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들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투쟁하는 동지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싶은데 공연이 이번 일요일까지다. 무대에서 이런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는 고마움과 별개로,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연극 <김정욱들>. 결과적으로 연극의 원작이 된 그의 인터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5798.html)를, 나도 인상적으로 읽었더랬다. 굴뚝고공농성이 시작된 날은 마침, 10년째 정리해고 투쟁하며 끝장농성으로 단식 중이던 코오롱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3,650인의 화답'이라는 연대마당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어 함께 행사를 준비하던 쌍차 동지가 올라간 동료들을 엄호하기 위해 굴뚝 아래서 싸우다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각자의 고통을 무게로 부피로 환원해 비교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고 아프다. '2,646명'의 대량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며 전쟁을 치르고 거리로 내몰려 안 해 본 투쟁이 없고, 그 와중에 동료와 가족 들의 죽음을 마주하며 상주가 되어야 했던 그 마음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쌍차 '2,646명'의 구조조정 이전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숫자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해고됐고, 옥쇄파업이 진행될 때 외로운 굴뚝고공농성을 했었다는 것은 별개로 기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장으로 돌아가자!” 빛 바랜 등자보가 달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투쟁 조끼를 입고, 무대를 누비는 배우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통해 전해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솔직한 마음이랄까. 연극을 보며 좋았던(?) 부분은 인터뷰를 읽으며 좋았던 부분과 많이 겹쳤다. 불패의 전사들처럼 “투쟁! 투쟁!” 외치는 강한 모습은 부각되지만, 속으로 비슷하게 느끼는 고립감이나 불안함 같은 건 스스로도 모른 체하며 각자 힘들어하는 모습 같은…… 실제로 누구든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낸 연극 같았다. 물론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언제나 고통과 힘듦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자신의 삶과 투쟁을 어떻게 엮어 가는지에 따라 또 그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변수도 많고 다양한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대에 등장하는 '김정욱들'의 솔직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연극이 품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느껴졌다. 평택시내에 나가면 자동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쌍용자동차 작업복을 입고 부리던 허세,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굴뚝에서 마주하는 무력감, 함께 살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동료들 간의 갈등과 반목, 공장에서 쫓겨난 동료가 고인이 되었을 때의 절망감 같은 것들.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이니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위태하게 흔들리면서도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에 대한 인간적 공감이랄까. 당위나 정답에 얽매이지 않는 메시지 덕분에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마음으로만 되는 것은 거의 없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함께.
비틀즈 다큐와 연극 <김정욱들>을 한 날 이어 봤는데…… 평범한 사람으로는 드물게 극단의 경험을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평균치의 삶이란 없을지 모르지만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면, 환호든 고통이든 견디기에 쉽지 않은 무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겪지 않은 것을 공감하기란 쉽지 않지만, 외면해서도 지레 아는 척해서도 곤란하다는 것. 그 거리 조율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몫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덧붙이고 싶은 사소한 반가움 하나는, 암전과 함께 흐른 ‘짙은’의 “백야” 연주버전.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순간, 몇 개의 다른 세계가 하나의 공간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