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

[명랑한 은둔자]

나어릴때 2021. 1. 2. 12:18

 

제목이 마치 내가 선택한 이후 삶의 한 지표처럼 느껴졌다. 난 처음 알게 된 저자의 삶이 궁금해졌고, 이제는 어떤 취향의 선구자가 되고 있는 듯한 번역자도 선택에 믿음을 더해주었다.  

절반쯤은 많이 공감이 되었고, 솔직히 절반쯤은 참 유난하고 피곤한 삶이었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저자가 20대 초반 극심하게 앓았던 거식증, 오랫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던 알코올 등 집요하고도 지난한 중독을 나는 경험한 적이 없고. 그 깊은 중독들의 기저에는 마음에 들고 싶었지만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절제된 표현이 몸에 배인 화가 어머니의 자녀로서,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이 당연히 예정된 학생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완벽한 존재로 기능하고자 열망했던 저자의 성장 과정과 자의식 강한 내면의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슷한 기질과 성향의 젊은 여성이라면 아직 살아보지 않은 미래의 시간에 대해, 저자의 글을 읽으며 더욱 공감하고 성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이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지만 나는 이미 캐롤라인 냅이 세상을 떠날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중이고, 스스로 감정적이고 예민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글을 통해 읽어낸 저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하여 그냥, '명랑한 은둔자'라는 마음에 드는 워딩을 발견한 것으로 만족.  


캐롤라인 냅 
2020.9.4초판1쇄 2020.10.23초판5쇄발행, (주)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