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라 리비는 195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1968년 영국으로 이주해 성장한 작가라고 한다. "그해 봄,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내 신세와 전쟁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던 때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저자는 며칠 후 스페인의 마요르카로 떠난다. 기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하염없이 울고,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사랑과 다른 악마들]의 주인공 베르나르다 카브레라를 떠올리고 롤모델로 삼으면서, 화장실에 붙은 '골격 구조' 포스터에 무의식 중 사로잡혀 제목을 자꾸만 '사회 구조' 읽어내는 자신을 자각하고 결심한 뒤다.
비행기에서도 '우는 여자'가 되어 도착한 곳은 첫 소설을 쓰던 20대 초반 그리고 한창 사랑에 빠져 있던 30대 후반에 머물렀던, 마을에서 몇 안 되는 독신 여성 마리아가 설계한 "홀로 여행하는 이들이 알음알음 모여드는"(22쪽) 저렴하고 조용한 펜시온이다. 삶에 기진맥진한 저자의 여행에는 편린처럼 떠오르는 과거의 자신, 예전에 만났던 세상이 강요하는 틀을 깬 여성들과 그 틀을 유지하는 여성들 그리고 조르주 상드,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자신의 삶을 개척했던 글쓰는 여성들이 함께한다. 기억으로 인용으로 무시로 등장하는 그들과 피난처를 마련하고 제공한 마리아, 저자는 그들을 떠올리고 관찰하며 여성의 삶에 드리우는 빛과 그늘에 대해 사유한다. 그리고 레스토랑의 3인용 식탁에서 쫓겨날 뻔한 저자의 초대에 응한 중국인 가게 주인의 "당신 작가 아닌가요?" 라는 질문과 대화로부터 "요하네스버그, 1964년"의 기억이 소환된다.
그림책에서만 봤던 눈이 내린 다섯 살 겨울, 함께 눈사람을 만든 밤 아빠는 집으로 찾아온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인종 분리 정책을 믿지 않으면 감옥에도 갈 수 있는 거야.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용감해야 한다, 너뿐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가 용기를 내야 해. 그 아이들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빼앗겼을 테니까."(42쪽) 라고 말한 사람은 마리아, 자신의 딸 탄디웨와 떨어져 살면서 저자와 동생 샘을 돌보는 흑인 보모였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운동가였던 부모와 가족처럼 지내는 마리아, 이따금 방문해 정다운 놀이를 함께하던 탄디웨가 함께하는 세계는 살던 집만큼이나 좁았고, 그밖의 세상은 온통 위험했다.
말이 없고 목소리가 작은 일곱 살 소녀는 정치 수감자인 아빠의 존재와 유대인 가족명 리비(LEVY), 교사의 지적에도 공책의 셋째 줄부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 등으로 교장의 체벌을 당한다. 소녀는 "다들 안전하다고들 말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51쪽) 사실을 처음 이해하게 되고, 교실로 돌아가는 대신 '유럽인 어린이 전용' 구역의 시소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간 결과 얼마 후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더반의 도리 대모집에서 지내게 된다. 벗지 앵무새 빌리보이를 애지중지하고 촌충을 혐오하는 대모와 대문에 써붙인 "무력으로 응대"의 주인공인 남편 에드워드 찰스 윌리엄이 지배하는 집은 안전과 위험의 모순을 깨달은 소녀에게 적당하지 않았지만, 반짝이며 등장한 부부의 딸 멀리사와 정원일을 담당하는 조지프는 소녀의 일상에 활기와 숨통을 제공해준다.
세인트 앤스 수녀원 부속 학교에서 이미 읽고 쓸 줄 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수녀님들이 점토로 빚는 순서에 따라 알파벳 익히는 시늉을 하던 소녀는 어느 날 수녀님에게 아빠가 보내준 편지를 보이며 읽어준다. "아버지가 머릿속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하라고 하신 건 말이야,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라는 뜻이란다."(84쪽), 하느님한테 하라는 뜻이냐는 반문에 말이 없었던 조언 수녀님과의 짧은 대화를 소녀는 행간을 읽는다는 표현을 처음 이해한 순간으로 기록한다. 소녀는 머릿속 생각을 말하는 대신 글로 적었고 대부분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감옥에 있는 아빠와 감옥에 있는 빌리보이, 행간을 이해하게 된 소녀는 자신의 불안과 소망을 투사해 빌리보이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하지만 해방의 반경이 좁았던 빌리보이는 조지프의 곳간에서 발견되었고 소녀는 얼마 후 요하네스버그의 집으로 돌아온다.
소녀가 아홉 살 때 야위고 창백한 아빠가 돌아오고, 두 달 후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한다. 당시의 관습인지 "배가 동케이프주의 포트엘리자베스 부둣가를 떠날 때, 탑승객들이 미리 받은 두루마리 화장지를 갑판에서 풀어헤쳤다. 육지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친구와 가족 들이 휴지 반대쪽 끝을 쥐고 있었다. 배가 바다로 서서히 나아갈 동안 날 송별하러 온 멀리사가 내 두루마리 끝을 내내 붙잡고 있었다."(98-99쪽)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외로운 소녀의 든든하고 지혜로운 플라스틱 사람이었던 멀리사에게 괜히 고마워졌다. "여자애들은 큰 소리로 말해야 돼, 우리가 뭐라건 어차피 아무도 안 듣거든."(69쪽), 부모 몰래 우주선을 몰고 나가고 금지된 사랑과 비밀 생활을 소녀와 나눴던 멀리사의 촌철살인이 매력적이다.
