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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30


진솔하고 부담없는 산문집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철저히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고심한 결과라도, 나의 선택이 100%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삶이 책에서 멀어질수록, 내게 낯선 작가들은 많아지고 그만큼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아지며 선택의 폭은 좁아지는 까닭이다.
 

황인숙 시인의 글을 처음 만났다. 그녀의 시 한 편 접한 일 없는 나의 선택에 일단 힘을 실어준 것은 책 말미에 실린 고종석의 발문이었다. 상대를 귀하게 여기며 다감하게 쓰여진 그 글은, 일면식도 없는 작가를 향한 시샘마저 불러일으키는 예쁜 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내 모교가 있는 동네 해방촌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벼랑에서 살다'의 좋은 독후감이 이유였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고비라 여기며 나잇병을 앓는다는 서른살이 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두 살을 더하자니 어감도 이상하고 뭔가 속에서 삐걱거린다. 너무 무감한 것이 오히려 이상해 바하만의 '삼십세'를 읽으며 억지로 의미를 부여했던 나의 서른은 아무래도 너무 심심했나보다. 나이를 먹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씩 관심이 가는 것이 혼자 사는 여인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물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그들과 나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은 꿈마저 외면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주 자질구레한 이야기들까지 담아낸 그녀의 만필에는, 내가 궁금해하는 글쓰는 사람의 일상 혼자사는 여인의 일상 사십대의 일상이 고루 들어있다.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쓸 필요가? 할 정도로 솔직하고 꾸밈없이, 그녀가 거치는 일상의 일들이 마치 일기처럼 보여진다. 타고나길 한자에 문외한인 자신의 이야기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범한 실수담, 모르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녀에게서는 느껴지는 것은 사십대 소녀의 아기자기함과 여린 마음이다. 발문에서 보인 작가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작가가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풀 한 포기 베어지는 아픔도 함께 느낄 줄 아는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만이 작가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은 수정되었지만. 하지만 황인숙의 글을 읽다보면 어지러운 세상살이 비껴서지 않으면서도 사심없이 본래의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천상 소녀의 여리고 깨끗한 마음이 느껴진다. 착한 사람이 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어린 시절의 믿음을 그녀의 만담 속에서 다시 만났다.


2005-01-13 04:54, 알라딘



인숙만필
카테고리 시/에세이 > 에세이
지은이 인숙 (마음산책,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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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29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나는 '오빠 생각'이라는 노래 앞에서 진지한 의구심과 거부감에 몸을 떨곤 했었다. '오빠 생각'이라니. 철없던 시절 눈만 마주치면 싸우기 바쁜 혈육 이전에 적이나 마찬가지였던 하나의 오빠를 제외하고는 도무지 떠올릴 오빠가 없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정말이지,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던 '그 오빠 생각'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표제작의 제목이라는 점 외에는 크게 의미 둘 바 아니지만,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강렬한 제목 앞에 늘 떠오르는 생각 조각이다. 그런 오빠를 가진 나였음에도,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에는 진정 서울 가신 오빠가 뒤춤에 비단구두라도 감추고 돌아온 양 반갑고 황송한(?) 마음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읽은 지 한참 됐지만, 실은 마이리뷰를 썼다가 서버 불안정으로 모두 날려버리기도 했었지만, 심한 집착형 인간임에도 불구 무엇 하나 쌓이는 것이 없는 나날이 너무 오래 되어 삶이 허망하던 차. 새해와 함께 벌이는 나홀로 캠페인 '마이리뷰를 쓰자'도 실천할 겸 다시 골라잡았다.
 

이 책은 탄핵 정국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봄, 안양에서 광화문을 왕복하는 전철 안에서 첫 장을 넘겼었다. 거의 열달의 시차가 있지만 불과 며칠 전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비슷비슷하고 그러그러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물론 '김영하표'에 대한 기본 기대는 가지고 있었지만) 별 생각 없이 펼쳐들었던 돌아온 오빠는 내게 심한 유쾌함과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역시 그는 얄미울 만큼 탁월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던 것이다.
 

