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
오늘도 주차장에서 벤과 사장님을 만났다. 설마 기억하는 건지 그냥 사람 좋아하는 아이라선지 꼬리를 흔들며 웃는 표정을 짓는 벤을 보면 기분이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주차비로 5천 원짜리를 벤을 통해 드렸는데 사장님이 거스름돈도 줄 줄 알아야 하는데 하며 바구니 운운하셨다. 마냥 해맑은 벤이 거스름돈 바구니를 물고 있는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은데, 다음부터는 꼭 천 원짜리를 준비해야겠다.
오늘 공간에는 택배기사님 두 분과 사장님이 잠시 다녀가셨다. 사장님은 전기세 고지서를 건네주셨고 오랜만에 들어선지 더욱 통영랩인가 싶은 빠른 말투가 새삼 신기했다. 냉난방기 뒤편을 가릴 천을 샀고 어떤 방법으로 고정하든 사다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나중에 빌려주십사 부탁드렸다. 내일은 공유파트너와 함께 출근할 테니 챙겨와서 고민해봐야겠고, 그 작업까지 완료되면 싱크대 말고는 더 할 게 없는 공간이 될 것 같다.
어제 마음먹은 대로 하나 남겨둔 영화 정리를 마치고 읽으려고 [털 난 물고기 모어]를 챙겨왔으나 표지만 보고 말았다. 인물도 작품도 미처 존재를 몰랐던 다큐를 보며 흠뻑 빠져들었던 열흘 전의 내 상태는 기억하지만, 그때의 감흥과 별개로 작품의 디테일은 어느새 가물하고 그 느낌을 언어화하는 일은 더욱 지난하였다. 어차피 나를 위해 쓰는 거니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 그때의 마음을 잘 기록해두고 싶은 욕심마저 버릴 수는 없었는데, 오늘은 완료한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느릿느릿 생각하다 쓰다 딴짓하다 하다 보니 "모어"가 오늘 공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존재가 되었다.
내일은 초복, 복날이라고 특별히 뭘 챙겨먹거나 하지 않는데 내일은 점심이든 저녁이든 외식을 하려고 한다. 이래저래 도움 많이 받은 가죽공방님들께는 미리 청했고 저녁에 도착할 공유파트너에게도 전에 대략 얘기했는데, 점심과 저녁 중 확정이 안 되었고 나는 연락처도 몰라서 통게하 사장님께는 말씀을 못드렸다. 의도한 바는 아니시겠지만, 이 공간이 가능했던 시작에 큰 기여를 하셨기 때문에 고마움을 표하고픈 작은 바람이 있다. 전날 저녁이나 당일날 뭔가 내미는 거 안 좋아하지만 함께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