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첫 출근, 엔간하면 40대 초반까지 마지막 첫 출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별 의미부여도 기대도 안 한 탓인지, 새로 만난 사람들도 마음에 들었고 깔끔한 사무실도 마음에 들었고 바로 옆의 흡연실도 마음에 들었고 이웃한 사무실들도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난생 처음 건강보험으로 엄빠한테 효도까지 하게 생겼으니 나름 더 바랄 것 없는. 아, 물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서대문이라는 입지 조건. 어지간해서 ㅁㅈㄴㅊ이 이사갈 일은 없을 터이니, 오늘 마음에 들었던 것들 중에 혹여나 배신(?)을 때릴 만한 요소는 오로지 사람뿐. 이제껏 살며 일하며 겪은 것들도 있고 하니, 없는 지혜를 최대한 짜내고 또 짜내서 적당한 열심과 적당한 열정으로 진득한 일터 삼아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오랜만에 종일 페북에 접속을 하고 있으니 연두빛 님께서 어찌나 자주 출몰해주시는지... 하마터면 친해진 줄 알고 말 걸 뻔ㅠ 당분간 이런 유혹의 순간을 넘기는 것이 또 하나의 일이 될런지도 모르겠으나, 뭐 그래도 최소한의 행방을 알 수 있으니 그 역시 좋기는 좋더라. 비록 이제껏보다 30분이나 앞당겨진 출근 시간에 무려 40분 남짓 소요되는 거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좋은 징조.
오랜만의 첫 퇴근 저녁 일정은 쌍차 투쟁문화제, 실은 재능을 갈까 영화를 보러 갈까 살짝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용역폭력 청문회도 못 봤고, 지난 금요일 의외로 적은 인원이었던 쌍차 시민문화제 생각도 나고 해서, 역시 오랜만에 160번 버스를 타고 여의도로. 환승센터 정류장에 내리니 맞은 편에 떡하니 하나대투증권 간판이 보여서 혹여나 3M분들이 퇴근선전전이라도 하나 싶어 가봤는데 아니 계셔서 여의도 공원을 지나 산업은행 앞 현차비 농성장을 슬쩍 지나고... 마침 해도 늬엿늬엿 지고 천막 안이 어두워서 차마 들어가 인사드릴 엄두는 못 내고 현수막 사진만 몇 장 찍고서 새누리당 앞으로. 안타깝게도 오늘 문화제에도 사람이 별로 없더라.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그 정보들을 통한 간접체험 속에서, 정작 모여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파편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주제 넘는 우려... 그러니까, 나라도 가야하는 것이지. 오랜만에 본 꽃다지의 공연, 들을 때마다 눈물 나는 "내가 왜"와 들을 때마다 힘이 나는 "주문" 덕분에 뭔가 따뜻한 결의가 생겨나는 느낌이었다. 문화제 끝나고는 길바닥에서 만나 처음으로 마냥 편해진 형님에게서 저녁도 든든하게 얻어 먹고 씩씩하게 집으로 왔다. 나름, 좋은 날. 미친 척하고 고백이나 해볼까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