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크리스마스 따위. 라는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던, 어른이 된 후 마음의 저변이 가장 우울한 성탄이었다. 주말의 잇달은 부고, 그리고 좀 전에 또 한 분의 부고를 접했다. 모두 낯 모르는 분들이기는 하다. 비통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분들이 느꼈을 그 깊은 절망을 짐작하기 어렵다. 어려운 싸움을, 당사자로서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터다. 24일은 새벽까지 참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사회적 심란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어이 다섯 시를 넘기고 잘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잠이 들었고 용케 일어나 출근을 했다. 아무려나, 개인적인 이유로든 감도는 분위기 때문이든 내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멀었다는 걸 지극하게 실감케 한, 함꼐 일하는 이의 흥얼거림과 혼잣말들의 거슬림. 힘들었다ㅠ 신자도 아니고 성탄이라고 뭘 특별히 기념하며 살아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문득 오래 전, 그러니까 무려 96년의 성탄이 떠오르기에 이르렀다. 그해 봄 나는 첫 연애를 시작했고 마침 그 첫 성탄에 남자친구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 겨울 어느 날 대학로 밤거리를 혼자 걸으며 흥청이는 성탄 연말 분위기를 돋우는 지나는 연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속엣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도 문득 한 번씩 떠오르는 기억들 중의 하나. 아마도 외로웠기 때문이리라. 불면의 새벽을 보낸 후 몰아닥친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퇴근 시간을 한 시간쯤 넘기니 너무 피곤해서 곧장 집으로 왔다. 내심 콜트공장의 성탄미사가 마음에 걸렸지만, 신자도 아니고 가봐야 늦을 것 같다는 핑계도 한 몫 했다. 그리고는 성탄절 선물처럼 피곤한 몸과 쏟아지는 잠 덕분에, 물론 잠시나마 반가운 연락 같은 걸 기대하는 마음이 영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암튼, 정말 푹 잘 잤다.
안타깝게도 성탄절은 유사연휴다. 하루 쉬는 건 참 좋지만, 일요일과는 또 달라서 나도 모르게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하고 있더라. 좀은 한심하기도 해서 오랜만에 마음 먹고 책을 읽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은 게 언제적인지. 물론 백프로 내 탓이다. 얼마 전에 주문한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의 산문에는 마음을 '칭커'하는 흡인력이 있다. 책장을 펼치기 전후의 세상이 그의 글을 읽을 때와 별 다를 게 없단 걸 뻔히 알면서도 읽으며 기쁘고 다시 그의 책을 찾게 되는 이유다. 가끔은 '좋은글'스러운 느낌이 들어 괜한 저항감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경험과 긍정에 기반한 글쓰기에 대한 흔쾌한 믿음을 주는 작가다. 눙치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 더더욱 좋은. 하지만 아쉽게도 기대의 근거가 된 "청춘의 문장들"이나 "여행할 권리" 만큼 좋지는 않았다. 작가의 다음 산문집을 읽으려면 나도 달리기를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달리는 자의 정체성이 나날이 깊어가는 터라 뒷부분으로 갈수록 좀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맥락은 좀 다르되, '용기란 한없이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멋진 말을 발견했다. 그렇지, 그렇구나. 용기란 원래 있거나 없거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게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다는 시덥잖은 생각. 그리고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로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이나 공연장을 나와서도 우리가 그렇게 존재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삶이다.' 완전 동감. 아무려나, 다시 연말이 되니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뭔가 마음을 먹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자주 생각하는 '관심과 관계의 좌표를 혼동하지 말자'는 말은 앞으로도 마음에 붙들어매놔야겠고, 올해 남은 개인시간의 상당 부분은 4월 13일부터 12월 8일까지 시도때도 없이 떠올랐고 궁금했던 마음의 정체를 살피고 확인하는 것에 집중을 해볼까 싶다. 물론 시간은 언제나처럼 무심히 지나갈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