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와초콜릿공장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봤다. 팀버튼과 쟈니뎁 그리고 대니엘프만. 하나같이 메인스트림에 있으면서도 고마운 마이너리티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삼총사. 아이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스크린으로 만나는 쟈니뎁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보고 왔다. 오늘 만난 쟈니뎁은 웡카 초콜릿 공장 사장 찰리. 우스꽝스러운 단발머리와 진한 화장으로 가린 창백한 얼굴, 비둘기 한 마리 쯤 들어앉았을 법한 높은 마법사 모자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만화 캐릭터와 같은 모습. 현실에서 이미 40여 년을 살아버린 그의 눈가에는 진한 주름이 그린 듯 파여 있었고, 버스터 키튼과 같은 과장된 제스쳐와 뒤뚱거리는 걸음이 '베니와 준'에서처럼 귀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인간 세상 언저리를 맴돌던 에드워드의 고독이 여전히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가족이라는 멍에와 힘겨운 세상 살이에 버거워하는 길버트의 창백한 안색이 읽혔다. 북풍과 함께 나타난 방랑자 로의 뇌살적인 아름다움은 솔직히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초콜릿과 이만큼 잘 어울리는 어른이 또 있을까 싶은... 쟈니뎁은 정말 보물같은 배우다.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의 원작이라고는 하지만, 팀버튼의 필터링을 거친 영화는 마치 '가위손'의 15년 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동화적인 분위기가 가미된 팀버튼의 배경은 늘 비슷비슷한 느낌이지만, 고만고만한 주택가들의 끝에 자리잡은 초콜릿 공장은 에드워드가 살았던 고풍스런 성을 연상시켰고 세상살이의 공력이 붙은 에드워드의 성장판인 듯한 찰리의 모습은... 소통에의 염원과 선악을 한 마음에 담은 채 인간 세상을 염탐하는 듯한 그 모습은, 아무리 자라도 결코 완전한(?) 어른이 될 수 없는 천상 자폐의 영혼을 지닌 자의 애틋한 세월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위손', '사랑의 눈물', '베니와 준', '길버트 그레이프', '초콜릿'. 내가 진정으로 열광했던, 푸르른 창백함을 지닌 아름다운 배우 쟈니뎁을 만날 수 있었던 영화들이다. 물론 우리 식의 나이 어림이지만, 불혹을 맞은 그의 여전함이 놀라웠던 '초콜릿' 이후로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그도 예외가 아님을. 대략 '캐러비안의 해적'에서부터 느꼈던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영화 속의 그에게서 때때로 전해받는다. 그도 늙고, 나도 늙고. 그나마 새롭게 한 편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예전의 그가 나왔던 영화에 대한 추억과 그 영화에 열광하던 나에 대한 기억과 그리고 그 영화로 인해 행복했던 그 시간에 대한 반추가, 함께 나이 먹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쟈니뎁 혹은 구스반산트의 영화를 새로 만날 때마다 늘 자연스레 떠오르는 리버피닉스. 만약에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고작 스물 몇 해를 세상에서 보낸 자의 어른된 모습은 참으로 상상이 어렵다. 그러고보니 벌써 10월, 그가 저 세상으로 간 지 12년이 되었다. 음... 리버피닉스를 생각할 때마다 이명처럼 따라붙는 생생한 목소리, 한참 새벽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던 가녀리게 떨리는 애도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cattle call'이나 'fire and rain'을 들려줄 때마다 애정 어린 멘트를 잊지 않았던 그녀 또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허공에의 질주'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녀는, 저기 하늘 나라에서 리버피닉스와 만나기나 했을까. 궁금. 산 자는 살아있어 좋고, 그러니까 죽은 자는... 그 억만금의 안타까움만 빼면, 이제는 변치않아 좋다.
2005-10-04 01:19,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