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나서는 보지도 않았던 한 영화의 제목이 생각났다. '수잔을 찾아'(Desperately Seeking Susan), 원제에 붙어있던 'Desperately'라는 단어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1930년대는 교과서의 배움을 떠올려보면 일제 강점하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온 민족은 신음하고 사회 지도자들은 조국의 독립 혹은 자기 살 길 찾는 친일로 나뉘고, 한 마디로 국가가 개인을 현저히 압도하는 어떤 면에선 전체주의의 시대였다. 이 작품은 무겁고 암울한 시대의 큰 흐름 속에서도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운명의 여인 조난실을 좇기에 바빴던 이해명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따라간다.
작품이 복원해놓은 시공간적 배경은 일견 역사 속 실제에 근거한 듯 보이지만, 어김없이 어딘가 한 군데쯤은 작가 특유의 재치와 익살로 비틀어져 의도적인 부조화를 만들어내고, 그 어울리지 않는 시대와 공간 속에 역시 그 만큼 비틀어진 작중 인물들이 어수선하게 등퇴장을 반복한다. 주인공 이해명이 목숨을 걸고 찾아나서는 사랑하는 여인 조난실은 마치 느와르 영화 속의 팜므 파탈처럼 불온하고 그녀가 만든 가공의 인물 테러박은 히치콕 영화 속의 맥거핀처럼 작품 속에서 허탈한 긴장감을 이끌어간다.
꽤 도발적으로 붙여진 제목은 사실 독자들에게 기대했던(?) 소구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 만화같고 무협지같고 우스개같은, 이제껏 거의 만나지 못했던 새로움이 작가의 젊음과 함께 소화되는 듯 하면서도 아직은 덜 익고 치기어린 미완의 마무리가 어쩔 수 없이 걸리는 부분이다. 가볍게 가고자 했더라면 시공간의 선택이 조금 버거웠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작가가 선택한 그 배경이 다중의 함의를 담은 것이었다해도 내심을 전달하며 이야기를 주무르기에 아직은 내공이 조금 모자라는 느낌이었다.
2003-02-10 18:1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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