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부터 어제까지 본 6편의 영화가 소화불량으로 마음과 머리에 머물고 있는 중이어서, 예매했던 영화가 있었는데 취소했다. 롯데시네마에서의 영화 보기는 만 보 걷기에 적당한 산책길이지만 이동시간을 합치면 최소 5시간 이상 소요된다. 시간 때우기에 좋은 반면 저녁 시간이 다 사라지는 단점이 있고, 실은 그다지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기도 했다.
산책은 주말이니까 여행자들이 좀 있을까 싶어 봉평동 쪽으로 나섰는데, 입구에서 골목으로 올라가려니 문득 귀찮아져서 통영해양관광공원으로 향했다. 구름이 적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아직은 밝은 해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풍경을 구경하다가, 처음으로 대교 바로 아래 모서리까지 걸어갔는데 대교 다리에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써있었다. 누굴까? 뭘까? 사람들은 왜 낙서를 할까? 쓴 사람 입장에서는 선언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디 여행 가서는 물론 분식집 벽 같은 데에도 뭐라고 썼던 기억이 없어서, 저런 걸 볼 때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쓴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글자가 나오게 찍느라 잔뜩 확대했는데, 저기는 산책하는 이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저기에까지 올라가서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글자를 남긴 게 대체 무슨 의도일까, 어떤 의미일까. 약간 '소리없는 아우성'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로서 많이 궁금해졌다. 알 수는 없겠지.
운하해안로에서 왜가리를 두 번 보았는데 한 번은 한 마리, 두 번째는 두 마리였다. 생태나 특징은 전혀 모르는데, (백로나 학은 아니라는 확신 때문에 왜가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라면 좀 미안할 것 같지만. 지금은 달리 부를 이름을 알지 못하니) 왜가리는 개체도 큰 편이고 보통 한두 마리가 있다 보니 볼 때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다. 한 마리가 있을 때는 괜히 외로워보여서 사실 은근슬쩍 감정이입도 한다. 미안...
돌아오는 길에는 탑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낮에 안부 연락을 한 통영산 지인이 지겹지도 않은지 밥타령부터 통영음식타령까지 또 하던 게 생각나서, 굴을 한 팩 사왔다. 생굴은 비려서 안 먹지만 굴전은 간단하니까 저녁으로 먹었다. 7년 넘게 알았지만 밥 챙겨먹었냐는 잔소리 같은 거 통영 내려오기 전에는 들은 적 없었는데, 실은 그것도 마음일 테니 고마운 일이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보낼까 하다가 오글거려서 말았는데, 암튼 덕분에 집에서 굴전을 다 부쳐먹었고 냄새 빼느라 팬 3시간 돌렸다. 1월이 하루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