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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9.09 두 벌의 셔츠
  2. 2019.09.09 [의사 요한]
  3. 2016.01.16 신영복 선생님
  4. 2015.03.23 3월 22일, 300일
  5. 2014.09.21 9월 21일
  6. 2014.09.15 9월 15일
  7. 2014.08.27 8월 27일
  8. 2014.08.25 8월 25일
  9. 2014.08.23 8월 23일
  10. 2014.08.20 8월 20일
회색노트2019. 9. 9. 15:59

 

 

언젠가 김영하 작가의 글에서, 휴대폰을 얼마나 오래 안 볼 수 있나 내기를 하는 세계 최고 갑부들의 게임이라던가 뭐 그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평소에 물건을 지닐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 어떤 연락도 직접 받을 필요가 없는 자가 진정 부와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는 뭐 그런 방향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언젠가부터 어떤 이야기도 구체적인 디테일이 아닌 직관적으로 받아들인 느낌으로 기억하게 되었기 때문에 정말 그런 이야기였는지는 약간 자신이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1년 남짓 전부터 나도 미련하게 안고 살던 많은 것들을 열심히 처분하고 있다. 부와 권력은 나와 상관없지만 어쨌거나, 너무 많은 짐들이 부담스럽고 가볍게 살고싶다는 좀은 간절한 바람이 생겼고, 마침 그럴 수 있는 상황도 만났기 때문에.


시작은 작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해 오목교 건너에 있는 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녀야 하는데 잔뜩 쫄아든 마음과 불편한 다리로 걸어가는 건 엄두가 안 나고 고작 한두 정거장을 왕복하며 버스요금을 들이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런 진심이 통했는지 마침, 마일리지 정산 시 20%를 가산해주는 이벤트를 하는 예스24 중고서점이 오목교역에 있었고 병원에 갈 때마다 수십 권씩 책을 짊어지고 버스를 타고 가서 팔았다. 목표도 있었다, 중고로 나온 비틀즈 리마스터드 박스세트. 통원치료 다니는 동안 열심히 책을 팔아 모은 마일리지로 마침내 갖게 되었고, 비어가는 책장만큼 마음도 좀 가벼워졌다. 이후로 읽고 싶어 산 책은 서둘러 읽고 알라딘중고서점에서 좋은 가격일 때 다시 파는 게 루틴이 됐다. 어차피 늘 빠듯한 가계이다 보니 이래저래 도움도 많이 된다.


오늘은 집에 와서 두어 시간, 판매할 씨디들을 70장이나 챙겼다. 9월에 팔겠지 싶었던 부산국제영화제 예매권 판매가 8월 29일이어서 계산하며 사용한 카드값이 초과됐고, 현금서비스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아서 씨디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예전에도 가끔 씨디를 팔았다. 책이며 씨디는 죽을 때까지 짊어지며 살다 갈 거라고, 따로 생각할 일도 없이 그냥 함께하는 정물들이었는데 돈이 없으니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소중한 걸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제법 비장한 결의로 안타까움을 달래며 실천하던 일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제는 책을 팔고 씨디를 파는 일이 단지 환금성의 관점에서만 이익이 아니라 미련하게 이고 지고 살던 것들과의 고리를 끊고 조금은 가벼워지는 어떤 기회라고도 느껴진다. 계획대로 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서울을 떠날 때, 실용적 기능 전혀 없는 짐들을 줄여 좀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 책이든 씨디든 비디오테이프든, 결국 물건일 뿐이고 기억이니 추억이니 잔뜩 의미를 갖다붙여봤자 한 순간 집중의 대상은 하나일 뿐이라는 걸 되새기며 그런 삶에 아주 조금 가까워진다는 상쾌함. 

 

겹쳐진 단 두 장의 셔츠로, 어쩌면 유일한 사랑의 기억을 나눠가졌던 친구를 기억하는 절박한 간소함이 못내 부러웠던 [브로크백 마운틴]을 갖다대는 건 좀 뻔뻔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없애고 처분하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그런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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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노트2019. 9. 9. 15:43

 

 

[의사 요한]이 끝났다. 두 달 동안 다음 회를 기다리고 집중해 보면서 설레고 새삼 반하기도 하면서 행복했던 드라마다.

