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2012. 6. 30. 01:23

 

 

드디어 왔다, 6월의 마지막 새벽. 고맙게도 토요일이고. 마지막 퇴근을 하고는 멀리 강남으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상경투쟁을 하는 노숙농성장에 갔다. 영등포시장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탔는데 십 년 전 내가 살았던 논현동, 학동역 앞을 지나더라. 정리할 때가 되니 괜히 부아가 치밀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이 생기기도 해서 이게 혹시 아홉 수? 뭐 그런 생각도 요즘 며칠 사이에 들었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십 년 전, 스물아홉 시절이 떠올랐고 논현동에서의 8개월이 생각났다. 그러고보면 내 인생에서 두 번이었던 지극한 마음의 지옥은 아홉 자락의 봄이었구나... 십 년 후의 봄을 조심해야하나?

 

아무려나, 다음 주 운영위만 지나면 정말 끝. 생각해보면 참 아연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육개월이었다. 예전에 노동대학에서 심리학과 접목시킨 글쓰기 강사의 강의가 있었는데... 건성으로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후에 가끔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 무엇보다 사람과 마음에 많은 것이 좌우되는 편이면서도 심리학적인 접근에 대해서는 어떤 저항감이 있어 외면하는 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나의 경우 그 강사의 이야기가 맞았다. 감당할 수 없는 관계는 단절로 해결하는 성향, 몇 안 되기는 하지만 분명 나는 그렇다. 여전히 나의 편협함에 대해 회의하지만, 어쩌면 그건 노력이나 수련의 문제라기보다 나는 생래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인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아직은 어쩔 수 없는 부분. 결국 이렇게 또 하나를 끊어낸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끊어내기까지가 지난할 뿐 단절 이후의 나는 언제나 가뿐하다.

 

무척 우울하고 꿀꿀할 수도 있었던 시간을, 고맙게도 유성농성장이 받아주었다. 아무런 말 하지 않았지만, 일 년 넘게 싸우면서도 또 쌩노숙을 하고 내리는 비를 그을 부실한 비닐을 치면서도 내내 웃는 그이들에게서... 뻔뻔하게도 나는 또 힘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전의 제안에 대해,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바람으로 화하고 있는 다음 길에 대해 생각한다. 95년 겨울, 고작 한 달 간의 공활로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나의 일천한 계급성(?)을 모르지 않지만... 어쩌면 그들과 나는 다르다, 나는 할 수 없다는 겸손을 가장한 오만을 직시해 볼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좀 웃기게도, 이렇게 아픈 시간을 통해서도 나는 은연 중에 마음 속에 그려왔던 모습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엄살을 참 많이 떨며 살지만, 실은 난 운이 좋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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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