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일지

시작

나어릴때 2022. 7. 1. 17:47

 

 

 

"백석 시인의 백십 번째 생일이자 백수 생활 만 2년차인 오늘, 연초 결심대로 책방을 열지는 못했으나 작은 시작을 맞았다. 날짜 맞춰 계획 세우고 의미 부여하는 거 좋아하는 편이라 나름 흡족, 백석 시인의 백십일 번째 생일에는 소박한 책방을 지키고 있기를-"이라고, 아무도 관심 없는 sns에 기록해두고 워밍업 공간에서의 첫날을 시작했다. 통영 와서 가장 직접적으로 충격적이었던 돌변과 짜증의 트라우마를 남긴 냉난방기는, 제습 모드로 해놓으니 여지없이 설정온도와 멀어졌는데 같은 브랜드의 냉난방기를 사용하는 옆 가게 부부에게 물어보니 냉방 모드로 하면 좀 낫다고 한다ㅠ 집에서 쓰던 에어컨과는 너무 다른 방식(?)이지만, 친절했던 총판 사장님의 돌변까지 경험하고 싶지 않아 일단 킵해두고 다음 주 공유파트너가 함께 있을 때 현장에서 확인하고 상의해보기로 한다. 인터넷을 설치했는데 한 달여 전 집 와이파이 고장으로 방문하셔서 공유기를 바꿔주신 기사님이었다, 좁은 동네 실감.

집에 있는 가구들을 옮겨놓은 휑한 공간, 창문 쪽에 붙여 놓은 작은 책상이라도 채워볼까 싶어 대충 챙겨온 것들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책장에 놓였다. 내일은 좀 차분하게 뭐라도 챙겨와볼까 싶다. 간판이 어엿한 이발소와 사장님의 안부를 묻는 어르신 한 분이 계셨었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신다는 어떤 분이 들어오셔서 빈약한 책장을 5분쯤 둘러보고 가셨다. 책방이 되려면 두 계절을 지나야 하는데, 그렇게 말씀은 드렸지만 실은 아직도 약간 실감이 안 난다. 작은 시작을 몸도 알고 있었는지 때도 아닌데 생리를 시작했고, 오랜만에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다. 그래도 문 닫기 전에 문득, 매일 간단하게라도 하루를 기록하자는 생각이 났고 급하게 "마감일지" 카테고리를 만든 나를 칭찬하며 첫날 근무를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