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
5월 2일
나어릴때
2013. 5. 2. 01:30
집에서 나와 첫번째 골목을 돌아서면 보이는 간판. 다른 데서라면 전혀 반갑지 않았을 '근로'라는 말이 정겹게 느껴진 건, 처음 마주쳤을 때 문득 '초원사진관'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낡고 오래 된 단층집들과 영업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갸우뚱해지는 작은 가게들 그리고 한 세대는 자리를 지켰을 법한 마찌꼬바들이 늘어선 골목, 3월부터 버스로 출퇴근을 하면서 새롭게 만나게 된 동네 풍경이자 재개발로 5월부터 이주가 시작되면 사라질 풍경이다.
쫓아오는 백골단도 온 시야를 흐리는 최루탄도 없이, 간편하게 차벽을 세워두고는 매끈하고 일방적인 공권력의 질서에 도전하는 몇몇에게만 정조준으로 쏴대는 최루액. 폭압의 하중은 모두가 함께 쫓기던 시절과 다름이 없는데, 언젠가부터 견고한 폭력의 철옹성을 돌파하겠다고 나서는 한 줌의 동지들만 맞고 다치며 대다수는 관조하는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죽었다 하고 또 누군가는 죽지 않았다 하는 민주노총의 생사 논란과 별개로... 스스로가 참 부끄럽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던 노동절. 영등포 한 구석에서는 근로이발관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근로자든 노동자든 일하는 사람들의 땀으로 머지 않아 차벽처럼 견고한 건물이 들어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