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

바닷마을다이어리

나어릴때 2016. 8. 9. 02:34



꼭 보고 싶어서 땡땡이를 감행했는데 그러길 잘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 자매들이라는 이미지 정도만 기억하고 극장을 찾은 덕에 어쩌면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 없이 흘러가는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전개인 듯도 했지만 내내 흥미롭게 집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론 캐릭터의 생동감이나 모티브가 되는 사건이나 상황이 일상적이지만은 않음에도 대단히 고요하고 순한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개성이 아닐까 싶다.

15년 전 연락이 끊기고 관계도 단절된 바람났던 아버지의 부음,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인이 된 두 번째 부인의 딸과 세 번째 부인.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낡고 오래된 집에서 살아가는 세 자매의 집으로 들어온 여동생. 영화를 구성하는 내용의 얼개만 본다면 적어도 평화로울 수는 없을 듯한데, 네 자매와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이 엮어가는 이야기와 그들 인물 각각의 상황과 관계와 연결된 운명 혹은 인연의 힘 같은 것들이 정말 정교하되 작위적이지 읺게 잘 그려져서 좋았다. 어쩌면 상식적이지도 예측할 수도 없는 선택들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고 행위의 주체 입장에서 되새겨보면 모두 참 그럴싸한. 

히로카즈 영화의 특징 같은, 악역없음은 여전했고 그래서 좀은 판타지 같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순하고 친절한 성정의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 억지스럽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주인공들 못지 않게 마음이 갔던 이는 바다고양이 식당의 니노미야 아줌마였는데.. 뭐랄까, 사치 자매 가족의 굴곡을 모두 지켜보았을 이웃이면서도 상처를 되새기는 일 없이 자매들을 한없이 북돋우고 스즈에게도 보물이라 말해주는 그 선함과 다정함이 참 좋았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그 사실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애증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화해로 나아가는 가족, 부재와 죽음이 이어준 새로운 인연과 의미, 그 모두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남 탓하지 않는 사람들. 너무 이상적이다 싶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해서 보는 내 마음이 다 순해진 기분이다. 안 봤으면 아쉬웠을, 오늘 참 잘 친 땡땡이.


2016.3.2

씨네큐브광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