"잉글랜드, 1974년", 열다섯이 된 저자는 "작가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는 어렴풋한 생각"(101쪽)을 실행하며 프랑스의 카페 대신 영국 웨스트핀칠리의 버스 정거장 옆 분식집에 앉아 종이 냅킨에 글을 쓰곤 한다. 저자가 "지혜롭고 슬픈 사람이 된 기분"(110쪽)을 느끼며 "슬픈 여자애를 연기하는 슬픈 여자애"(110쪽)로 성장하는 동안 부모는 별거를 시작했고, 아빠가 떠난 집에는 이집트 출신의 런던정경대 박사 과정 중인 파리드가 오페어로 들어와 남매와 티격태격한다. "너희 나라"라는 파리드의 말에 뼛속까지 영국 사람이 된 듯한 허위의식에 도취되며, 그 어떤 병뚜껑도 온전히 닫혀 있지 않은 불가사의한 집에서 병뚜껑만큼이나 제자리가 없었던 스스로의 처지를 깨달으며 저자의 유년기는 지나간다.
중국인 가게 주인과 와인을 나눠마시며 대화하는 저자 앞에 외투를 입은 마리아가 나타난다. 펜시온에 도착하며 짐짓 숲속에서 길을 잃은 저자를 발견하고 인도해준 그는, 못 본 체하며 지나친 격한 울음 끝에 작은 짐 가방을 들었다. 방이 춥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무시한 오빠와 달리, 저자의 짐을 옮겨 방을 바꿔주고 이불을 더 챙겨둔 뒤였다. 저자는 베르나르다를 중독에 빠뜨린, 자신과 마리아를 떠올리며 중국인 가게에서 산 카카오 99% 초콜릿과 적잖은 현금을 그에게 건네며 진한 인사를 나눈다. 생이 길을 잃은 듯한 시기에 어쩌면 별다르지 않은 상황임에도 다시 한 번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마리아를 위한, 주체적이고 호혜로운 삶을 꿈꾸는 여성으로서 다정한 응원을 담은 선물일 테다.
어디선가 마주친 [살림 비용]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3부작 중 두 번째 책이었고, 이 책이 첫 번째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니 당연하지만 데버라 리비의 이름은 낯설었고, 단단하고 쨍한 느낌의 파란색 표지와 파란색 글씨의 본문 역시 낯설었지만 신선했다. 머지 않은 과거와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건져올린 구체적인 이야기들의 생동감이 좋았고 인용하는 다른 작가들의 문장들 중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많았다. 무심한 듯 등장했다가 시간을 가로질러 새로운 의미로 다시 언급되는 에스컬레이터, 뚜껑, 새장, 오렌지 같은 여러 오브제들의 유기적인 배치와 상징성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인생의 그늘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적당히 가미된 유머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후기와 추천글을 포함해 150쪽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인데도 엄청나게 풍부하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했다.
책 소개를 읽으며 "지은이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모티프를 얻는 한편, 오웰이 간과한 '여성' 작가의 곤경을 직시하는 페미니스트적 성찰을 통해 유년의 회고를 감싸 안고 더욱 깊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는 부분은 이 책이 궁금한 큰 이유였다. 덕분에 책을 읽은 후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으며 각 챕터의 제목인 "정치적 의지" "역사적 동력" "순 이기주의" "미적 열정"이 조지 오웰이 작가가 "글을 쓰는 데에, 적어도 산문을 쓰는 데에는 네 가지 중요한 동기가 있다."고 꼽은 요소들임을 확인했다. 각 챕터에 붙은 제목의 의도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고 적잖은 레퍼런스가 언급되고 인용됨에도 조지 오웰의 비중은 아주 적어서 의아했는데, 에세이를 다시 읽고 나니 조금 환해진 느낌이다.
대체로 흡인력 있었지만 유년기를 다룬 둘째, 셋째 장이 특히 좋았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을 일들을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경험자로서 담담하고 생생하게 풀어내는 글의 온도가 마음에 들었다. 첫째 장에서 가부장제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여성에 대해 묘사하며 그 특징을 '꿀꿀이 눈'으로 표현한 부분은 당황스럽고 불편했는데, 후에 도리 대모와 에드워드 찰스 윌리엄에 대해서도 뚱뚱함이나 유리눈 같은 외모적 특성이 인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결부되어 강조되는 지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는 의미에서 주목하고 은유하는 걸까, 많이 양해하며 이해해보고자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대모와 남편을 바라보는 어린 시절의 관점과 느낌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었다면 그렇구나 하겠지만, 첫째 장에서의 기술은 나로서는 옥의 티로 느껴져 아쉬웠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나는 부드럽고 예리한 글이었고, 이 글을 쓰기 전에 [살림 비용]을 집어들었다. 알게 되어 반가운 작가다.
데버라 리비•이예원
2018.10.10.1판1쇄 2021.4.15.1판4쇄 펴냄, 플레이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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