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오늘로 25일째가 됐다. 잠깐씩이었지만 장례식장에 세번째 와서야 열사투쟁 이어가는 동지들의 웃음을 봤다. 비록 좀은 헛헛하고 어쩌면 웃기라도 해야 힘겨운 싸움 버틸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조금은 마음이 놓이고 한편 이렇게 일상이 되었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처음 경험한 죽음은 고1때였다. 일면식도 없이 그저 그가 부른 노래들을 들으며 혼자 좋아하는 수준이었지만. 내가 '알던' 누군가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는 생동하는 존재로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이 너무 엄청나서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 백일쯤 지나 열린 추모콘서트에서 울먹이며 부르는 노래들을 듣고 오열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실컷 울고 난 그날 밤, 꿈에 그가 나왔다. 그리고 이후엔 정말 신기하게도 망자가 된 그가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가슴 속에 담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두번째였지만 워낙 가까운 사이에 어려서부터 추억이 많은, 또 좀 이르고 갑작스런 이별이어서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한참을 술만 마시면 외할머니 생각에 울어댔는데, 언젠가부터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얘기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인정하게 되면서 언제든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산 사람은 결국 살아간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맞지만 한편 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속에 담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까지, 마음을 다해 애도하고 추모하고 망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서 떠나보내야 남은 이들은 제대로 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후에도 회한없이 기억할 수 있고 마음으로나마 정답게 떠올릴 수 있다.
빈소의 영정사진은 여전히 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아직은 떠나보낼 때도 가슴에 담을 때도 아니기 때문일 테다. 지금은 나중 언제고 떠올려도 후회 없도록,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싸워야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훗날 미안함과 안타까움만으로 박정식 동지를 떠올리지 않도록 말이다. 잘 떠나보낸 망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낯가림 없이 어떤 얘기든 잘 들어주는 마음 속 친구가 되더라. 어렵고 무거운 투쟁이겠지만 그렇게 보낼 수 있도록,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