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집 밖에 나가 걸었더니 계속할 수 있겠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생겼지만, 한편 꼭 이렇게 강박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이라, 마침 날도 많이 흐리고 해서 집에 있기로. 그러나 강박은 언제나 나의 친구이므로, 지난 주에 본 영화들을 다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꼭 정리하고 말겠다며 꽤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줄거리만 읊어대는 것이라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차원적인 글쓰기는 좀 지겹고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하든 참 즐겁게 열심히 글을 썼던 시기가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때는 젊어서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지금보다는 훨씬 젊기도 했고 알라딘서재라는 느슨한 커뮤니티의 울타리 속 낯 모르는 지인들과의 다정한 소통도 주요한 원동력이었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그 시절 비밀댓글을 나누고 무슨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하고 진심의 응원을 보내고는 했던 몇 사람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제는 찾을 길도 없고 살면서 만나게 될 일도 없겠지만,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는 그들이 보내준 몇 권의 책과 나무라디오 같은 것에 시선이 머물 때면 어디선가 잘 지내시기를 바라게 된다.
12월에 오래 잘 사용한 낡은 가방을 버리면서, 마음에 들지만 포켓이 전혀 없는 에코백에 붙여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양한 크기의 포켓이 달린 앞판을 남겨뒀었다. 세탁해서 거실에 두었는데 종일 집에 있자니 심심해서 생각이 미쳤고, 손가락산책이다 생각하며 박음질로 아랫단만 일단 붙였다. 양옆도 박음질 해서 고정할까 했는데 깔끔하게 할 수 있을지 애매해서 나중에 가방을 쓸 때는 핀버튼으로 고정하기로.
트위터를 보다가 소울 불꽃 테스트라는 걸 발견했다. [소울]은 무척 오랜만에 본 애니메이션이자, 역시 나는 애니메이션에 별 감흥이 없고 볼 줄도 모른다는 걸 확인한 작품이었지만 궁금해서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웬일이니, 내 불꽃이 신념이란다. 멘토는 무려 유관순;;; 양자택일형 답변 중에 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테스트 결과를 과신할 필요는 없지만 유관순은 너무하다. 설명 중에는 꽤 납득이 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해봤는데 그래도 나의 불꽃은 신념이었다. 그럼 난 불꽃이 죽은 상태, 되살릴 의지도 전혀 없어서 멘토님께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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