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06. 8. 12. 06:00


트렌스젠더, 넝마주이, 레즈비언, 장애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소외 어린이, 비전향 장기수, 사이버 코뮤니스트. 그야말로 '다르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여덟 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앞의 일곱은 대략 알겠는데 '사이버 코뮤니스트'는 영 낯 설어 검색창을 두드려봤는데, 정보라고 뜨는 것 역시 이 책과 관련한 소개글이거나 기사인 걸 보면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소수자들 중의 소수자인 모양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소외 어린이에 대한 꼭지를 제외하고는, 소수자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쓴 글이다. 그가 속한 소수자 집단 전체를 포괄하는 입장(?)을 전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해하거나 뜬구름 잡는 느낌 없이 잘 읽혀서 좋다.
 

하리수가 급부상하기 시작할 무렵 '못생긴 트렌스젠더 이야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는 트렌스젠더 김비의 글은 여성지 수기가 연상될 만큼 자기고백적이고 일면 신파적이다. 남 달랐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영어강사로 나름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는 현재까지의(2002년) 이야기, 태어나기도 성장하기도 참 남 달랐던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역시 상처나 치부는 드러낼 때 오히려 담담해지는 걸까. '동성애자 그룹(?)'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저 다르다는 인정에 머무는 이해지만, 어쩌면 그 역시 타고난 생물학적 성이라는 주입된 지식을 너무 맹신하고 있었던 탓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넝마주이 윤팔병은, 나만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무려 아홉 형제의 여덟 째라는 저자는, 한국전쟁 한 복판을 지나며 더욱 파란만장해진 가족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객사한 아버지와 참전, 월북, 행불, 학살, 자살 등으로 가족의 연을 달리한 대다수의 피붙이들, 그 중 막내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윤구병씨다. 동생에 대한 유쾌한 소개를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1943년 윤구병, 상머슴이 꿈이었던 동생 구병이는 외도를 하여 대학 교수가 되었다가 자본주의 교육의 역기능에 견디지 못하여 교수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전라북도 변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제수씨 왈, "똥장군 메고 똥품 잡고 있다." 출간되고 세월이 좀 흐른 탓에, 그가 지금은 어찌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얼핏 아름다운 가게쯤에 걸쳐진 이름을 본 기억이 있다. 아무려나, 적어도 이 즈음까지의 그의 삶은 그야말로 거지왕, 야인의 풍모를 물씬 풍기며 밑바닥 세상으로부터의 정의와 연대를 실현하는 통쾌한 무용담이 가득하다. 읽다가 심지어, 나도 모르게 '아이다호'의 밥이 떠오르기까지.
 

일곱 빛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듯 읽어버린 감도 좀 있어 괜히 미안하기도 한데... 나머지 글들은 위의 두 이야기만큼 생생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한참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상식선의 선이해가 만들어 낸 무감흥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인간은 내 문제가 아닐 경우, 같은 이야기의 반복에 무던해지기 마련이고 좀더 실감 나거나 자극적인 무엇이 없다면 시큰둥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소수자건 아니건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사실 모두 타인일 뿐이고, 소수자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이 결국엔 다름에 대한 무심한 인정은 아닐까 싶어 좀 씁쓸해지기도 했다. 물론 내 독후감을 쉽게 일반화했을 때 얻어지는 결론이다.
 

책을 엮은 윤수종 교수는 여는 말에서 소수자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바로 전체 민중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라는 선언적인 당부(?)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라는 제목의 발문에서 소수자에 대한 학술적 접근, 소수자 운동의 사회적 의미와 정당성 나아가 연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데, 물론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감정적 공감과 달리 '소수자'의 존재를 그 역시 너무나 자의적으로 과잉해석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주제 넘는 의문이 떠올라버렸다. 이를테면 그는 소수자의 특성을 지배가치에 저항하는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담지한 것,으로 규정하고 우리 모두 소수자가 될 것을 선동하고 있는데 물론 그것이 혁명적으로 폭발하듯이 진행되는 무엇은 아니라고 해도 과연 얼마나 엄정한 근거를 가진 주장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나름 반골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는 나로서는 무척 반가운 말이지만, 그래도 좀 지나친 건 아닐까.
 

더구나 이 책에 목소리를 담은 소수자들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분명 우리 사회 차별과 억압의 당사자로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제껏 그래왔던 그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조직하기 시작한 그들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히 지향해야겠지만, '소수자'라는 명명에 기대어 실제 그들의 삶을 너무나 정치적으로 주체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를테면, 대략(!) 민주화되고 불과 이십 년이 지나지 않아 벌써 구시대적 유물처럼 되어버린 지지부진한 '거대' 운동의 돌파구 같은. 물론 '소수자'의 정의 혹은 실체가 무엇이건, 단지 대다수와 다르다는 이유가 그들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찬 피폐함으로 남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선정적인 농락과 과잉해석이 난무하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한 반짝 신드롬이나 쿨하고 이물스런 유행을 넘어설 수 있을까. 어렵고 잘 모르겠다. 어지러운 독후감을 남겨주는 책이다.



다르게사는사람들(우리사회의소수자들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사상 > 사회계층
지은이 윤수종 (이학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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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