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
친하면 헛소리 많이 하는 것에 비해 무척 곧이곧대로인 편이라, 무심히 내뱉고 기억도 못하는 말 때문에 짜증스러워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바보된 기분이다. 훈련 목록에 '무심'을 더해야겠다. 아무려나 나름의 할 일을 하고, 내일부터 이틀간 온전히 혼자 쉴 수 있다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까 한다.
작업하면서 예전에 읽었던 통영 관련 책을 다시 들춰봤는데, 까맣게 잊었던 사실을 발견해 새롭고 재미있었다. 하멜보다 49년 일찍 당포 해안에 당도했던 최초의 서양인인 포르투갈의 상인 주앙 멘데스에 대한 짧은 이야기였다. 2004년에 통영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에서 관동대 박태근 교수가 조선시대 국경수비일지 [등록유초]에 기록된 내용을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당포항에 기념비도 있다고 하는데 당포성지에 여러 번 갔지만 본 적이 없다. 찾아봤더니 얼마 전 기사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인 도착지를 제대로 기념하지 않는 시의 관관행정을 비판하는 기사가 있었다. 기념비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방치되다시피 있고 통영 관련 홍보자료 같은 데에도 누락되어 있다며, 제주시의 하멜 활용과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포에서도 하멜 등댄가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역시 기념은 중요한 것인가? 주앙 멘데스는 당시 도카가와 이에야스가 캄보디아에 파견한 무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 표류해 통영에 닿았다고 하는데, 이 땅에 얼마나 머물렀는지 등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 같다. 근데 실크로드도 있고 했는데 정말 1604년 6월에 떠밀려왔다는 그가 최초의 서양 방문자일까? 이런 이야기 흥미롭고 궁금한데 그는 하멜처럼 임금체불 문제가 없어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인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좀 궁금하다. 가끔 떠오르면 읽어봐야지 하고 매번 넘겼던 [하멜표류기]가 생각났는데, 아마 또 이렇게 넘어가겠지.
8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여름은 체감상 가장 지난하고 힘든 여름이었다. 가을이 목전에 온 느낌인데, 마음도 조금은 서늘하고 여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추석연휴 이후에도 물리적인 변화는 거의 없겠지만, 차근차근 책방을 준비하며 진짜 마감일지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