여덟 편의 작품은 각각 상이한 소재로 상이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볍고 간명한 문체 속에 겹겹의 의미들을 포진시켜 놓고 읽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재주는 전 작품에 걸쳐 기복없이 발휘되고 있어 좀처럼 녹슬지 않는 그의 필력에 감탄하게 만든다. 그의 글 속에 배어있는 특유의 어떤 쿨함은 여전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흡수하며 함께 나이 먹은 그의 주인공들은 이제 타고난 치기와 냉소만을 트레이드 마크 삼지 않는다. 또 가장 그답지 않은 테마라고 생각했던 가족과 사랑 따위(?)가 때로는, 개별 존재를 압도하는 하나의 가치로 보여지기도 한다. 물론 끊을 수 없는 혈친애를 뛰어넘는 엽기성으로 가득한 해체 가족의 우스꽝스러움을 내보이고, 사랑과 연애에 수반되는 비밀스런 모멸의 기억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으로 헛헛한 웃음을 자아내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비디오로 '주홍글씨'를 보게 되었다. 많이 보도가 되었었다는데,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던 나는 영화를 보며 내내 어찌 이리도 소설과 같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책을 다시 뒤적이다 보니 드는 생각이, 그의 소설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너무나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딱히 어느 작품의 누구랄 것은 없지만 그가 주인공들에 불어넣은 숨결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기운들이 각기 '김영하'라는 택을 달고 숨쉬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느낌. 훗날 언젠가는 살아남은 주인공들이 모두 만나 돌아오는 장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김영하의 발랄한 단편에서, 한 고비 넘어 귀환하는 그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5-01-13 04:05, 알라딘



오빠가돌아왔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영하 (창작과비평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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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24


12월에 나온 윤대녕의 책을 1월이 되어서야 읽었다. 윤대녕에 대한 나의 절절함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이렇게 확인한다. 한때 윤대녕은, 설명할 수 없는 내 속의 모든 혼란들이 가닿는 마지막 안착지였다. 이십대 중반과 후반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스무살만 같은 방황 속에 있던 내게 윤대녕은, 책장과 행간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와 모두 같지 않은 사람살이에 대해 나직하고 무감하게 말을 건네고는 했었다.
 

그러나 자로 잰 듯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고 더 이상 너울너울한 무언가를 좇아 몽상하고 망상하며 삶의 시간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삼십대 초반의 성인이자 심지어 금연을 결행중인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참 여전도 하다. 윤대녕은 언제나 같은 주제와 소재의 반복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를 만큼, 여전히 비슷한 색조의 공간 속에 비슷한 안색의 주인공들이 비슷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어슬렁대고 있다. 물론 일관되게 화자로 지칭된 '그 옆 사람'이 워낙에 독특한 아우라의 소유자여서 더 그런 느낌일 수도 있겠다.
 

불혹을 넘어 다시 쓰는 자기소개서처럼 유난히 자전적인 느낌이 강한 글들을 보며 자꾸만 불필요한 상상으로 빠져들기도 했지만, 산문과 소설의 중간쯤이라는 작가의 말이 화자=작가라는 등식 성립에 일말의 진정제 역할을 해주었나보다. 군더더기 없이 흡인하는 그의 문장과 우연으로 점철되었지만 억지스럽지 않은 이야기와 비현실적이지만 가슴 설레는 정서를 다시 접하며, 그에 대한 중독의 전력을 가진 나는 오랫동안 뻣뻣하게 굳어있던 마음의 결에 여린 숨결이 불어넣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 뛰어들어 생활의 주최자가 되기로 결정한 이후, 손과 발과 머리에 밀려 뒷전이 된 심장이 오랜만에 다시 생동하는 느낌이랄까. 꽤 오랜 시간 동안 삶의 에너지였던 어떤 불가해한 관계들, 일상에 밀려 기억의 바닥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깔려있거나 말거나 했을 그것들에 대한 아련함과 절절함이 살아온다. 언젠가부터 추억으로 화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나 역시 많이 변한 탓이겠지.
 

역시 윤대녕, 이라는 약간의 흥분과 희열 속에, 오랜만에 눈과 심장과 양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함께 떨리는 독서를 마쳤다. 책장을 덮고 나니 삼십대 초반의 어느 겨울이다. 그러나 책의 여운이 안겨주는 상념에 젖어 삶이 아스라히 멀리 보이는 일 따위는 아마도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젊어서 한 때의 일'이라는 작가후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나마 젊어서 한 때 그를 만나 홀로 달뜨고 아프고 가슴 저렸던 추억들이 아주 잊혀지지는 않으리라는 안도감을 맛본다. 처음 만난 그 날 이후 오랜 동안 참으로 변함없는 그는, 나의 한 때를 증거해주는 내 것이 아닌 거울이다. 일상의 피곤에 젖어 살아가는 내게,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지 않을 만큼의 자극을 안겨주는 내 삶의 동창생인 그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한 가지, 그의 책이 더 이상 예쁘고 세련되지 않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05-01-13 03:25, 알라딘



