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식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재기는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 중이다. 함께 살던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중학생 아들을 홀로 키우는 사촌 누나 은주가 틈날 때마다 병원에 방문해 재기를 챙기고 필요한 일들을 돕는다. 퇴원을 앞두고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 검사에 성심껏 응한 결과 경증인 5급을 받았다. 2미터 정도 혼자 걸을 수 있고 통증을 참으며 겨우 팔을 들어올릴 수 있는 재기는 누가 봐도 중증장애인이지만, 등급 판정 결과는 보수적이고 임의적이다. 6인실 맞은 편 침상의 봉수는, 재기의 소변통을 비워주고 커튼을 쳐줄 만큼 사지의 움직임이 자유롭지만 문병 온 병호의 조언을 이행해 2급을 받았다. 순진하고 정직한 재기와 은주에게 장애인의 삶은 온통 부딪치며 깨우쳐야 하는 신세계다. 비장애인으로 살 때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던 그 세계의 벽은 높고 지원 정책은 미로와 요철로 이루어져 있다.
건장한 체격의 재기가 앉은 휠체어를 밀어주는 은주는 가녀리고, 힘겨워 보인다. 전동휠체어를 구하기 위해 방문한 공단에서, 장애인을 구인하는 회사에서 재기는 5급이어서, 중증이어서 가로막힌다. '중증'과 '5급'은 장애인이 된 재기가 갇혀버린 견고한 스펙트럼이다. 단체를 통해 전동휠체어를 구할 수 있게 된 재기는 '달리는 2급' 봉수 덕분에 무사히 전동휠체어를 인계받고, 면접을 보러 간 회사에서 마주친 병호 덕분에 장애등급 재판정을 위한 소송과 장애인 운동선수로 등록할 수 있는 론볼을 시작한다. 장애인 지원 정책에 문외한인 재기는 병호의 접근을 단비 같은 호의로 받아들이며 그를 따른다.
병호는 각종 장애인 지원 사업과 관련 행정에 빠삭한 브로커이자 사기꾼이며 장애인 당사자다. 장애인 고용으로 지원을 받는 회사에도, 활동보조인을 중계하는 센터에도, 론볼 선수들의 훈련장에도 그는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입성과 표정을 바꾸며 재기와 같은 중도 장애인들을 돕는 척, 그들에게서 이익을 취한다. 장애등급 재판정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 사무실과 뒷돈을 거래하고, 봉수를 비롯한 적잖은 장애인들에게 친근하지만 권위적으로 군림하며 장애인 지원 생태계의 포식자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 민낯을 알 리 없는 재기는 병호를 마냥 고맙게 여기고 의지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아 소송을 시작하고 5급은 이용할 수 없는 장콜을 타는 대가로 택시비를 내고 그의 밥과 술을 책임진다.
새로운 등급과 삶을 꿈꾸는 재기에게 병호는 유일한 정보제공자이자 믿을 구석이며, 막막한 장애인으로서 만난 '든든한 형'이었다. '5급의 장벽'을 넘는 것이 급선무였던 재기에게는 다가온 구원의 손길을 의심하거나 달리 볼 여유라는 게 없었을 것이고, 장애인 지원 사업판에서 닳고 닳은 병호의 복마전은 그런 절실함을 자양분 삼아 지속되었을 테다. 엄마가 남겨준 집 때문에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재기의 사정도, 장애인이 된 재기가 살 수 없는 상가주택에서 아들과 살고 있는 은주의 사정도 갈수록 나빠진다. 가진 것 없고 영악하지도 못한 사촌 남매는 할 수 있는 한 서로를 도우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밀린 월세를 내라며 은주가 전한 돈봉투마저 울며겨자먹기로 병호에게 '빌려준' 재기는 설상가상으로 대출이 잘못되었다며 즉시 상환을 요구하는 은행의 연락을 받는다.
와중에 병호는 재기네를 생각하는 척 은주에게 관심을 보이며 활동보조인 자리를 알선한다. 면접이랍시고 단골식당에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은주와 마주앉은 병호는, 병원에서 보았던 낡은 가방을 언급하며 선물을 건넨다. 거리를 두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던 은주가 술을 이기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정신을 차리는 사이, 병호는 어두운 복도에 유령처럼 나타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밤거리로 뛰쳐나와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연락을 외면하지 못하고 나간 식당에서 아무렇지 않게 삼계탕을 먹는 병호와 갈등 끝에 수저를 드는 은주의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아가 치밀고 속이 터지는 장면이었다. 자신에게 지워진 생계의 무게를 감당해야만 하는 은주에게는, 없었던 셈 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는 곤혹과 수치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으로서 병호의 집을 치우던 은주는 쓰레기통에서 자신이 재기에게 건넸던 빈 돈봉투를 발견한다.
