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

5월 16일

나어릴때 2012. 5. 15. 23:52

 

블로그에 쏟아놓는 걸로는 택도 없는 마음을 달래려 다섯 시간의 폭풍수다를 쏟아놓고 집으로 돌아온 밤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몇 년 만에 만나 맥락없는 장광설을 늘어놓아도 기꺼이(?) 다 받아주는 친구를 인질 삼아 떠오르는 말, 흘러가는 말, 고여있는 말, 담아뒀던 말. 참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예전에 폐쇄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위대한 침묵"을 보며 그 정갈한 고요에 마음이 흠뻑 젖어 소란스런 내 영혼 어느 구석에도 이런 참한 적막이 있나 내심 흐뭇했었는데... 역시나 영화는 영화일 뿐. 속 깊은 대화는커녕 편하게 말 섞을 사람도 없는 날들을 보내며 발설욕구가 감당가능치를 넘었던 모양이다. 가끔은 토사물처럼 내뱉은 많은 말들 때문에 도리어 머쓱해지기도 하지만 불편하게 쌓여있던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 뒤 속에는 그래도 숨 쉴 구멍이 생긴 듯도 하다. 전에 없던 편두통에까지 시달리던 며칠을 생각해보면 가히, 말의 힘 마음의 힘을 실감하는 요즘.

 

오늘 아침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일과 관련된 용건이 분명한 메세지이기는 했지만, 알림소리와 함께 정신없는 잠결에도 눈을 의심할 만한 발신자의 이름이 폰화면에 떠있는 걸 보며 깜짝. 덕분에 예정한 시각보다 일찍 일어나 재판이 있는 충주에 가는 발걸음까지 덩달아 서둘러졌다. 여유로운 도착 시간, 무얼 할까 터미널을 두리번거리던 차에 같은 재판 방청 온 다른 단체 활동가를 만나 꼼짝없이 함께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을 때워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평소의 나답지 않게, 그리 낭패스러운 마음은 아니 들더라. 물론 이유는 그 활동가의 사근사근한 태도와 편안함 때문이겠지. 재판은... 다시 한 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화학작용으로 빚어내는 수도 없는 상황들로 엮여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어찌 보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1시간 반 가량 이어진 재판이 끝나고 적산건물같은 법원 뒷마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버스.

 

일반 고속버스가 선사하는 불편한 자세를 어쩌지 못해 잠도 못 자고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마치 인사를 건네는 것 같은 녹음에 잠시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이래저래 오늘을 반추하며... 일희일비는 뭐랄까, 정말 순간의 일희일비로 그친다면 별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좋으면 좋고 슬프면 슬픈 게 또 사람이니까. 하여, 오늘은 정말 사소한 두 가지로 일희해도 괜찮다 싶었던 날. 별개로 아쉬웠던 건, 충주와 청원이 얼마나 가까운지 먼 지 알 수 없지만.. 아무려나 같은 충북 소재지임에도 충주까지 가서도 청원에 계신 선생님께 연락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것. 스승의날 안 챙긴지 십 년은 된 것 같지만... 그래도 죄송하고 아쉽기는 하다. 올해 안에 한 번 갈 수는 있을까. 어쨌건 불과 일주일 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살 것 같은 날들이다. 더구나 내일은 종일 혼자! 어차피 견뎌야 할 일이면 즐겁게, 당분간 일희일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