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제 점심 즈음 사촌의 택배가 공간에 도착했다. 오후 3시쯤 이웃들과 모여 하루 연기된 슈톨렌 회동, 내 수준에서는 명품급인 비싼 빵을 다시 사먹을 일은 아마 없을 것인데 혼자 쟁여놓고 먹어 없애는 무의미함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가게와 동네, 어린 시절과 일, 리버 피닉스와 종교와 중독, 이혼과 위자료와 새로 생기는 카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가 즐거웠고, 슈톨렌을 핑계로 한 수다는 3시간을 넘겼다.
하여 평소 '봉평동 6시'인 나는 어제 무려 14분이나 늦게 퇴근을 하였고, 마감일지를 쓸 수 없었다. 통게하 사장님이 지난 번 대화 이후 업그레이드 버전의 '좋아한 일생' 로고가 박힌 에코백과 프린트물을 선물로 주셨고, 이는 장차 가게의 작은 간판이 될 예정이다. 공방 부부는 아마도 오늘 계약이 되고 다음 주부터는 가게를 보러 다니게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좋은 이웃과 조만간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흐린 하늘 덕인지 주말이지만 오늘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여행자가 별로 없다. 2시가 되기 전 예전에도 불콰한 얼굴로 들어와 고나리질을 하고 갔던 아저씨가, 처음인 양 들어와 지난 번과 같은 레퍼토리의 고나리질을 하고 갔다. 막걸리 한 잔 했다고 말문을 열었는데, 뭔 상관이며 왜 그러지? 몇 달 되지 않은 예전의 방문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혹시나 관심으로 여길까봐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공간에 출근해 어제 사촌이 함께 보낸 슈톨렌 안내문을 편집해 보내주고는 내내 딴짓 중이다. 2시부터 배구 경기가 이어지는 주말이어서 중계를 띄워놓은 탓에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고나리질 덕분에 올라온 옅은 짜증이 다른 이유와 겹치기도 했다. 6시까지 자리를 지킨대도 이러면서 시간을 보낼 것 같으니 오늘은 조퇴하기로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