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에 대한 근작이어서 궁금해져 선택하면서도 제목이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신간을 내고 동네책방의 신청을 받아 북토크를 진행하며 받은 감동을 나누고 싶어 방문했던 동네책방 주인들에게 글을 청하고 모아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었다. 책과 동네책방을 사랑하는 40년차 출판인의 마음과 어려운 시기에도 동네책방을 지키고 있는 마음들이 겹쳐져 세상에 나온 책, 엮은 이의 여는 글을 읽으며 그렇다면 이 정도의 제목은 가감없는 진심이겠구나 싶어졌다.
책에는 스무 곳 넘는 동네책방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가본 곳은 하나도 없고 이름을 처음 들어본 곳도 절반 이상이었다. 한 번씩 마음이 동하면 동네책방 관련 책들을 중고로 몇 권씩 사서 읽거나 목차 정도를 훑어 보고 책장에 꽂아두고는 하는데, 그렇게 만났던 몇 군데를 제외하면 완전히 초면인 곳이 대부분이어서 책을 읽으며 미처 몰랐던 어딘가의 동네책방을 잠시 둘러보는 기분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여행하며 동네책방을 들른 적도 없다 보니 제주의 달리책방이나 제주풀무질은 꼭 가보고 싶어지기도 했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하나의 동네책방은 한 사람 혹은 한 가족의 생계수단인 경우가 많지만, 경제적인 이유보다 마음과 삶의 방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일 때가 많다는 걸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확인한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각별함이나 책과 사람을 연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도처의 동네책방으로 새롭게 생겨나고, 그런 공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 덕분에 유지되며 동네책방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상의 환기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동네책방의 색깔과 생존 전략은 제각각이고 보통은 주인의 관심과 성향과 취향이 반영되는 공간일 수밖에 없을 텐데, 준비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점에서 읽으니 모두가 대단하게 보이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약간의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
어렸을 적에 성대 앞 풀무질에 가끔 갔었고 청년들이 새롭게 운영하는 서울풀무질 관련한 기사들도 유심히 읽었던 터라 은종복 님의 글이 내게는 많이 와닿았는데, 26년이나 책방을 하고 실은 망하다시피 해서 제주로 이주해 다시 책방을 연 그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미덥고 고마웠다. 헌신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삶의 절반쯤을 동네책방에 몸담았던 그가 닫는 글 "동네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산다"에서 완전 도서정가제와 출판사의 입고가 조정 필요성과 함께 강조한 "국가기관이나 사회단체에서 돈을 줄 때만 모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모임을 꾸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실은 낯도 가리고 책도 잘 모르는 내가 동네책방을 열 게 아니라, 제주풀무질이 있는 동네에 살면서 든든한 단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엮은 이는 여는 글에서 동네책방을 "지역공동체 문화가 싹트는 곳"이고 "동네책방의 대표들은 책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는 진정한 투사"라고 쓰는데, 누가 동네책방을 하라고 떠민 것은 아니더라도 동네책방의 순기능을 생각하면 독립성과 자생성의 토대를 위협하는 관행과 제도의 개선은 분명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이승환이 출연했을 때 락뮤지션들이 떼로 나와 코러스하는 무대를 보며 왜곡된 음악산업에 대한 시위처럼 느껴져 뭔가 복받치는 기분이 들었었는데, 뜬금없지만 그 기억이 나면서 이 책도 어느 정도는 그런 맥락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10월에 부산에 가면 궁금했던 동네책방 한두 군데라도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춘수·남윤숙·하명욱·임후남·정원경·지은숙·유민정·여태훈·이선경·김현숙·이진·김종원·정보배·은종복·박주현·고승의·송혜령·마스터J·양유정·박진창아·문주현·슬로보트·여희숙·김남기·김영수 / 강맑실
2022.4.25.1판1쇄, (주)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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