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에세이 읽기에 대한 호불호가 선명해지는 걸 느낀다. 나이 들며 마음도 늙어가고 있기 때문일 텐데,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내게 전혀 맞지 않는 책을 만날 때의 불퉁함은 어쩔 수 없다. 제주와 가게라는 점에 혹한 나의 불찰, 소재와 마케팅에 혹하지 않는 선택이 필요하겠다. 나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의식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는, 전혀 알지 못하는 초면 작가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주의 옛집을 고쳐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글을 쓰며 살고 싶었던 저자는 몇 달 먼저 내려간 남동생과 남편과 함께 높은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낭만과 정취만을 상상한 것이 아님에도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려야 하는 집수리부터 난관은 줄을 잇는다. 책은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제주행을 용사의 모험이라는 컨셉으로 전개한다. 저자는 두 명의 조력자와 함께 제주에 던져진 용사, 미션은 하늘과 땅에서 하나씩의 보석을 모아 손에 넣는 것이다. 제주로 떠난 저자에게 부여된, 시를 껴안은 예술가이자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의 목표다.
저자가 시인이라는 점은 특징이 되겠지만, 이미 비슷한 내용을 담은 에세이들은 너무 많다. 나름의 변별성을 위해 용사의 모험이라는 게임 구도를 큰 틀로 잡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전면화하기에는 일관성과 유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컨셉이 내용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 상태에서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다소 임의적으로 등장하는 ‘용사’ 페르소나는 자주 거북스러움과 어색함을 안겼다. 저자가 쓴 글이니 주인공인 '용사' 중심의 관계와 사고는 불가피하겠지만 남편과 동생에 대한 '조력자' 호명은, 상황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전제한 듯한 권력장의 기운과 위계가 느껴지는 것도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에세이가 자전적인 부분을 상당수 포함하지만 ‘용사’ 컨셉의 부담 못지 않게 행간에 흐르는 과잉한 자의식도 좀 힘들었다. '아는' 작가라고 해도 보통은 글을 통해 알 뿐이지만, 이렇게 전혀 모르는 작가의 뜨겁고 강렬한 자기애와 강렬한 욕망들을 만나는 게 나는 가끔 당황스럽다. 중간쯤 드러나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어린 날을 보내온 저자의 경험을 읽으며 약간은 끄덕이게도 되었고, 자신이 미처 몰랐던 것들이나 잘못 생각했던 것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는 부분에서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렇기도 하고, 그래 봤자 종이에 얹힌 글자이지만 그로부터 느껴지는 어떤 요란스러움을 나는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독자인 것 같다.
절반쯤의 장에는, 말미에 그 시기에 쓴 시가 실려 있다. 나는 시를 잘 모르지만 시와 산문을 읽을 때의 리듬과 호흡이 다른 데다, 저자의 시와 산문은 문체와 온도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산문과 시의 병렬적 구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거나 조화롭게 느껴지지 않았고, 뭔가 흐름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굳이 왜 중간에 시를 실은 걸까, 저자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잔뜩 몰입 중인 독자에게는 다르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불필요한 전시처럼 여겨졌다.
마지막으로, 실은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눈에 확 들어온 오기가 거슬려 책에 대한 기대 자체를 반감시킨 측면도 있지 않았나 싶은데. 17쪽의 ‘녹록치 않은’에 뭔가 바람이 빠지는 기분이 되어 버렸는데, 94쪽에 또 나오자 솔직히 짜증이 났다. 나도 틀릴 때가 있지만, 띄어쓰기도 아니고 '녹록지 않다' 같은 퀴즈에도 단골로 나오는 정도의 맞춤법이 틀린 걸 보면 좀 그렇다. 두 번이나 나오길래, 혹시 둘 다 인정되는데 내가 몰랐나 싶어 국립국어원에서도 찾아보며 더욱 김이 새버렸다. 흔하지 않은 왼쪽 정렬도 편집의 개성으로 느껴지기기보다 거슬렸는데, 정말 여러 모로 나랑은 맞지 않는 책이었다.
강지혜
2021.3.26.1판1쇄찍음 4.9.1판1쇄펴냄, (주)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