이제 거의 습관적으로 드라마를 본다. 한때는 텔레비전 없이도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집에 있으면 늘 텔레비전을 틀어놓는다. 별로 마음 터놓을 일 없이 그냥 일하며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누구랑 무슨 이야기들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나 궁금한 마음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통속적이고 뻔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게 사람 사는 거고, 그러나 혼자 나이를 먹어가며 살다 보면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복작복작한 관계들과 사건들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것이라는 걸, 혼자서 꾸리고 채워가는 일상에서는 그런 외부의 ‘사람’과 ‘사건’들을 차용하면서 어쩌면 학습된 ‘사람 사는 거’라는 걸 실감한다.

노안이 오면서 활자를 볼 때 눈이 불편해지니 더욱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그런 대리경험을 받아들이고, 한편으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스스로를 한심해하고, 언젠가 읽었던.. 한류드라마에 푹 빠져 dvd를 쌓아놓고 소파에 누워 보다가 목이 돌아가 병원을 갔다던가 하는 사노 요코의 말년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배우 지성을 ‘발견’했고, 그에 대해 뒤늦게 이것저것 찾아보며 열광했다. 그의 연기를 긴 호흡으로 본 건 처음이다. 예전, 어렴풋한 단편의 기억으로 검색해 제목을 찾아낸 [로열 패밀리]라는 드라마에서, 광기에 사로잡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장광설처럼 긴 대사를 쏟아내는 그를 우연히 본 기억이 있다. 무관심하던 배우였는데 좀 놀랐고 각인이 되었지만 그뿐, 이후 [킬미 힐미]의 몇 장면을 우연히 보다가 작가가 탤런트들 괴롭히려고 쓴 드라만가 생각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고작 그 정도의 기억과 이미지가 다였던 배우 지성을 [의사 요한]에서 ‘나 홀로 재발견’했고, 지난 영상들을 통해 그가 연기를 시작해 ‘갓지성’이라 불리는 배우가 되기까지 또 그 사이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되기까지의 알려진 사연들을 알게 됐다. 보여지는 직업인이고 알려지는 유사 공인이니, 내가 알게된 것들은 물론 철저히 선별되고 연출된 것이겠으나.. 결국 품절된 [킬미 힐미] 스페셜dvd세트를 중고로 사놓고 뿌듯했다. 

[의사 요한]의 핵심 키워드는 ‘존엄사’ ‘마취통증의학과’ ‘천재 의사’ 정도가 되겠지만, 그를 통해 더 진하게 전해지는 건 사람 사이의 공감과 이해, 고통과 사랑 같은 거였다. 물론 이런 덕목들은 모든 이야기의 기본이자 궁극이겠지만. 사실 차요한은 인물이라기보다 하나의 이상형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든 환자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불문하고 자신보다 먼저 배려하고 이해하는 사람, 자신의 고통과 불이익이나 피해는 당연한 듯 감내하면서도 타인의 부족함이나 잘못은 모른 체하거나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심각한 질병을 비밀스럽게 떠안은 채 누구보다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 처음 삶을 꿈꾸게 만들어준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죽음일지 미래일지 알 수 없는 길을 떠나고야 마는 사람.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극중 인간 차요한이 가진 극강의 외유내강성은 현실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100의 어둠과 초조 속에 홀로, 100의 여유와 치열함으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놀라운 캐릭터, 그래서 그런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하며 그냥 ‘차요한’으로 느껴지는 배우 지성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상대역으로 함께 연기하며 그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을 투영해준 이세영도 무척 사랑스러웠고, 이 드라마를 통해 처음 본 정민아, 황희 등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역할의 젊은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암튼 재미있게 본 드라마 [의사 요한]이, 한창 전개 중일 때의 텐션에 비하면 꽤나 잔잔하게 끝났다. “시청자 여러분, 이제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해주듯이. 기억하고 싶은 대사들이 많았고, 고통과 죽음이라는 극한의 상황과는 거리가 먼 느슨한 일상의 내게도 각인하고 싶은 순간들을 여러 번 선사해준 드라마였다. 각본집과 ost음반과 dvd가 나왔으면 좋겠고, 벅찬 순간들을 기억하며 나도 좀은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의사 요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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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노트2016. 1. 16. 17:00


어른으로 살면서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꼈던 몇 안 되는 공간, 마지막 인사 드리려고 참 오랜만에 왔다.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

누구나 돌아간다는 게 인간에게 부여된 원초적 평등, 그 위에 불평등을 쌓아올린 모든 이들도 결국 죽는다. 어떤 삶, 어떤 죽음 들의 영향으로 세계는 조금이나마 변화하겠지. 그리고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죽음이 추모를 넘어 교훈과 다짐을 탄생시킨다.