열두명의연인과그옆사람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윤대녕 (이룸(김현주),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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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22

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부터 기대로 기다렸고, 바쁜 와중 틈틈의 독서로 이른 봄내 책장을 덮치락하면서 참 행복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부터 마음의 감동을 온전히 끄적여두고픈 욕망이 가시질 않았지만, 책의 두께만큼이나 장대하고 거대한 한 생의 기록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 것인지 갈등하다가 그만두는 반복이 여러 번 있었다. 워낙이 기록에 집착하는 스스로를 위한 숙제로 오늘은 꼭! 했더니 처음 떠오른 진심어리되 유치한 제목, '목사님 사랑해요!'.

94학번인 내게 그가 행한 사회적 활동은 대체로 과거형으로 각인되어있었고 그의 죽음은 위대한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의 소회로 지나쳐갔었다. 대학 시절 가끔 그의 시집을 들춰보기는 했었지만, 그 질박한 언어와 진심어린 가슴에 감동했다기보다는 주로 교지에 들어갈 화보를 고민하다가 막힐 때 불순한 의도로 뻗치는 손길이 가닿는 몇몇 시집의 리스트 중 하나였다. 오히려 문성근이나 문호근의 활동으로부터 그들의 아버지임이 연관되어 가끔 떠오르는 정도였다. 이후로는 '윤동주 평전'을 읽으며 알게 된 그의 어린 시절이나 고구려인의 기개를 이어받은 북간도 아름다운 젊은이들에 대한 가슴 뻐근한 선망의 기억.
 

1918년 북간도에서 태어나 1994년 마감한 그의 인생은, 우리 현대사의 최격동기와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꽤 극적인 운명의 궤적을 그리며 맞아떨어진다. 물론 위대한 누군가의 삶에 대한 사후 해석의 경우 역사와 사회와 개인의 개연성은 결과론적 분석을 통해 온갖 유의미한 가치들이 덧붙여지곤 하지만, 내가 느낀 문익환의 경우에는 그것이 어떤 선민의 운명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만큼 지극한 것이었다.
 

호방하고 대아적인 북방민족의 기질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소시민적 가족 이기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국가와 민족을 향하는 정의와 실천의 결사체인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난 문익환. 훤칠한 키에 창백한 피부, 왕성한 학구열과 예민한 감수성에다 어린 시절 이미 속된 세상 저 너머를 희구하는 성직에의 꿈을 간직했던 병약한 신체의 소유자. 내 속의 노란 관심을 굳이 감추지 않겠다는 고백 하에, 청년기까지의 그의 모습은 진정 내가 충분히 열광할 만한 좌파 순정만화의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다.
 

윤동주, 장준하, 정경모 등 그의 인생에 적잖은 영향을 준 지인들과의 만남과 관계, 단 두 명의 통역관만이 배석한 정전협정의 순간을 목도한 개인적인 경험 등은 그가 거인으로 운명지워진 선택받은 자라는 내 속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후진을 양성하며 성서 번역에 매진하는 성직자로서의 활동에 전념하던 그가 인생의 중년기를 지난 후 사회 문제에 직진 투신하는 모습은 마치 고요한 삶 속에서 내공 수련을 마치고 강호에 내려와 그 어떤  시련에도 꿋꿋이 대적하며 만면의 여유를 감추지 않는 고수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면 너무나 불온하고 가벼운 비교가 될까. 
 

물론 작가 김형수의 대상에 대한 극진한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경도가 행간 곳곳에 묻어나고 때로는 심하다 싶으리만치 먼저 감동한 흔적이 없지 않지만, 나로서는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마저도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재야 활동과 방북, 수도 없는 구속과 투옥을 불러 온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굳이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역사 위에 그가 남긴 발자국이 피워낸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를 우리 시대의 어둠과 그늘이 너무나 멀리 날려버리고만 왔다는 아쉬움, 사후 1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느끼는 후예로서의 안타까움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자꾸만 작아져가는 나의 조국에 혹은 그런 조국 덕분에 가끔씩 마음이 위축되는 나에게,  미래를 긍정하고 역사의 전진에 믿음을 더해줄 수 있는 또 한 사람의 감사한 발견. 체 게바라니 마르코스니 하는 동시대를 함께 한 파란 눈의 그들을 향한 관심 못지 않게, 문익환 목사님이 젊은이들 사이에 자랑스러운 '우리의 사람'으로 회자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더불어 결코 아름답지 않은 시대와 시절을 통과하는 중에도 진정 치열한 삶을 통해 주위를 온통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의 내부에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아주 천천히 역사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기를.


