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참 중요하니까 날씨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당일부터 열흘까지 대략의 예보가 나오니 계속 조금씩 변하지만, 내일부터 다음 주 초까지 며칠씩 비가 내리는 건 맞는 것 같다. 비가 오면 하늘이 흐리겠지, 별론데... 그러면 산책은 어떡하나? 내일이랑 모레는 영화를 보러 갈 거니까 비가 와도 걷겠지만 토요일이 문제다. 또 달라질지 모르지만 비가 온다고 되어 있던 다음 주 수목요일이 맑음으로 바뀐 게 변함없기나 바라야 할까?
통영에 살면 보고 싶은 영화를 잘 못 볼 테니까,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cgv서면으로 1박 2일 영화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예상과 달리 롯데시네마에서 적잖은 영화를 보고 있지만, 궁금했던 [운디네]와 다시 보고 싶었던 [굿바이]는 놓치게 될 것 같아 아쉽다. 암튼,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은 관람료가 싸니까 점심 때쯤 출발해 2편의 영화를 보고 싼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2편의 영화를 보고 오는 것, 내가 계획한 월 1회 부산영화여행이고 다음 주에 대망의 1회차가 진행된다.
암튼 내일부터 비가 오는 건 확실한 것 같아서, 맑은 오늘은 이순신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 갈 때마다 강구안에서 동호항 바닷가를 따라 걸었었고 그 길이 약간은 아득한 느낌이 있었다. 지도앱이 알려주는 최단경로는 이전에 갔었던 해안길이 아니라 안쪽으로 걷는 길, 그렇게 가니 영화 보러 가는 길과 걸음수나 소요시간에서 별 차이가 없었지만... 한참을 걷다 만난 막다른 벽의 마지막 이정표가 반가웠다.
이름이 주는 선입견이 있어 나 역시 가보기 전에는 전혀 기대가 없었던 이순신공원은, 맑은 날 가면 저 멀리 한려수도와 망망대해가 조화롭게 탁트인 풍경이라 가슴이 시원해진다. 날씨가 좋아선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좀 있었고, 1월 말까지는 나무데크 보수작업도 하는 모양이었다. 지난해 여러 번 왔었고 무심코 지나쳤던 안쪽의 위령탑을 자세히 본 날은 마음이 숙연해졌었다. 혼자서는 맑은 날 낮에만 왔었는데, 지난 가을 부산 지인이 왔을 때랑 책모임에서 왔을 때는 걷다 보니 해가 진 뒤여서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났다. 1월에, 2월에 하며 놀러오겠다는 지인들은 아직 소식이 없지만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오게 된다면 맑은 날이면 좋겠다. 오늘은 귀가길도 걸을 생각이어서 바다만 좀 보다가 내려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잘 모르는 골목들을 돌아 동피랑에 잠시 들렀다. 따뜻한 날씨였지만 바닷바람은 또 모르는 거라 위아래로 내복을 입고 간 탓에 이순신공원에 도착한 뒤로는 롱패딩을 벗고 걸었는데도 더웠다. 동포루까지 갈 엄두는 못내고 중앙시장쪽 계단으로 내려오며 바라본 하늘, 서포루 옆으로 무지개 비슷한 것이 걸려 있었다. 온전한 무지개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그 색감만으로도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왈칵 반가웠다. 내일부터 비 오고 흐린 날을 앞두고 하늘이 준 선물을 살짝 받은 기분, 그리고 산울림의 "무지개"도 떠올랐다.
'네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께,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 줄께' 언제나 혼자인 내게는 무지개가 필요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