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전후 독일의 현장 취재기'라는 부제, 서정적인 느낌의 제목과 내용을 구성하는 시공간적 배경의 이질감이 궁금증을 부추겼다. 1946년 10월 15일부터 12월 10일까지, 스웨덴의 작가 스티그 다게르만은 독일 각지를 방문해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여정은 베를린, 하노버, 뒤셀도르프, 루르 지역, 쾰른,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뮌헨, 뉘른베르크, 다름슈타트로 이어졌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항공편으로 귀국한다. 당시 독일은 영국, 소련, 프랑스, 미국이 나뉘어 점령하고 있었고 베를린은 4개국 공동 점령, 10월 20일에는 선거가 치러졌다.
표지 사진 속 젊고 이지적인 얼굴의 주인공, 스티그 다게르만은 처음 접하는 이름이다. 1923년생인 그는 10대 초반부터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슴 운동에 참여했고 1945년에는 군대 복무 경험을 담은 소설 [뱀]으로 스웨덴 문단의 큰 주목을 받은 작가라고 한다. 이 책에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현장 탐사 보도 연재를 기획하고 스티그 다게르만을 파견한 스웨덴 일간지 <엑스프레센>에 1946년 1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게재된 글들과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추가된 두 편의 글이 담겨 있다. 그가 메신저로 발탁된 이유는 반파시스트 작가로서의 기고 활동 이력과 완벽한 독일어 구사력 그리고 첫 번째 아내인 독일인 아네마리 괴체의 남편으로서 친지 방문 목적의 지역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책은 "아네마리에게"라는 헌사로 시작되는데, 아내는 나치 독일을 탈출해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생디칼리스트로 스웨덴에서 1943년 스티그 다게르만과 결혼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독일 난민들은 "왔고, 오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도착한 사람들의 숫자로써 의미가 있게 되었"(20쪽)고 "미움과 환영을 모두 받는 이들의 존재는 굶주림과 목마름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도착했기 때문에 미움받으며,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는 의심과 당연히 품게 되는 불신, 당연히 사로잡히게 되는 절망에 자양분을 주기 때문에 환영받는다."(20쪽)고 다게르만은 썼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뎌야했지만 "지하실의 습기와 폐결핵, 그리고 식량과 옷, 난방의 부족에서 정치적 교훈을 얻는 것이 독일 지하생활자들의 의무라고 생각"(30쪽)하는 것이 당시 언론과 대다수 사람들의 견해였던 것 같다. 와중에 치러진 선거와 관련해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의 이름은 자유 선거가 아니라 식량 공급이 개선되는 상황, 희망이 있는 삶이었다."(36쪽)며, 보통의 독일인들의 삶을 더욱 척박하게 만든 연합군 점령국들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는 십여 편의 산문에서 전쟁과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독일 여러 지역에서 생활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발목까지 잠길 만큼 물이 고인 지하실에서 젖은 가지로 불을 지피고 어딘가에서 구한 감자를 조리하는 사람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학교에 가라고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사람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생존하느라 나치 독일의 잔학 행위에 대한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다게르만은 도덕과 인륜과 정의의 이름으로 모든 독일인들을 심판하는 연합군 점령국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거나 당연히 무시되는 현실을 자세히 묘사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탈나치화라는 이름의 또다른 전체주의, 독일을 사분한 점령국 군인들의 억압과 제국주의, 독일인 내부를 가르는 계급적 차이와 궁핍의 정도 등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전용 호텔에 머무는 국제 기자단과 다른 관점을 견지하며 취재 중인 자신의 한계도 누락하지 않는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쾰른과 함부르크의 참상, 최빈층의 비참, '계급의 경계를 뛰어넘은 영국의 폭탄'과 '폭격당하지 않은 은행계좌'의 진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지만 첨예하게 이익집단화한 부유한 바이에른과 타지역의 경멸, 청년들의 불안과 억울함을 배가시키는 탈나치화 정화심판소의 모순과 이중성, 정화심판소 법정 심리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상실과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들, 나치 법원의 검사였다가 패전 후 농장주로 잘 살아가는 누군가, 점령국 병사들을 상대하는 술 취한 금발의 독일 여성들, 반나치 혁명을 우려한 서방 자본주의 승전국의 용의주도한 병사 귀향 조치와 저항 조직의 무력화, 1945년 봄 국민돌격대에서 도망친 어린 반항아들이 교수형 당한 숲에서 울려퍼지는 미군의 멧돼지 사냥 총소리 등등. 