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

[좀도둑가족]

나어릴때 2019. 3. 10. 19:22


좀도둑가족은 하쓰에를 빼고는 모두 두 개의 이름을 가졌다. 오사무와 노부에는 하쓰에를 떠난 아들내외의 이름, 아키는 자신이 집을 떠나게 만든 동생 사야카의 이름, 쇼타는 원래 이름이 있었겠지만 알 수 없어 붙여진 오사무의 원래 이름, 린은 잘못 알아들어 유리로 불렸지만 주리라는 이름이 있었다.

자신의 원가족에서 상처받거나 버려진 이들이 복수와 연민, 따뜻한 가족을 만나고픈 바람 혹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혹은 상처를 피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어서 더욱 끈끈한 유대감이다. 자신이 간구했으나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오히려 혈육이 아닌 이에게 느끼는 찰나, 이들은 자신들의 왜곡된 선택과 생활에 대한 정당함과 소중함을 느낀다. 그러나 가르쳐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 좀도둑질을 알려주고 학교는 집에서 베울 게 없는 아이들이나 가는 거라고 말하는 반사회적인 오사무의 보살핌보다, 쇼타의 성장과 판단은 더 올곧고 빠르다. 

고로케, 밀개떡, 수영복, 마술, 구슬, 눈사람이라는 제목이 붙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영화와 거의 같은 순서로 서술되고, 대화도 거의 다름없이 쓰여졌지만 각 장의 구분 덕에 감독이 의미를 부여한 상징과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의 유기성이 더 잘 와닿는다. 그리고 인물들의 양가적인 감정과 태도를 뒤늦게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있어 영화를 보며 놓친 부분들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를 높여준다. 

특히 영화에서는 암시되거나 간략히 넘어간 하쓰에와 오사무, 노부오의 만남과 아키와의 만남이 짧게나마 설명되어 있다. 물론 영화를 볼 때 모른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말이다.

나름의 기승전결에 충실하지만 큰 사건이랄 게 없이 고요히 흘러가는 일상 덕인지 영화를 보면서는 쇼타가 잡힌 이후 경찰과 언론의 호들갑 속에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고 해체되는 부분의 비중이 꽤 크게 느껴졌었는데 소설의 분량에서는 10% 남짓이나 될까 싶다.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는 도덕도 윤리도 없는 가족들이 삶에서 보여주는 인간애와 서로에 대한 보살핌 같은 것들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져서 중반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문장과 영화를 떠올렸는데, 후반부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보여지는 조사관들과 노부오의 대화와 관계에서는 [세 번째 살인]의 문제의식이 크게 와닿았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가족과 인간에 대한 이상이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는 현실을 삶 자체로 웅변하는 이들이 가진 힘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감독은 오사무나 쇼타의 눈을 통해 바라본 노부에를 어느 국면에서는 ‘아름답다’거나 ‘거룩하다’고 표현한 게 아닐까 싶기도. 좀도둑가족들은 서로에게 별로 장황하게 긴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지만 그 깊은 마음을 말로 구구절절 읊어대는 일이 별로 없고 대화들도 보통 한 줄을 넘지 않고 질문도 짧고 답은 단답형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쩌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들 중 하나일 하쓰에의 “고마웠어.”와 쇼타의 “...... 아빠 ......”는 누구도 듣지 못하는 나직한 혼잣말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암튼 영화 [어느 가족]과 소설 [좀도둑가족]은 꽤나 보완적인 작품들이다. 보고 읽으며 지나쳐버린 여러 느낌과 단상들을 모두 잡아 기록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운.


고레에다 히로카즈•장선정 역, 3/9

2018.8.8 1판1쇄인쇄 8.16 발행, 비채(김영사 문학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