2004-05-27 02:10, 알라딘

 


문익환평전(역사인물찾기15)
카테고리 시/에세이 > 시/에세이문고 > 시/에세이문고 일반
지은이 김형수 (실천문학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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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21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도 없는 선택을 하지만 사실 하나하나 의식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아주 작은 갈등조차도 개입되지 않는 즉자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에서부터 갖은 기회비용과 반대급부와 가능성을 고려하며 숙고 끝에 내리는 결정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우리의 삶은 모조리 선택하는 일로 가득한지도 모른다.

'선택'이라는 간명한 제목의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권인숙이라는 필자가 동력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무척 좋아했던 손석희 아나운서의 참아누르는 분노가 느껴지는 차가운 멘트로 전해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라는, 사건을 둘러싼 정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는 나이였지만 분명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강렬한 느낌의 뉴스는 어린 시절의 나를 한동안 어지럽게 했다.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성고문 수사관 문귀동이 기독교 집사였다는 통탄 어린 말씀을 설교 시간에 하셨던 것도 같다.

차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성고문이라는 가혹하고 치명적인 사건의 주인공인 그녀의 얼굴은 두터운 검은 뿔테안경 너머의 굳은 표정으로 내게 오래 기억되었다. 이후 가끔씩 접하는 그녀의 행보도, 내 어린 시절에 이미 창백하게 박제화된 그녀의 이미지를 지워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레 내게서 멀어져갔다.

책에서 그녀는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으로 혹은 피해자로, 주목되는 동시에 갇혀버린 공공의 시선 속에서 보낸 시간들에 대해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모르기는 해도, 그녀의 일상에 늘 함께했던 것은 불특정다수로부터의 무책임하고 가차없는 시선과 더불어 자의보다 커져버린 결과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과 자신 속에서 번져가는 무기력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제 마흔을 넘어 또 가파른 삶의 고비를 간신히 넘어, 이국땅에서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는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의 치열함으로 지켜낸 빛나는 선택의 주인공이 되었다. 조금은 실망스러울만큼 비루하고 누추한 삶의 이력까지를 낱낱이 공개하며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대체로 편협하고 고정적이다. 누군가의 빛나는 시절에는 지나치게 열광하지만 그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의 반응이나 잊혀진 시간 동안의 일상의 치열함에 대한 평가는 서글프리만치 냉정하기도 하다. 물론 타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나의 시간을 한 순간도 쉼없이 살아가듯 누구나 일상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순간순간의 치열함을 동력으로 삼은 선택은 결국 아름다운 빛으로 화한다는 당위적인 진실이었다.


2004-02-05 23:33,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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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권인숙 (웅진닷컴,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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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20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고, '벼랑에서 살다'라는 인상적인 제목에 잠시 멈칫한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의 '김홍희'라는 이름 석자와 출판사 마음산책. 너무나 많은 작가와 꼭 그만큼의 남다른 감성과 특별한 자의식들이 있다. 많이(?) 이름나지 않은 조용한 작가들의 수필류 읽기를 즐겨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굳이 이런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낼 까닭이 있었을까 하는 심드렁한 독서도 있었던 지라 초면의 마주침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지난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일요일. 오랜만에 주어진 며칠 간의 휴가를 여유롭게 보냈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생활로의 복귀가 못내 부담스러웠던 나는, 오전 내내 하루 종일 집안에 쳐박혀있을 것인가 연휴 동안 그냥 흘려보낸 시간을 간만의 서울행으로 만회해 볼 것인가 고민하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별 것도 아닌 결정에 꽤 골머리를 앓다가 외출을 결심하고 나선 길은 인사동과 대학로를 향하고 있었고 그 때 책장 앞을 서성이다 골라든 책이 바로 '벼랑에서 살다'였다.

