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

[후쿠오카]

나어릴때 2020. 10. 22. 10:37

 

 

50대 남자들의 첫사랑 후일담이 꽤 역겨웠다. 어릴 적 연극무대에서 많이 보았던 터라 권해효 배우에 나름 호의적임에도, 윤제문의 낯섦과 귀신 혹은 요정처럼 둘 사이를 중재하고 통제하는 (남성 감독에 의해 대상화된, 소녀와 성녀를 겸비한 캐릭터라고 생각되는) 박소담 포지션의 거북스러움은 영화를 보는 내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들국화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윤동주의 “자화상”과 “사랑의 전당”이며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그리고 노아 바움벡과 그레타 거윅의 “프란시스 하” 포스터까지, 50대와 20대를 아우르고 꼰대와 페미니즘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공간과 인물의 정취를 더하기 위해 등장시킨 듯한 오브제들도 어쩐지 제대로 자리를 찾은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기술적으로 언어를 습득하지 않았음에도 외국인들과 소통하고 타인의 마음을 곧잘 꿰뚫어내며 스스로도 알 수 없이 어떤 시공간에 존재하는 소담이라는 인물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타임워프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면서 현실의 한 경계를 몽환적으로 채색하는 캐릭터로 고안된 것이라면... 마땅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와중에 마지막 씬, 서점에서 울리던 전화와 낯선 남자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불퉁한 마음이 지속되어선지 상상의 나래보다 어쩌라고? 하는 느낌이 들어버렸다. 어렸을 적 [망종]에 매료된 후 장률 감독의 영화를 꽤 좋아하며 봐온 편이었는데, 인디스페이스 종영날 굳이 찾아가서 본 게 좀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냥 못 본 채로, 조금 아쉽게 두고 말 걸. 


10/19 인디스페이스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