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람이든 도시든 오래될수록 많은 죽음을 품는다. 십년쯤 전, "망종"의 강렬함 덕에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장률의 "경주" 역시 마찬가지. 박해일과 신민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신작을, 마케팅은 조금 독특한 코미디 로맨스로 포장하고 있지만... 각별한 기억에 비하면 몇 편 못 챙겨봤지만, 예의 적막하고 정적인 분위기는 다름이 없다. 얼핏 좀더 긴 호흡의 홍상수다 싶은 관계의 결을 오가는 리얼리티가 보통이 아니지만, 나쁘지 않게 장률 특유의 간절함과 그늘이 배어있다. 알고 보면 비중 있게 등장하는 대다수 인물들의 삶이 죽음과 참 가까이 맞닿아 있고, 그렇지만 지지부진하고 난처한 만남 역시 생을 이어가는 과정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모습 같은 것. 그 관계와 감정선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으로 수렴되어 현실과 밀착한다.
감독과 두 주인공, 표제이자 제목 외에는 아무 사전정보가 없었던 탓에 꽤 강렬한 캐릭터로 등장한 백현진의 연기가 재미있었고, 긴가민가 등장한 송호창은 순식간에 놀라웠다. 나름 많이 다듬은 캐릭터처럼 보였으나 류승완의 플로리스트는 반전효과를 계산한 티가 너무 많이 나는 듯해 오히려 재미가 없기도.
원래도 좋아했지만 최근 콜밴의 고정 레퍼토리가 되어 더 좋아진 "찻잔", 신민아가 너무 잘 부르지 않아 더 좋았고. 떡하니 "사랑"이라 이름붙인 엔딩곡, 대체불가능한 소울 백현진의 목소리를 간만에 새 노래로 들으니 더 좋더라. 어찌보면 대책없이 이어놓은 인연들을 봉합하듯 이상한 환상으로 마무리한 마지막 에피소드는 좀 시덥잖았지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진 않다.
인디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