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여러모로 “서칭포슈가맨”이 떠올랐던 “비비안마이어를찾아서”, 물론 '사건'의 발단과 작품의 엔딩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우연이지만 필연인 듯, 가족력처럼 플리마켓이나 창고경매장을 드나드는 취미가 있었던 존 말루프는 마침 준비 중인 역사책에 들어갈 예전의 사진 자료가 필요했고, 어느 날 집 근처 창고경매장에서 주인의 이름과 내용물이 필름이라는 사실만 알고는 상자 하나를 낙찰 받는다. 그리고 애초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일부를 현상하며 필름 속 사진들에 끌리고 찍은 이에게 호기심을 느끼며 점점 빠져들어 비비안마이어에 대해 수소문하던 차 얼마 지나지 않은 부고를 접한다. 상자에 남겨진 주소를 통해 그녀가 유모였음을 확인하고, 줄기찬 ‘파인딩’으로 그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가진 과거의 주변인들을 만나게 된다. 공식적인 기록을 통해 그녀가 1926년 뉴욕에서 출생했음이 밝혀졌지만 가족도 친지도 알 수 없고, 생전 그녀를 알던 이들의 기억도 상호적으로 맺은 관계에 따라 천양지차…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 위한 중요한 단서로 10년 간격으로 찾아 사진을 남겼던 어머니의 고향, 남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까지 찾아가 그녀와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을 만난다.
가난하고 고독한 이방인이었지만 늘 신문을 탐독하며 세계의 변화와 현상을 주시하고 자신의 관심이나 마음을 끄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수도 없이 셔터를 누른 비비안마이어. 하지만 현실은 늘 누군가의 고용인으로 살림과 아이들을 도맡아야 하는 것이었고,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처지에서 가장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삶을 이어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사진을 ‘찍기 위해’ 돌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산책길에서 빈민가를 돌고 도살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때로는 학대의 기억으로 떠올릴 정도로 괴팍하고 폭력적인 유모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많은 촬영에도 실제 현상해 간직한 사진은 거의 없었고, 셀 수 없이 많은 필름들과 갖은 잡동사니로 꽉 찬 비밀의 방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놀라울 만큼의 결벽증과 수집벽, 좀처럼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고집스러움으로 인해 가까이 지내던 친구도 지인도 없었다던,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혼자만의 삶을 살아갔던 그녀가 그토록 사진 ‘찍기’에 집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지만 자신이 괜찮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그녀가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려나 베일에 싸였던 작품들이 서서히 알려지고 살아갈 때에는 큰 의미 없었던 이름에 찬사가 더해지면서, 그녀는 부재로 인해 오히려 그 존재를 발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어쩌면 불감당의 생명력과 완벽주의로 둘러친 자신만의 우주 속에서, 외부의 빛을 간절히 소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이게 제일 좋을 수 있다”는 누군가의 회고에도 공감이 됐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결국 사회적이지 않은 삶은 없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그녀의 사진을 직접 볼 수도 있게 됐다.
스크린에 비춰진 수많은 사진들 중 나는, 기차의 좌석에 나란히 앉아 잠이 든 노부부의 사진이 가장 좋았다. 아련하게 떠올릴 겨를도 없이 검색하니 바로 찾아지는 사진이라니. 세상은 참 빠르지만, 나는 이렇게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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