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렐 마더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진작가 야니스는 화보 촬영을 진행한 법의학 인류학자 아르투로에게 고향의 유해 발굴과 관련한 도움을 청한다. 할머니 손에 자란 야니스는 어려서부터 스페인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증조부와 고향 마을의 상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후대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증조부는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과 희생자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일일이 기록했으나 자신도 같은 운명에 처했고, 할머니는 그 증거를 손녀에게 전하고 세상을 떠났다. 야니스의 집에서 옛 자료들을 확인한 아르투로는 유해 발굴 신청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도움을 약속하고, 이를 계기로 친밀해진 둘은 연인이 된다.
얼마 후 야니스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찾아온 생명에 기쁨을 느낀 야니스와 달리, 아내가 암투병 중인 아르투로는 난처함을 표한다. 아르투로에게 결별을 고한 야니스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싱글맘으로서 아이를 낳고 기르기로 결심한다. 출산을 위해 입원한 2인실 옆 침대에는 앳된 아나가 있다. 야니스에게는 사업을 하는 오랜 친구 안젤라가, 야나에게는 배우로 활동 중인 엄마가 이따금 찾아와 살피지만 출산을 앞둔 두 사람에게는 같은 처지로서 나누는 대화와 북돋움이 큰 위로다. 둘은 같은 날 딸을 낳았고 아기들은 건강 문제로 며칠간 신생아 관찰실에 머문다. 입원 기간 동안 가까워진 야니스와 아나는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한 뒤 퇴원한다.
야니스와 아나는 각각 세실리아와 아니타의 엄마로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다. 갓난아기가 선사하는 경이로움과 행복감에 충만한 날들이지만 야니스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육아를 위해 채용한 어린 보모는 미덥지 않고, 집으로 찾아와 아기를 본 아르투로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내뱉는다. 아나는 부모가 이혼한 뒤 아빠의 집에서 살다가 강간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됐고, 출산과 함께 공연으로 바쁜 엄마의 집에 얹혀 살면서 아니타를 키우고 있다. 사랑스러운 아니타에게 전념하며 엄마의 삶에 익숙해지는 중이지만, 데면데면했던 엄마와의 관계도 딸과 손녀보다 커리어를 중요시하는 엄마에 대한 마음의 벽도 여전하다.
세실리아는 야니스와 아르투로와는 달리 아몬드 모양의 눈을 가졌다. 아르투로의 말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야니스는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고 자신이 친모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확인한다. 병원에서 아기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아나를 떠올리지만 섣불리 입 밖에 낼 수 없고, 괴로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누르지만 아르투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후에 걸려온 그의 전화에도 잘못 걸었다고 둘러대고 만 야니스는 혼자만의 비밀을 고통스럽게 감내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스러운 세실리아와 함께한다.
즈음 무성의한 보모를 내보내고 아이를 베이비시터의 집에 맡기며 일하던 야니스는 카페에서 우연히 아나를 조우한다. 병원에서와 달리 짧은 염색 머리를 한 아나는 야니스의 집에서 그간 일어난 일들을 털어 놓는다. 아무런 전조 증상 없던 아니타가 얼마 전 죽었고, 희박한 확률의 유아 돌연사였다. 아이를 잃고 우울증에 빠진 자신을 두고 엄마는 다른 지방으로 공연을 떠났고, 아나는 집을 나와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야니스는 함께 지내면서 세실리아를 돌봐달라고 제안하고 아나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세실리아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야니스는 아나에게도 검체를 체취해 검사를 의뢰하고, 아나가 세실리아의 친모라는 결과를 확인한다.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외롭게 자란 아나는, 어린 나이에 험한 일을 겪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데다 아이를 잃기까지 했지만 가족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이나 정서적 위안을 받지 못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지독한 일들을 연쇄적으로 경험하며 불안하게 방황하는 아나에게,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며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야니스는 고맙고 소중한 존재로 다가온다. 출산 경험을 공유했던 두 사람은 병원에서와는 다른 차원으로 가까워지며 성애를 나누는 사이가 되지만, 아나를 기만하고 있다는 무거운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야니스가 사실을 고백하자 아나는 세실리아를 데리고 떠난다.
고향 마을의 유해 발굴 작업과 관련해 야니스는 책임자인 아르투로와 재회한다. 그 사이 아르투로는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이혼했고 야니스는 혼자가 되었다. 유해 발굴 전 조사를 위해 찾은 고향 마을 사람들은 야니스를 다정히 환대하며 학살당한 가족의 사연을 들려주고, 둘은 야니스의 고향 집에서 다시 연인이 된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은 할머니와 엄마가 태어나고 자신이 자란 집이며, 처형당할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는 대신 가족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로 결심한 증조부가 끌려간 곳이다. 사회와 가족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오랜 집에서, 타인의 품에서 너무 이르게 세상을 떠난 아니타의 동생이 잉태된다.