안국역까지 가는 한 시간여 동안, 오랜만에 여유롭게 책을 읽는 스스로를 분열된 자아인 양 의식적으로 느끼면서도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행간으로 빠져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책날개의 소개뿐. 하지만 독신의 여류작가라는 사실로부터 먼저 상상하게 된 어떤 높은 자의식과 완고한 고독보다도 더 그녀 주위를 두텁게 감싸고 있는 것은, 그녀가 살고 있는 공간을 에워싸는 따스한 시선과 소박한 사람들과의 느슨하나마 여유로운 관계들이었다. 

다소 시적이고 상징적인 제목에 비해, 책 속의 내용은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상냥한 기록으로 채워져있다. 작가는 화려하지 않은 동네의 한 구석 집을 차지하고 사는 소박한 이웃의 삶에서부터 조근조근하게 책장을 채워나간다. 물론 평범치 않은 글쓰는 직업에 아직까지는 평범치 않은 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감성과 정신은 분명 남다른 무언가가 있겠지만, 내 보기에 그것은 특출난 정체성마저도 부드럽게 감싸는 작가의 깊고 너른 사람과 세상을 향한 애정이 아닌가 싶다. 

벼랑. 자칫 위태롭다고만 느낄 수 있는 그 곳은, 어쩌면 한없이 내려앉기로 혹은 한없이 비워내기로 한 어떤 자의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달복달하는 삶에서는 순간순간이 늘 벼랑이지만, 이미 저만치 물러앉아 있는 사람에게 벼랑이란 그다지 큰 의미가 아닐런지도. 약함과 두려움을 감추지 않지만 담담하고 평온하게 혼자인 그녀의 일상과 감상을 들여다보며, 그 여유와 다사로움을 배우고 싶어졌다.


2004-01-24 00:19, 알라딘



벼랑에서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조은 (마음산책,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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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19


10여년 전쯤 읽었던 '개미'는 상상력 제로에 과학적 사고에 있어 심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내게도 꽤나 흥미진진한 독서였다. 이후 연달아 출간된 독특한 저작들과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주문과도 같은 재미있는(?) 이름 그리고 동그란 안경 너머로 재기어린 눈동자를 빛내는 그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들에게 친숙해졌고 마치 귀화한 외국 연예인의 그것만큼이나 흔해져버렸다. 하지만 각종 지면을 범람하는 베르베르를 난 10년 간 외면했다. '뇌'니 '타나타노트'니 하는 묵직한 제목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도 같고, 꽤 재미있기는 했지만 '개미'로 충분히 복잡했던 나의 뇌는 차마 그를 감당해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도 같다. 태생의 스케일이 무척 협소하고 편협한 편인 나는, 서른을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작고 사소하고 미시적인 관점으로 세상 모든 것에 반응하고 사고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는 글도 대체로 온갖 일상의 소소한 떨림과 자잘한 반향들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들이다. 

'나무'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보통명사이자 물적 대상이다. 이 책을 집어든 건 그러니까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게다가 양감이 느껴지는 블루톤의 책표지와 정감이 가는 재생용지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꽤나 마음에 드는 조우의 한 이유였다. '나무'를 읽으며, 얼마만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만에 범우주적인 세계 속 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사람마다 타고난 사고의 범주가 있다고 일찌감치 단정짓고 살고는 있지만, 이렇게나 분방하고 자유롭게 그 어떤 한계에도 구애받지 않고 상상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꽤나 부러웠다.

물론 문화 지체가 일종의 현실태가 되어버린 문명의 세기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미래의 문제는 개인을 넘어 인류 전체의 문제로써 집단적인 궁금증과 환상을 자아내는 영역이며, 그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 혹은 의심에 착안한 무척이나 기발한 발상의 작품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갖은 문화 예술 작품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글쓰기가 한 해의 최고의 책으로까지 선정되는 것은 좀 넘치는 찬사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무'에 실린 열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대체로 하나의 주제를 일관성 있게 관통하고 있다. 일반적 인식 너머에 있는 그 어떤 우월한 존재로부터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영향을 받고 있는 군상들의 묘사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통렬히 풍자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중심적 존재를 자임하는 인류의 오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공적이고 사적인 억압 기제들과 갖은 편견에는 씁쓸한 비소를 날린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매트릭스'니 '반지의 제왕'이니 '지구를 지켜라'니 하는 범우주적인(?) 미래 영화들이 떠오른 것은, 담론의 소재로 삼은 대상의 교집합적인 요소와 더불어 이 작품들이 인류에 던지는 메세지의 유사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미래는 갈수록 예측 불허로 치닫고 있는, 또 하나의 세기말을 넘어선 오늘의 우리에게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조금은 황당한 상상이라 할지라도 꽤 설득력을 지닌 우화다. 경쾌한 사고와 간결한 문장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책 속에 나오는 '가능성의 나무'처럼, 끝을 모르는 무한 질주에 경도된 인류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우주의 모든 생명과 공생할 수 있는 겸허한 존재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너무 무거운 독후감일까.


