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일지

수정

나어릴때 2022. 11. 24. 17:55



상태가 괜찮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단지 검진과 스케일링,이라고 생각하며 찾아간 화요일 치과행의 결과는 몹시 좋지 않았다. 잇몸과 맞닿는 부분이 삭았거나 패인 치아가 9개나 적발됐고 3개는 꽤 심각해서 시급한 때움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매일 쓰는 치아고 25년 넘게 과자를 먹는 중이니 그런 줄 알고 있었고 불편과 이따금의 시림이 만성이 되어 적응되었던 탓에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그냥 두면 신경치료를 해야 할 만큼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에 12월에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 2년 만의 스케일링은 또 어찌나 괴롭던지, 이를 때우는 치료는 스케일링만큼 고통스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위로가 됐다. 이후 위내시경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간 내과에서 이상은 없지만 내벽이 많이 부어 있어 지난주에 처방했던 위장약을 두 달은 먹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약을 먹으니 속이 더부룩하기도 하고 의사의 뉘앙스로 판단한 심각성이 크지 않아 그건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병원 두 군데 들르고 비 오는 저녁 운전으로 집에 오니, 쉬는 날 이게 뭔가 싶어 불퉁한 마음이 되었다. 어제는 다음 주 부산행을 대비해 냉장고를 살피고 해치워야 하는 재료들로 일요일까지 먹어 없앨 반찬을 만들었고, 10월 초에 G가 준 고구마 중 마지막 남은 2개를 손질해 칩으로 만들었다. 1인 가구 살림인데도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낮시간은 주부 모드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와중에 연골주사 맞고 3주간 약 먹은 어깨는 빨이 다했는지 다시 아프고 만성이 된 허리 통증도 슬슬 존재감을 보내와서 실시간으로 노화를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다 내 탓인데도 여기저기 불편하고 아프니 컨디션이 별로였고, 기저에는 며칠 후로 다가온 편치 않은 시간들에 대한 무의식 중의 짜증스러움도 깔려 한 몫을 한 것 같다. 쉬는 동안 읽어야 할 책을 열심히 읽고 부산 가기 전 공간에서는 해야 할 정리들을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으나, 쉬는 동안 배구인이라도 된 양 지난 경기들을 챙겨 보고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웨일스 소년들을 보며 가끔 웃다 보니 이틀이 금세 가버렸다.

 

출근하기 정말 싫었지만 출근이라도 없었다면 좋지 않은 늘어짐이 며칠을 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부산 가기 전까지 출근은 나흘, 사이 계획보다 속도를 내지 못한 정리를 다 하는 건 어렵다 싶어 읽어야 할 책 몇 권을 먼저 읽고 정리하는 걸로 바꿨다. 부산국제영화제 다녀온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이렇다는 게 좀 별로고 결과적으로는 내 탓이지만, 약간 트라우마처럼 남은 10월 중순의 어이 없는 상황과 후과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스스로를 양해해주기로 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유연한 인간이었나 싶지만,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하여 오늘 공간에서는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한 책을 마저 읽었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정리도 대략 마쳤다. 어차피 나하고만 상관 있는 일이라 계획을 수정하는 게 별 의미는 없지만, 불가피한 변수가 핑계라도 자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사실 지금의 가장 간절한 바람은, 바람은... '작은' 해방의 순간을 올해 안에 맞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