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나어릴때 2019. 6. 17. 01:01

제목은 꽤 들어봤는데 늦게 읽었다. 출간된 지 4년여 만에 11쇄인 걸 보고 괜히 좀 기쁘기도 했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라는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인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사회학자인 저자가 수년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토론하고 심층면접하고 분석하며 이십대 학생들을 참여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의식의 시작은 2008년 ‘인권과 평화’라는 과목의 강의 시간에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던 중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학생들의 반론과 싸늘한 반응을 마주친 것이었다.  
‘강의실에서 바보가 된 어느 시간 강사의 이야기’로 이름 붙인 1장에서는, 한국사회의 어느 세대보다도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취업과 성공의 압박에 시달리는 소위 ‘IMF세대’인 이십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KTX 여승무원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 용산참사 철거민들의 저항 등 사회적인 이슈가 된 문제들에 대해 강의하고 토론하며 느꼈던 ‘이십대의 변화와 그 원인’을 탐색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의 배경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의식이 낮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이십대의 ‘보편성’을 저자는 사회가 강요하는 자기통제적 자기계발과 그 내면화 및 악순환에서 찾고 있다. 무한경쟁과 학력위계주의 속에 인생 최초의 이십년을 보내며 성장한 대학생들에게는 당당하게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위한 스펙쌓기라는 지상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취업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철저한 시간관리와 노력으로 수험생 시절만큼이나 빡빡하고도 불안한 일상을 보내야만 하지만 고등학교 3년처럼 정해진 끝도 없다는 것이 취준생의 또다른 고통이다.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기제가 없는 상태에서 이십대들은 그 무게를 오롯이 혼자 견디며 성공도 실패도 개인의 책임으로 여긴다. 그 과정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중단할 수도 없다. 자기계발서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마침내 성공한 극소수의 사례를 들이밀며 ‘나의 노력부족’을 채찍질하고 긍정강요와 희망고문으로 더욱 더 나아가라 부추기고, 이십대들은 ‘자기계발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사회의 모순을 지운다. 이러한 자기계발 논리를 내면화한 이십대에게 비정규직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결과, 노동자들의 파업은 배부른 짓이며, 철거민들의 저항은 공정하지 않은 생떼로 인식되기에 때로 인간적인 연민을 느낄 수는 있어도 동의하거나 지지할 수는 없는 이슈다.
그 결과 ‘괴물이 된 이십대’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이에 대한 편견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존재들이 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한국 사회에 상존하던 학연이나 학벌주의와는 또다른 촘촘한 학력위계주의를 만들어내 대학별은 물론 대학내에서도 다층적인 차별과 위계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십대들은 자신이 평생해온 노력의 유일한 ‘객관적 증명’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대학과 학과를 기준으로 누군가에 의해 멸시당하고 또 그만큼 누군가를 멸시하며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그 구조를 공고히하는 데에 기여한다. 이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혹은 지금 자신의 만족 여부나 불합리하다는 감정 여부와 무관하게, 현재까지 자신의 노력을 정당화하고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덜 뒤처지고자 하는 발버둥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양가적 감정과 판단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상쇄될 리는 없으니 다시 자기계발서로 돌아가서나 맞짝을 이루는 각종 ‘힐링’을 소비하며 잠시나마 가짜 위로에 머무를 뿐이다. 물론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일개 저자가 이십대 개인들의 삶과 노력을 대신할 명쾌한 대안을 내놓을 수도 없다. 
4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를 치유하자!’다. 자기계발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들이 맹신하는 능력주의와 이를 지탱하는 소위 공정성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모두가 개인에만 매몰되는 동안 은폐되는 것들에 대해 따져본다. 특히 능력주의의 전제가 되어야 할, 또 위정자들이 강조하는 ‘기회의 균등,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담론의 허구성에 대해 찬찬히 짚어보며, 설사 출발과 과정이 공정했다고 해도 그 결과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고 생존 자체에 고통이 따르는 결과에 봉착한다면 그 불평등을 메울 다른 수단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지금 이십대가 위험하다’는 머리말에서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복이라는 산양들이 가끔씩 집단 전체가 맹렬히 달리다가 절벽에서 함께 떨어져 죽는 상황을 한국 사회의 이십대와 유사하다고 떠올린다. 읽으면서 시작부터 꽤 충격적인 비유라고 느꼈는데, 이십대들을 근거리에서 볼 일도 소통할 일도 없지만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이 걱정되는 사람으로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좀더 구체적으로 절망스럽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잘잘못의 문제 차원이 아니라 그런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내면화하며 성장해 다른 출구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이 기성세대로서 만들어갈 세상은 가해자와 피해자만 넘실대는 경쟁의 지옥(이미 충분히 그렇지만)일 뿐일 테니까. 그리고 사실 저자가 대학에서 만난 이십대들의 사회인식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그러할 뿐, 이러한 ‘각자도생’의 ‘와신상담’은 이미 세대를 초월한 보편의 인식과 생활방식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책 말미에 군대 100일휴가에서 복귀하며 장병들과 먹을 걸 싸들고 오기 시작해 갈수록 그 강도가 높아지자 이를 금지시킨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인간이 서로에게 지옥이 되고 대다수 경쟁의 패자는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며 승자 역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이 비극의 악순환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까... 반가운 만큼이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책이다.


오찬호
2013.12.5초판1쇄 2017.7.3초판11쇄, 도서출판 개마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