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

[토베 얀손]

나어릴때 2021. 9. 24. 22:10

 

 

 

토베 얀손이 예술가로서 작업을 시작해 무민 캐릭터를 그리면서도 그림에 매진하고 그러나 각종 지원 대상에서는 떨어져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한 시절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였다. 토베 얀손이 궁금해 보았는데, 사랑과 상처를 나눴던 비비카의 매력이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했다.

 

유부남 의원이자 사회주의 신문 발간에도 관여하는 아토스와 연인 사이로 지내는 토베는,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시장의 딸이자 연극 연출가인 비비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작업의 정체로 비비카와 함께하는 파리행은 실패하고, 아마도 비비카의 부탁으로 토베는 시청의 벽화를 그리게 된다. 벽화 작업으로 여비는 생겼지만 일정상 파리에 갈 수 없었던 토베는 돌아오는 비비카를 배웅하러 나간 역에서 새로운 연인과 함께인 그를 목격한다.

 

비비카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자 부르주아 예술가, 토베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스로 폄훼하는 만화 작업에서의 독창성도 인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연인 관계가 끝난 후에도, 토베의 집에서 몰래 챙겨갔던 [혜성이 다가온다]의 연극 작업 위한 희곡을 의뢰해 무대에 올리고 호평을 이끌어낸다. [혜성이 다가온다]는 바로 무민의 첫 번째 이야기다. 토베는 아토스와의 결혼을 결심하지만 매력적인 비비카는 그의 마음에서 쉽사리 물러나지 않는다.

 

토베의 아버지는 잘 나가는 조각가, 엄마도 화가다. 엄마는 토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애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지만 “예술가가 아닌 사람을 동정하라”는 말을 할 만큼 예술의 가치를 독보적으로 여겼던 아버지는 토베의 만화 작업이나 벽화 작업 등에 부정적이다. 분명 그러한 영향으로도 토베는 자신이 창조한 무민과 그 세계를 제대로 인정하거나 직시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연극의 성공으로 토베는 은둔하다시피 신문의 무민 연재만화에 집중한다.

 

즈음 동료인 반 삼니의 작품이 포함되는 전시회에 초대 받아 파리에 간 토베는, 극진한 호감을 가진 툴리키를 소개받는다. 그곳에서 비비카와도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갈등 속에 돌아선 토베를 따라나온 비비카와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이별을 선언한다. 이후 돌아와 다시 화구를 꺼내 그림에 열중하는 토베의 작업실에 툴리키가 방문한다. 평생의 반려자가 된 둘의 새로운 시작일 순간, 얼굴이 없는 “시작하는 사람” 그림으로 영화는 끝난다.

 

무민의 창조자이자 다방면의 예술가였던 토베 얀손의 청년시대를 압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2차대전 이후 예술가들의 분위기, 어렵고 힘든 와중에도 담배는 절대 놓지 않는 토베, 팜므파탈 비비카가 매력적이었고 무민과 토베의 한 시기가 입체적으로 조망되어 좋았다. 툴리키와의 만남 이후도 속편으로 나오면 좋겠다.

 


9/19 cgv용산아이파크몰 박찬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