잡초가 무성한 너른 들판의 한 구역에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유골들이 수습되고, 마을 사람들이 언급했던 희생자들의 결혼반지와 딸랑이, 하나의 의안 같은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땅 속에서 마구잡이로 엉켜 수십 년이 지난 백골들이 대략이나마 사람의 형상으로 눕혀지고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내리쬐는 햇살 아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온다. 처형 당한 조상들의 영정을 필두로 행진하는 이들 중에는 멋모르는 세실리아와 얼마 전까지도 역사의 진실에 무지했던 아나도 있다. 잊지 않고 되살려낸 역사의 현장에 당도한 살아있는 자들 사이에는 먹먹한 울림이 감돈다. 영화는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적 작가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침묵의 역사란 없다"라는 자막과 함께 마무리된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화보 촬영으로 시작된 영화는 곧 야니스의 언급을 통해 흑백 사진으로 남은 근선조대의 역사와 연결되고 유해 발굴, 학살, 팔랑헤당 같은 단어들을 발화한다. 제목과 주요 정보가 두 엄마와 두 아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영화를 감싸고 또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의 등장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베드신에 이어 임신한 야니스의 병원까지 속도감 넘치는 카메라를 따라가는 초반부는, 인식 차원의 구분과 달리 경계없이 뭉뚱그려져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와 현재, 공과 사, 역사와 현실 등의 불가분한 혼재를 상징하듯 압축적이다. 몰아치는 인트로를 넘어 야니스와 아나가 한 병실에 입원한 병원에서부터, 차분하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에는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거리감과 세월의 흐름으로 무화되지 않는 과거의 선연함이 배어 있다.
영화에는 여럿의 엄마가 등장한다. 학살당한 아버지의 기억을 품고 요절한 딸의 딸을 키웠던 야니스의 할머니, 히피처럼 살다가 얻은 딸에게 좋아하는 뮤지션의 이름을 붙이고 재니스 조플린처럼 27살에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야니스의 엄마, 가계의 결핍을 모계의 자연스러운 전통으로 여기고 싱글맘의 운명을 자처한 야니스, 배우로서의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만큼의 그늘을 딸에게 물려준 테레사, 재앙처럼 찾아온 임신을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모성과 사랑을 느끼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하고 거짓말처럼 진짜 아이를 되찾은 아나. 그 모든 엄마와 딸은 다르지만 닮았고, 원했든 원치 않았든 자신에게 온 생명을 키워냈으며, 그렇게 성장한 개인의 삶이 겹쳐지고 쌓이며 역사가 된다.
역사의 진실과 여성의 연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영화에서 야니스는 총체적인 이상성을 부여받은 캐릭터로 느껴졌다.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와 비극적인 가족사는 그를 짓누르기보다 주체적 성장의 기반이 되었고, 가족을 넘어 고향 마을과 과거로 연결된 책임감은 세계에 대한 균형감각과 실천적 역사의식의 원천이 되었다. 레시피 없이 이런저런 요리를 뚝딱 해내는 솜씨나 오래 전 떠난 마을 사람들과 금세 어우러지는 모습은 야니스의 생활력과 안정감의 뿌리였던 할머니와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혼자 살아가는 야니스에게 부재하는 가족은 내면적 성숙과 지혜로움의 본령으로, 멀리 있는 고향은 그를 키워낸 하나의 마을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야니스는 변화한 세상에서 자신의 시점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기록하는 사진작가이며, 증조부가 남긴 사진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좇는 후손이다. 그러나 '세실리아의 진실'은 오래 천착해온 과거에 대한 태도와 다른 모습을 끌어내기도 한다. 애지중지 키우며 구체적인 친밀감의 세계를 경험하고 구축 중인, 사적 삶의 유일한 동반자에 대한 마음은 증조부와 선대를 향한 양심이나 책임감으로 충만한 야니스를 갈등과 모순으로 이끈다. 번민과 혼란 속에 끝내 진실을 고백하고 다시 혼자가 되는 모습은 냉정한 운명의 무게로 작용하지만, 야니스의 삶은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아르투로와의 재회, 오랜 숙원의 해결과 함께 찾아온 것이 새로운 생명이라는 점은 전형적인 전개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그렇게 지속되어 왔다는 걸 생각하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야니스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중층적으로 겹쳐지며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영화는, 생각을 다양한 갈래로 이끈다. 핏줄로 이어진 뿌리에 대한 성심이 가닿는 사회와 역사의 진실, 학살과 강간에도 가계와 역사를 잇는 여성의 존재감, ‘가부장적 정상가족’과 별개로 존재하는 삶의 온전성, 살아남은 이들의 연대로 구성되는 대문자 가족 같은 큰 이야기부터, 혼란한 운명의 당사자에서 동거인과 연인으로 경계를 오가는 두 사람의 유연한 관계까지 말이다. 엉뚱하게 튄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적 삶과 공적 삶, 개인과 역사,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여성의 존재는 눈부셨고 주체적인 생존자들이 복원해 낸 역사의 진실, 발굴 현장을 향하는 무리의 모습은 찡하고 감동적이었다. [페인 앤 글로리]로 오랜만에 다시 만났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다시 한 번 푹 빠졌고, 놓친 그의 전작들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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