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제나 현재에 맞닿아 있다.
책 발간 초기에 일찌감치 점찍어 두었다가 막상 손에 넣은 뒤에는 바쁜 일상에 밀려 뒷전이 되어버렸던 책이다. 1년 전 지인이 '한국현대사 특강'이라는 저자의 수업을 들으며 하도 자랑(?)을 해대는 터에, 나도 꼭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 와중에 성공회대 민주사회교육원의 시민대학 프로그램에서 한 학기에 한 번씩 저자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홍구,라는 이름과 가끔 만나는 글들로 꽤나 예리한 역사학자라는 인식만 있던 내게, 사람좋은 소박한 웃음과 함께 인간의 삶으로서의 역사를 너무나 인간적으로 전달하는 열정적인 그의 강의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새 학기에 '한국현대사 특강'에서 '군사주의와 한국사회'로 제목을 바꾼 그의 강의를 신청하고 부랴부랴 집어든 책이다.
단군에서 김두한까지,라는 근 오천년의 역사를 포괄하는 헤드카피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주간지 연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시의성과 지면의 한정 덕에 통시적인 접근보다는 관심 주제와 관련한 지엽적인 접근을 보이고 있다. 또한 역사를 보는 자신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주체적인 관점의 중요성과 더불어 교과서 역사로 대별되는 국수적인 반공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면서도,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다'는 양비론을 뛰어넘어 개방적으로 열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저자가 책 속에서 몇 번을 거론했던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이라는 안타까운 가정은, 책장을 넘기며 나 역시 자주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특히나 구한말을 거쳐 현대로 넘어오는 격동의 한국사에서 '만약'이 가능하다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 한 순간의 결정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의 역사는 조금 더 자랑스럽거나 조금 더 당당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일제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씨를 말리듯 일소해버린 좌파의 빈 자리를 차지한 친일과 친미들의 어이없는 행각들로부터 오늘 날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잉태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참담함을 넘어 참으로 암담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살지 못한 역사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선대에 대한 책임 전가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후대에게 앞선 역사를 살아간 선대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 앞에 새로워져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각성이다. 비판적 인식보다 먼저 주입되었던 교육의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별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이른바 '단일민족'에 대한 뿌리깊은 관념이나 어른이 된 이후 어느 정도 갖게 된 비판적 역사의식이라는 방법적 사고에 가려 뒷전이 되어버린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 혹은 망각, 사회에 만연하는 군대문화를 습관적으로 용인하는 일상적 무의식,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미국의 그늘에서 상대적 약자들에게 우리가 행했던 행태에 대해 참여하는 반성이 없는 점 등은 스스로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던지는 부분이었다.
2005-03-13 16:57, 알라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