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적잖은 비가 왔다.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장마처럼 빼곡하게 내리는 비가 오후까지 이어졌고, 잦아드는 빗속에서 산책을 나섰다. 앞으로도 비오는 날들은 있을 것이므로, 비가 와도 산책을 계속 이어가는 게 필요했다. 약간의 귀찮음을 떨치기 위해 오늘은 목표를 정했다. 항남동 다이소에 가서 마침 다 떨어져가는 일회용치실을 사오자!
12월 지인의 집에서 지내던 어느 날, 왼쪽 아래 잇몸이 불편하고 부은 것 같은 오후가 있었다. 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처음인 일이라 신경이 쓰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붓고 아팠다. 검색을 해보니 잇몸이 붓는 이유 중에는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졌다거나... 몇 주 정도이지만 남의 집 신세를 지는 게 혼자 지내는 거랑 비교할 바는 아니어서, 사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힘들긴 힘들었군, 보러가려던 영화를 취소하고 주변 치과 중 이름이 마음에 드는 곳에 찾아갔다. 스트레스 받는 일 있으셨냐 뭐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는데 잇몸을 본 의사는 스케일링 언제 했냐며, 너무 많이 부었고 염증에 고름도 있다며 치료를 하고 스케일링은 이틀에 나누어 하겠다고 했다. 스케일링 태어나서 두 번 했고 마지막도 십년은 넘은 것 같다. 진심 고통스러웠고, 병원에서 준 약을 먹으니 다행히 붓기가 가라앉고 아픈 것도 차차 나아졌다. 간호사가 치실을 권했고, 병원행은 그렇게 끝. 치실을 쓰고 일년에 한 번은 스케일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매일 밤 잠자기 전 양치 후에는 치실로 정리를 하는데, 깔끔한 기분이 들어 좋다.
덕분에 치실을 사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중산책에 나섰다. 예쁜 동백나무가 궁금해 조선소길을 지나, 운하해안로에서는 갈매기들을 구경했다. 갈매기는 날개를 활짝 펴고 날 때는 정말 꿈을 향한 비상이라도 하는 듯이 멋지고, 앉아 있거나 걸을 때는 참 귀여워서 왜가리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비가 오니 우산을 안 써도 되는 해저터널 걷기가 마음에 들었고, 다이소에 들어갔다 나오니 비는 멈췄다. 강구안을 찍고 다시 해안로를 따라, 그렇게 걸으면 시선이 서쪽을 향해서 일몰 즈음에는 하늘이 무척 예쁘다. 산 너머 하늘은 노을이 불타는 듯 밝았는데, 나중에 그 노을이 보이는 곳에 살게 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두워지는 시간에 해저터널을 걷는 건 처음이었는데, 터널 출입구의 수더분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내일과 모레는 1차 부산영화여행이다. 예상과 달리 통영에서 서울에 있을 때랑 별다를 바 없이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래도 cgv아트하우스에서만 하는 영화들이 있으니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평소처럼 산책을 할 수가 없어 터미널까지 걸어갈까도 생각했는데, 알라딘중고서점에서 팔 책들도 챙겨갈 거라 멍청한 짓 같아 버스를 타기로 했다. 부산은 여러 번 가봤지만 서면은 지하철역 통과한 기억밖에 없는데, 새벽길 나설 건 아니라서 어디 구경할 짬은 없을 것 같다. 1차를 감행한 뒤 나름의 평가를 거쳐;;; 이후에 어떻게 할지 판단할 수 있겠지.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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