사건과 사실과 인상 들을 꼼꼼히 기록한 다게르만의 글은 때로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들 덕분에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끝모를 고통에 지쳐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그 역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팔인석 객실에 서 있지만 우리는 스물다섯 명이다."(158쪽) 함부르크로 돌아가는 기차역에서 그는 독일에 더 있을 수 없다며 미국행을 열망하는 무일푼의 정비공 소년을 만나 함께한다. 기차표 살 돈을 빌려주고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부르크에 내려 추위 속을 잠시 함께 걷지만, "그런 다음 우리는 '독일 민간인 사절'이라 적힌 표지판이 붙은 호텔 앞에서 헤어져야 한다. ... 나는 찬물과 더운물이 나오는 따뜻한 방의 푹신한 침대에서 잘 것이다. 하지만 게르하르트 블루메는 바깥 함부르크의 밤을 계속 걷는다. 그는 항구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168쪽)
이어지는 마지막 수록글 "문학과 고통"에서 스웨덴행 비행기에 탑승한 그는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 날마다 배가 고파야 한다는 것, 지하실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것, 순간순간 절도의 유혹과 싸운다는 것, 일 분마다 추위를 떨쳐내야 하는 것, 가장 살기 고된 삶이라도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170쪽)라고, 여행자에게 문득 떠오른 생각을 기록한다. 그리고 정치범 수용소에 수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쉬는 시간이면 목숨을 걸고 한쪽 구석에서 릴케의 시를 서로 읽어주는 여성들의 이른바 릴케 모임에 속했던 한 사람과 그의 남편에 대해 쓴다. 아내는 다하우 수용소에 8년간 갇혀 있었던 남편의 고통에 대해 쓰고자 하지만 남편은 입을 열지 않는다. 그에 대해 다게르만은 "고통은 겪은 것이며 그 후에는 없어야 한다. 고통은 더러웠고, 혐오스러웠으며, 비루했고, 사소했기 때문에 이를 말하거나 글로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학과 가장 컸던 고통 사이의 거리는 너무 짧고, 고통이 정화된 기억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된다."(182쪽)고 적는다. 때는 1946년이었다.
본문만 따지면 200쪽이 채 안 되는 얇은 책인데 읽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책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무지를 꼽을 수밖에 없고, 두 번째 아내 사이의 딸이라는 로 다게르만의 나로서는 다소 화려하게 느껴지는 장대한 서문도 시작부터 거리감을 더했다. 서문이 아니라 두 번째 해설 정도로 묶여졌다면 책에 대한 선입견이나 긴장감이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박노자의 해설에 이어 옮긴이의 말 다음에 편집 후기까지 후주도 긴 편이니 그랬다면 제대로 읽히지 못했을까? 번역서에서 문체를 언급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중반부까지는 이상하게 적응이 안 되는 면도 있었다. 이 역시 배경지식의 전무함에서 나오는 나비효과, 오히려 다 읽고 나서 돌아보니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박노자의 해설이 큰 역할을 해줬다. 이 글을 쓸 때 이십대 중반이었던 스티그 다게르만은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1954년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9월의 모임 책이어서 읽게 되었는데 모임은 무산되었고, 얇은 책에 담긴 농도와 밀도를 혼자서는 소화하기 어려웠던 터라 뭔가 아쉽다. 세상 참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이상한 독후감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스티그 다게르만•이유진 옮김
2021.10.31초판1쇄발행, 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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