재기가 기각 결과를 전달받은 곳은 그들의 단골식당, 병호가 제맘대로 재기가 쏜다며 소집한 론볼 선수들의 회식 자리였다.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병호의 의도를 감지하면서도 차마 따지거나 저항할 수 없었던 재기는, 제 속에 쌓이는 울분을 술로 풀거나 지팡이를 지원 받으러 간 보건소에서 폭발시키며 겨우 버텨왔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하지만 패소를 병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걸 아는 재기는 그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은행을 거친 것도 차용증을 써준 것도 아닌, 갈취하다시피 봉투째 받아간 돈은 없던 일이 된다. 지갑 사이에서, 안주머니에서 병호가 들고 현금을 꺼내쓰던 재기의 돈봉투는 영화에서 수차례 보여졌지만, 적반하장으로 욕설을 퍼붓던 그는 재기에게 만 원짜리들을 던지고는 무리를 이끌고 나간다. 억울하고 어안이 벙벙한 재기는 식당 주인에게 청해 바닥에 떨어진 만 원 짜리들을 챙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중증장애인 등급이 필요하다고, 법원에 출석해 진술하는 재기의 모습과 목소리가 영화의 인트로와 엔딩에서 반복된다. 애초에 제대로 된 등급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면, 등급이나 판정 따위 없이 장애인에게 필요한 지원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세상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많은 일들이 그 사이에 놓여 있다. 사고 전 엄마와 재기가 살았던 상가주택의 가파르고 높은 계단 위에서 건물 입구에 있는 재기를 내려다보는 시점샷이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 같다. 중증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오르내렸을, 엄마의 유산이자 사촌 누나 은주가 살아가는 그 집은 휠체어를 탄 재기에게 접근 불가능한 곳이 되었다. 영화는 재기의 등급판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신, 엔딩 크레딧의 끝줄에 "모든 재기의 자립을 꿈꾸며"라는 바람을 새겨놓았다. 마음이 먹먹해졌지만, 카메라 밖 재기의 삶이 그 험난함에서 쉽게 탈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익숙했던 세상을 완전히 새로 배워야 하는 중도 장애인의 막막함을 영화는 정면으로 보여준다. 초반엔 헛웃음이 나오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재기를 조여오는 상황들과 고병호의 빌런 캐릭터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중반부터는 내내 소름이 끼치고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은주에게 접근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자극적으로 그려지지 않음에도 공포감을 동반하는 것이었고, “달리는 2급”을 창조하고 “모든 재기의 자립”을 먹이 삼는 빌런의 현현이 섬뜩했다. 병호의 전사는 나오지 않지만 어디서든 유려하게 휠체어를 굴리는 모습이, 까다롭고 복잡한 정책의 빈틈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그의 구력을 반증하는 것처럼 보여 심란해지기도 했다.
왜인지 나는 예매할 때 다큐라고 생각했고, 재판정에 선 재기를 담은 첫 화면의 드라마틱함에 약간 당황했다. 배우들이 모두 초면이어서 병실 장면에서도 내심 의아했고 재기를 연기하는 배우는 장애인일까 비장애인일까 혼자 혼란스러웠다. 잠시 갸웃하다 알아챘지만, 어디에도 그런 말이 없었는데 다큐라고 생각했던 건 '이런' 소재로 극영화가 만들어질 리 없다는 무의식의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별의별 소재와 주제의 영화들이 다 만들어지는데 대략의 소개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나의 비장애중심주의를 반영하는 것일 테다. 머쓱하지만 이렇게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한 가지를 깨우치게 됐다는 걸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것 같다.
영화는 제도의 허점과 그 빈틈을 무대로 먹이사슬처럼 엮인 장애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책은 느닷없이 닥친 삶의 격변에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지원을 선별하고 차등화한다. 중도장애인이 된 재기가 기대와 좌절을 반복하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계기마다 그를 맞이하는 것은 엄정한 탁상행정과 지독한 현실의 괴리다. 그 사이를 메우는 썩은 동아줄과 편법의 희망고문을 발신하는 것은 병호의 얼굴을 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디테일과 설득력으로 무장한 영화의 박진감이 놀라웠는데, 찾아 보니 두 명의 감독 중 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비장애인인 다른 감독과 함께 균형을 잡으며 연출한 작품이라고 한다. 어눌하고 어수룩한 재기와 팔색조처럼 능수능란한 병호를 비롯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았고, 직접적인 주장 대신 개인의 일상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현실의 모순을 부각시키는 점도 좋았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향한 곳곳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하나의 힘으로 모아져 변화가 앞당겨질 수 있다면 좋겠다.
4/18 cgv서면 임권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