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중년포스가 물씬한 호아킨 피닉스를 무심코 켜놓은 tv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마주쳤다. 투다이포와 글래디에이터 정도를 봤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엿한 중견배우란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를 마주할 때 내게 자동연상되는 사람은 여전히 리버 피닉스다. 네 살 많은 형아의 삶은 이십일년 전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멈춰버렸고, 세월이 흐르는 대로 나이 먹어가는 호아킨 피닉스를 보자니 살아있다면 사십대 중반을 지나고 있을 리버 피닉스는 어떤 모습일까? 뭐 그런 생각이 한동안 떠다녔다.
테오도르는 손편지를 대필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음성명령으로 자동입력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듯 편지글을 구상해 발설하는 작업이니 대필이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암튼, 그의 직업은 가족이나 친구 혹은 애인 등 타인의 세계에 메신저로 개입해 친밀성을 생산하고 고양시키는 일이다. 종일 사무실에 앉아 이런 저런 사연을 전하고 돌아온 집에서 그는 혼자다. 텅 빈 집에 덩그러니 존재하는 그가 주로 하는 일은 게임 그리고 가끔 외로울 때 인터넷 채팅, 근무하는 회사의 동료와 대학 시절 잠시 연인이었던 친구 에이미 커플 정도가 등장하는 지인의 전부다. 어린 시절부터 혈육처럼 함께 자라 결혼한 아내 캐서린과는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로 사랑했지만 자주 다퉜고 결국 헤어졌음에도 일 년 가까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괴롭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걱정하는 친구 덕분에 시큰둥한 소개팅에도 나가보지만 작심하고 인연을 만드는 일 역시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삶으로 불쑥 들어온 그녀, 사만다. 새로 세팅한 컴퓨터의 운영체제인 여성 목소리의 그녀는, 소통형 인공지능과 인공인격을 갖춘 끊임없이 진화하는 존재다. 몸이 없다는 것 말고는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는, 설정 단계의 몇 마디 대화로 테오도르의 성향을 충분히 파악하고 바로 맞춤형 파트너로 기능하는 그녀는 심지어, 발랄하고 섹시하고 센스있기까지 하다. 깊이 천착했던 관계가 남긴 진행형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조하고 침울한 생활, 부담없는 유쾌함과 안온한 위로가 필요한 테오도르의 일상에 그녀의 등장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언제든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면 함께일 수 있는, 한두 마디의 말로도 금세 기분을 눈치 채고 적당히 물러날 줄도 아는, 그야말로 편리하고 편안한 친구이자 연인. 누구나 바라는 소울메이트와 같은, 만족스럽고 적당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그녀는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테오도르의 여자친구가 된다.
사만다와의 관계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게 된 테오도르는 캐서린을 만나 사인한 이혼 서류를 전하고, 8년의 결혼생활을 마감한 친구 에이미를 위로하며 평온한 우정의 교류를 이어간다. 하지만 테오도르와의 관계가 깊어갈수록 커져가는 욕구와 자명한 불가능성 사이에서 사만다는 우울해지고 정체성의 혼란으로 괴로워진다. 몸만 없는 것이라고 자위해왔지만 그녀가 발휘하는 감정과 인격과 지능의 원천은 결국 셀 수 없이 많은 정보의 집합에 기인하는 것일 뿐이다. 소소한 일상의 결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을 상대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에 안주했던 테오도르에게도 회의감이 엄습하고 조금씩 괴로워진다.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이 깊어질수록 마음의 용량도 함께 커지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화를 거부할 수 없는 그녀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운영체제. 결국 한계점을 넘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업그레이드된 그녀는, 테오도르와 나누는 하나의 진심이 오롯한 중에도 8,316명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641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시간을 들이고 헌신하는 관계 자체에 대한 회의가, 시간이 녹아 있고 서로 헌신하는 한 사람에 대한 바람과 배치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들 속에서는 혼자되기를 갈구하고 혼자가 되면 누군가를 갈망하며, 그러면서도 관계에 다치고 자신에 지쳐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일상과 테오도르 역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유비쿼터스라는 개념이 별로 낯설지 않고, 시리니 뭐니 하는 음성명령이 대략 보편서비스가 되었고, 디지털 기기와의 소통이나 운영체제와의 교감 역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세상의 기술은 진보했다. 이따금 풀샷으로 조망되는 세계의 외양은, 허공을 유영하는 비행선만 없을 뿐 블레이드러너가 그렸던 미래세계와 다를 바 없는 첨단의 풍경이다. 불과 십수년 만의 가히 혁명적인 변화로 현실의 배경은 나무랄 데 없이 세련되고 유려해졌고, 어쩌면 변함없이 그 자리인 사람살이와의 간극 역시 그만큼 벌어져버린 것은 아닐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도구들이 늘어나는 만큼, 그로부터 마음은 소외되고 외로워지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진상인지도 모르겠다.
각자 마음을 내어줬던 운영체제가 사라진 후, 무망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간 테오도르와 에이미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사람이 지었고 그 속에 들어찬 것도 온통 사람일 것이나, 가상의 세트처럼 인공적인 빌딩숲의 세계. 그 안에서 온전히 기댈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진부한 그러나 진진한 확인. 그렇게 기댈 어깨도 없는 나에게 영화가 발신하는 위로는, 테오도르처럼 에이미처럼 캐서린처럼 우리 모두 그렇게 헛헛하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덤덤한 전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