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

5월 27일

나어릴때 2012. 5. 27. 23:59

 

차암 다행인 게... 어쨌건 시간은 간다. 예전에 구효서 작가 책 중에 그런 게 있었는데. "인생은 지나간다" 였나. 지금의 내 마음같은 느낌으로 붙인 제목은 아니겠지만... 아무려나, 시간도 인생도 지나간다. 다행스럽게도. 오월 중순 이후로 그래도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밤에는 잠이 안 온다. 정신에만 깃들지 않는 게 아니라 온 몸이 불편한 상태로 잠을 청하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한참. 정말 피곤한 일이다. 워낙에 별로 아프지를 않으니 설마 내가 불면증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장기간 제대로 잠을 못 자면 그게 불면증 아닌가 싶기도 하고. 민망하게도 삼일 간의 연휴를 생각하고 위로하고 또 위로한다.

- 라고 5월 23일 밤에 쓰다가... 접었나보다. 그냥 뭔가 허하니까 펼쳐놓고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 봐야 그 소리가 그 소리라는 생각 사이에서 한 동안은 침묵을 택했다. 물론 상대가 없을 때 독백과 침묵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기다렸던 연휴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이제는 금세 지나는 시간이 아쉽다. 요일이니 쉬는 날이니 따질 겨를 없이 내내 싸우는 분들이 떠올라 민망하기는 하지만. 금요일에는 7년 만에 인권영화제에 가봤다. 인권영화제 초반에는 나름 후원도 하고 어쩌다 추첨에 걸려 "명성, 그 6일의 기록" 테잎도 집으로 날아오고 했었는데, 10회 영화제 즈음에 하던 일이랑도 관련이 있어 영화 보러 가면서 예전 포스터 이미지로 당시 내가 재미있어 하던 마그네틱도 만들어서 갖다드리고 했었는데, 참 오래 관심 밖에 두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은 다음 주 초까지 모으는 탄원서 받는 김에 개막식도 보고 영화도 보자는 생각이었다. 개막작은 "버스를 타라", 작년 희망버스 이야기였다.

 

희망버스- 생각해 보면, 지난 일 년간 내게 불어온 일련의 변화도 희망버스와 무관하지 않다. 아니, 무관하지 않다기보다 잠재되어 있었던 이런저런 갈증과 사회적 욕구를 어느 정도 발현할 수 있는 작은 문을 열어준 것이 희망버스였다. 여전히, 어느 정도는 해석투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에 해석투쟁 아닌 게 어디 있을까. 작년 이맘 때, 사무실 hrnet 메일링을 통해 처음 본 희망버스 제안 메일이 생각났다. 같이 일하는 친구를 꼬셔서 함께 가기로 굳은 약속을 받고, 기다리면서 내내 설레었던 기억. 영화를 보면서는 내가 경험했던 희망버스에 대한 기억보다는... 해석투쟁의 시작은 어찌되었던 발언/권,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리 소외되고 배제된 어떤 공간이라도 중심과 주변은 나뉘어지기 마련이며 좋은 의미건 아니건 일종의 권력이 창출되는 것은 자연이라는 것. 희망버스에 줄곧 참여하면서 그리고 이런저런 투쟁에, 조직 없는 개인으로 참여하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별개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기뻤고. 바로 전날 싹쓸이 침탈 이후 새로 꾸민 대한문 분향소는 먼 발치의 시선으로만 확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휴, 정말 오랜만에 여유롭게 책도 보고 유유자적 외로움과 그리움까지 즐기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아는 샘한테 빌린 "주기자"와 월요일에 도착한 "존댓말로 읽는 헌법"을 다 읽고 "쫄지마, 형사절차!"를 쉬엄쉬엄 보다가... 여전히 2권에 머물러 있는 "티보가의 사람들"을 들춰보다가... 어쨌거나 집중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신상태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살짝 고무적이기는 하다. 특히 "존댓말로 읽는 헌법"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늘 달고 사는 비관과 조용한 절망과 인간에 대한 회의와 관계에 대한 기피와 뭐 그런 것들, 의 정반대편에 있는 저자의 영롱함이 감탄스럽더라. 단체활동이니 뭐니 힘 빼지 말고, 그냥 마음 맞는 친구 찾아서 어디 조용한 시골에 가서 살 궁리나 빨리 해야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