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공학자이자 예술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자연과 인간, 사물 등에 대해 연구한 기록과 작품을 통해 그의 방대한 예술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색하는 책이다. <모나 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르네상스의 거장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놀랍고도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저자(마틴 켐프는 '다 빈치의 예술과 과학'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영국의 미술사학자라고)의 관심과 전공 분야 덕분인지 책은 '독특한 경력', '주시', '신체와 기계', '생명의 지구', '작품 이야기', '리자의 방, 레오나르도의 사후' 등의 목차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오나르도는 각종 연구와 작품을 위한 메모와 스케치 등의 기록을 매우 충실히 했던 인물이었고 80% 정도가 소실되었음에도 6,000쪽이 넘는 친필 자료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분석과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창작 활동을 수행했고,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외적 다양성이 실은 내적 통일성의 징후"라는 전제 아래 "우주의 조직, 즉 전체로서의 우주가 그것의 모든 구성 요소들, 무엇보다 인간의 몸이라는 소우주 혹은 '더 작은 세계'에 반영된다"는 학설을 고수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적 근거 위에서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동물은 물론 인간(1507~8년 겨울 산타마리아 누오바 병원에서 행복한 죽음을 직접 목격한 100세로 추정되는 노인, 남긴 기록에서 '베키오'라고 부른다고)도 직접 해부하는 등 경험적 탐구를 통해 완벽한 시각적 표현과 자기 이론에 철저한 작품을 추구했다고.
책은 다 빈치의 골몰과 그 흔적들을 여러 가지 스케치와 기록, 구상이 구현된 작품과 저자의 설명으로 꽤 자세히 보여준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문명의 결과를 당연한 현실로 누리며 살고 있는 인간으로서 전혀 궁금증을 가져본 적 없는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각종 원리들을 직접 탐구하고 그 결과에 의거해 창작 활동에 매진한 다 빈치의 명석하고 왕성한 정신 활동이 놀라웠다. 그는 인간의 여러 감각 중 시각을 우월하게 여기고 실제 사물과 현상의 구체적인 시각화를 위해 뇌와 눈의 구조와 각 부분의 기능을 연구했고, 빛을 통한 시각 정보 처리 과정과 감각 및 지식 영역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서도 나름의 이론을 정립했다고 한다. 또 공학자로서 비행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새의 날개와 유영을 관찰하며 '거대한 새' 즉, '우첼로'를 만들기 위해 분투했던 기록(실물 제작 증거는 없다고), 그리고 2003년 영국의 서식스 구릉지대에서 그의 '우첼로'를 구현한 실험을 통해 그의 통찰과 설계도가 어느 정도 유효함이 입증됐다는 사실 등도 흥미롭다.
이외에도 물의 운동 상태 관찰을 통해 '순환, 회전, 전환, 타진, 경사화, 상승, 하강, 소모, 충격, 해체' 등 관련한 64개의 목록을 작성하고 소용돌이 형태의 분석을 통해 선형적이고 곡선적인 요소와 나선형 구성 등에 대해 얻은 통찰로 인간의 머리카락이나 장식, 옷주름 등의 완벽한 표현에 이르렀다는 것, 건축에 있어 "어떤 기능에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부합되고, 부족함이나 넘침이 없는 형식인 필연성"을 달성하기 위해 기하학과 비례에 몰두하며 사물에 드리워진 그림자와 공간감, 원근법 효과의 기술을 창안했다는 것, 운하와 지하 수로 건설을 위해 자연의 지형과 거대한 물의 흐름을 관찰하고 물리학과 지질학을 결합한 연구를 통해 성서의 '대홍수' 묘사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 등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밖에도 놀랍고도 대단한 연구 사례들이 즐비한데, 과학적 호기심이 제로에 가깝고 내 깜냥으로 소화도 이해도 어려웠던 부분이 많이 제대로 정리할 수 없는 게 좀 안타깝다.
1452년에 토스카나의 빈치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십대 중반쯤부터 피렌체의 조각가이자 다방면의 예술을 섭렵한 안드레아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활동하며 성장했고, 최소한 30년간 피렌체 등 궁정에 고용되어 일했으며 로마와 프랑스에도 머물렀다고 한다. 말년에는 프랑스 왕가의 부름에 앙부아즈에서 머물며 작업하다가 사망해 생 플로랑탱 부속 예배당에 묻혔다고. 주로 귀족이나 왕궁에 고용되거나 후원자들을 위해 일했기에 계약이나 협상에 관한 기록, 임금 체불 해결을 호소하는 편지 등이 남아 있고, 그가 작품 활동의 대가로 현금이 아닌 특정 지역의 물에 대한 수익권을 받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시공을 뛰어넘은 천재의 또 다른 면모와 시대의 일면을 상상해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이 책으로 만난 다 빈치는 과학과 기술, 예술이 경계를 넘나들고 전쟁이 빈번하던 시대의 잘나가는 종합 예술가, 화가로 조각가로 건축가로 다양한 분야의 기술공학자로 또 궁정의 일과 관련한 여러 분야의 예술 컨설턴트로 살아갔던 최고의 르네상스인이었다. 서양사에서 손에 꼽히는 중요한 인물이고 소수의 완성작에 비해 엄청 많은 자필 기록들이 남아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연구들이 계속되고 있고, 출생지와 활동지 및 말년의 거주지와 온전히 보존되지 못한 묘지에도 그를 기념하는 공간이 조성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때가 되면 각종 기념 행사들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그에 대해 무수한 저서들이 출간되었고, 현대의 권위 있는 연구자 중 한 명일 저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다 빈치의 연구와 작품 활동을 조망한 셈이 되겠다.
인물로 보는 서양미술사 강의를 신청하고 계획서 상 첫 번째 주제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 싶어 선택한 책이었고, 소장도서 검색 결과로는 예상할 수 없어 서가를 한참 서성거린 끝에 너무 두껍지 않은 분량으로 낙점했는데, 막상 첫 번째 강의 주제는 강의계획서가 업데이트된 결과 라파엘로였다. 독서의 동기가 무화되어 당황스러웠지만, 역사적 위인으로만 박제되어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고 어떤 생동감이 이미지에 더해진 것 같다. 문외한으로서 학술적인 전문성 함량이 높은 내용이 좀 버겁기도 했고 '인간적 면모' 좋아하는 자로서 가끔은 지루하게도 느껴졌지만 말이다. 생애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제자이자 동반자였던 살라이와 프란치스코 멜치에 대해서도 약간 호기심이 생겼는데 언젠가 적당한 책으로 그의 삶에 대해서도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마틴 켐프•임산 옮김
2006.4.5초판제1쇄인쇄 4.10발행, (주)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