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봄날 같아서, 어제가 입춘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월화수 집에 있다가 오늘은 좀 먼 외출, 거제로 영화 보러 다녀 왔다. 예고편만 대여섯 번 봤더니 [페어웰]이 꼭 보고 싶어졌고, 왜인지 [해피 투게더]를 보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나간 김에 함께 보려고 예매했다. cgv거제까지는 버스를 두 번 타면 갈 수 있는데, 서울과 달리 지도앱의 실시간 정보가 틀린 경우가 많아 소요시간 예상이 좀 어려웠다. 며칠 전부터 한 번씩 검색을 해보면 어쨌든 2시간은 잡아야 하는 것 같았고, 운행시간 텀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1시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혹시 버스가 너무 안 와서 늦으면 3시 20분에 시작하는 [해피 투게더]는 나중에 통영에서 보고, 일단 cgv거제까지 가는 길을 경험해 보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거제대교를 건넌 직후 '신촌'(아트레온이 있었으면 싶은 뻘생각;;;)이라는 곳에 내려 디큐브백화점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경로였는데, 첫 번째 버스는 25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지만 다음 버스는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출발했다. 거제는 단체에서 일하며 몇 차례 가봤지만 일정은 주로 대우조선 근처였어서 버스 타고 지나는 길은 초행인 셈, 중간에 '성포'라는 곳이 있었는데 탁트인 바다가 시원하고 산책로와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나중에 놀러나와도 좋겠다 싶었다. 목적지 정류장에 내리니 2시 31분, 버스앱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도착이어서 주변을 돌아봤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다고 나와 그 방향으로 걷다 보니 신축 아파트 공사장이 있고 그 앞은 공터, 공원을 조성 중인지 좀은 어수선한 가운데 어떤 부분에는 보도가 깔리고 식재된 나무와 함께 벤치가 놓여 있었다. 어릴 때 김현식 아저씨가 묻힌 남서울공원묘지를 찾겠다고 무작정 성남행 버스를 타곤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떨 때는 버스가 한창 건설 중인 신도시 분당을 이리저리 돌기도 했다. 도시가 온통 공사판이어서 그 거대한 음산함과 삭막함이 오래 인상에 남았었는데, 규모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수직으로 높이 솟은 콘크리트 건물과 크레인을 보며 그때가 떠올랐다. 참 오래 전의 일인데.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오니 7시 10분쯤, 운 좋게 얼마 안 기다려 버스가 왔고 길도 막히지 않아서 집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오전에 엄마가 카톡으로 좋은 글과 영상을 보냈길래 이모티콘으로 답하고 말았는데, 버스 안에서 또 엄마가 쓴 긴 톡을 받았다. 어제 통화하고서 역시나 엄마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고 내가 힘들까봐 걱정하면서도 나름 연락을 자제하려 애쓰고 있는 것 같다. 하필 거제까지 가서 영화 보고 오는 버스 안이다 보니, 내가 너무 나쁜년인가 싶기도 하고 부모자식은 원래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난 자식이 없으니 평생 알 수 없는 마음이겠지만, [페어웰]에서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살았어도 애틋하기만 한 할머니와 손녀를 보고 난 뒤라선지 더욱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반부에 깔린 "come healing"이 좋았어서 리핏원으로 계속 듣고 있는데, 마음이 괜히 센치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