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0. 23:59


19세기와 20세기의 예술계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가까이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갖가지의 매혹이 넘쳐나는 역동적인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곡가 에릭 사티의 생애을 다룬 이 책에는 사티가 살았던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그 삶의 배경이 된 파리와 유럽 각지에 대한 소묘가 담겨있다. 그들의 시대는 가고 거장의 이름으로 남은 여러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현재적 시점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기행을 일삼았던 예술가 사티의 드라마같은 삶이 있다.

음향소설,이라고 했는데 읽고 나서도 사실 그 부분에 대한 느낌은 모호하다. 잘 모르겠다. 오히려 사티가 있는 배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마치 그림처럼 머리 속으로 떠오르고, 책장을 덮은 후에는 소묘화가 함께 있는 책을 본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나중에야 음반을 사서 듣고 제목과 음악을 따로 알고 있었던 '짐노페디'가 바로 이거였구나, 책 속에서 봤던 그의 괴팍함과 다소간은 악마적이라고도 느껴졌던 성정이 새삼스러웠다.

세기말에 어울리는 음울하고 불안스런 분위기가 일관되게 생활 속에 배어있던 고독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서술과 구성이 방만하고 무려 10여 년을 준비하며 저자가 꿈꾸었을 그 만의 아우라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공들인 양장본에다 삽입되어있는 화보는 성의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용의 밀도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모호한 경계와 독자보다 먼저 감동한 저자의 마음, 그리고 사티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이 책을 매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색깔 없이 두껍기만한 책으로 남겨버린 주요인은 아닐까 싶다.


2003-02-15 15:26, 알라딘



에펠탑의검은고양이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문학선
지은이 아라이 만 (한길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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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