2004-01-23 22:52, 알라딘



나무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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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15


고맙게도, 연말연시 일주일 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부대끼면서 늘 기다리는 것은 일요일 한낮의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내 방, 무려 일주일간의 그 햇살 가득한 한낮을 차분하고 고요한 독서로 가득 채우겠다던 마음은 그러나 해를 넘기며 늘어지는 낮잠과 하릴 없는 소일들로 흘러갔고 이래서는 안되지 싶어 결심하듯 잡아든 올해의 첫 책이었다.

사위가 고요한 새벽에 마주한 검은 책장 속 창백한 그녀의 얼굴, 돌아보면 삶이 늘 '목마른 계절'인 것은 누구에게나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다른 천재와 함께 타고난 그녀의 고독과 집착에 함께 침잠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일제강점과 동족상잔으로 얼룩진 어두운 현대사와 결코 동시대로 합치시킬 수 없을 만큼 빛나고 또 그늘진 그녀의 시대에 한껏 경도되어 뮌헨의 회색빛 하늘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우연히 가닿은 손끝에 걸려든 서른 한 살로 인생을 마감한 그녀, 그리고 나는 새해를 맞으며 그 서른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그 누가 뭐라해도 어른인 나이를 살아내야하는 나,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어찌할 수 없는 고독과 몸부림은 아프고도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많은 것을 지니고 태어난 그녀의 삶은 모든 것이 너무나 넘쳐나서 늘 모자랐는지도 모른다. 인식에 온 생애를 바치겠다던 그녀의 성정은 너무나 풍부했고 세상의 미세한 흔들림도 비껴가지 못할 만큼 예민한 촉수는 단 한 순간도 쉴 틈 없이 그녀의 심신을 뒤흔들었다. 나는 그녀가 이룬 지적 성찰과 인식의 순례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생에 걸친 그녀의 공개된 기록을 곱씹으며, 그녀만큼 살아낸 동년배로서의 공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상에 외롭지 않은 영혼이 어디에 있으며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 존재가 어디에 있겠는가마는, 그 외로움과 그 집착이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위협하는 싸늘한 공기가 되어 돌진하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단 하루도 제 정신으로 살아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비범을 타고난 인물이 그 비범을 향해 내리꽂히는 세상의 무게를 감내할 수 있는 강한 심장 또한 선사받지 못했을 때 얼마나 처연하고 쓸쓸해지는가를 새삼 그녀에게서 느낀다. 한 평생을 공감의 대상에 연연해하는 동시에 인간의 비극이 홀로이지 못한 데서 온다는 이율배반 속에 몸서리쳤을 그녀의 삶은 어쩌면 반생이었기에 그나마 행복한 것은 아니었을까. 

늘 인식에 목말라하며 정신의 결핍에 갈급해했던 그녀의 삶은 어쩌면 철없는 불꽃놀이였는지도 모른다. 순수하고 정갈한 양심으로 세상의 빛을 마주하려했던 그녀의 삶을 다시 읽으며 새삼 그녀의 존재에 감사했다. 운명적으로 평범할 수 없는 존재의 고독을 감히 내가 알 길 없지만, 사후 그 많은 동경과 선망의 가슴들을 그녀가 어디에선가 어루만지고 있다면 영혼이나마 따스하게 적셔지지 않았을까.

사후 40년이 다 되도록 끊이지 않는 골방의 숭배가 비록, 그녀만큼이나 세상을 무기력하고 권태롭게 느끼는 부유하는 영혼의 소녀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이라고 해도 시대를 앞서 불꽃처럼 살다간 전혜린이라는 한 존재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의와 식과 주만으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는 삶의 한 영역이 엄연히 공존하며, 무엇인가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것 때문에 지금도 끝없이 고통에 겨워하는 누군가가 세상 한 구석에는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전혜린,이라는 이름은 피폐해진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으로 나아갈 원동력으로 삼을 충분한 이유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2004-01-04 02:27, 알라딘



전혜린
카테고리 역사/문화 > 역사인물 > 한국역사인물
지은이 이덕희 (이마고,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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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