마주한 영정사진이랑 그 뒤로 흐르던 생전영상이 함께 떠올라 그냥 너무 슬프기도 하고, 알음알음 전해들은 마지막 며칠의 이야기에 새삼 감동스럽기도 하고.. 내가 좋아한 곡속장 해석을 생각하며 그래도 '기억'을 가졌다는 게 새삼 참 고맙다.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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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노트2015. 3. 23. 05:14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공동체의 범위가 확장되고 교통과 미디어의 발달로 물리적 경계를 뛰어넘는 일들에 대한 일상적 감지가 당연해지면서... 싸움은 시위가 되고 구경은 오락이 된 게 아닐까도 싶다. 보아주는 누군가를 염두에 두기보다 당장의 싸움에 매달려 승패를 가르는 게 훨씬 실효적인 시공에서 고공농성 같은 건 없었을 것 같다. 맥락은 다르겠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보이고 알리는 걸 통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극한투쟁을 생각하면 카프카의 단식광대가 떠오른다.
단식광대가 우리에 갇혀 곡기를 끊은 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유는 흥행이다. 단식광대의 뒤에는 인기와 주목을 통해 돈을 챙기는 흥행사가, 흥행사의 뒤에는 그것이 목숨이든 무엇이든 세간의 화제라면 구경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이 있다. 마냥 굶는 단식광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이 비인간적인 사행오락은 본연의 비윤리적인 속성을 은폐하고 단식광대에 대한 미화와 찬양으로, 급기야 성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적 존재로까지 간주하는 사고의 전도에 이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본질과 효과가 왜곡되는 매커니즘 자체가 스포츠와 방송연예와 대상이 무엇이든 팬덤 생성의 기본 전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단지 일회적인 흥분과 오락을 위한 꺼리로 삼는 이들, 누군가의 목숨과 비운을 돈과 맞바꾸려는 이들에게는 그 저열한 동기와 본질을 가려줄 장막이 필요하고 그것이 이슈가 될수록 그 '비정상성'은 화려한 수사와 의미를 뒤집어쓴 채 횡행할지도 모른다.
많이 나갔다. 굴뚝에서의 300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아주 모르지 않지만 생존을 위한 극한투쟁을 일상으로 치부하고 내버려두는 우리들이 단식광대에 환호하던 카프카 시대의 관중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지 잘 모르겠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혹은 소위 메인스트림에 오른 그 무엇들에만 관심하고 기웃거리며 발길을 옮기는 우리 시대의 누군가들과는 또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차광호, 그가 정말 굴뚝에서 300일을 맞았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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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4. 9. 21. 02:34


함께 흥분하기에는 매우 민망한 포지션이란 건 알지만, 그렇지만 마음 가득 기쁜 일이 연달아 일어났던 한 주였다. 정말 사심 없이 기뻤고 차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벅찼을 동지들을 생각하며 괜히 내가 찡한 마음이 됐던. "미친 거 아닌가."가 첫 마디였다는 기사 제목까지 달린 걸 보면, 선고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번에도 연기될 거라는 예측이 우세했던 걸 보면, 이미 일어났지만 놀라운 일이기는 하다. 판결은 판결일 뿐 현실은 또 다르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주체들이 손 놓고 맞이한 판결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불과 한 달 전 자본과 정규직 지부, 양 지회의 말도 안 되는 사내하도급 합의로 현장이 무척이나 어수선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8월 18일에서 9월 20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지옥에서 천당을 오가는 마음이었을 현차비 울산 조합원들, 불복종을 선언한 아산 조합원들 그리고 전주의 몇 조합원들, 더불어 하늘에 있는 박정식 동지에게도 맑은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런데 사실 이 한 달 동안, 내가 괜히 더 울컥하고 자주 생각한 건 '민주노조'였다. 며칠 사이 조금 잠잠해졌지만 한 동안 꽤 자주 군대의 폭력 사건이 보도되고 실상이 밝혀지고 하면서 적잖은 파장이 있었다. 예전에 군사주의와 한국사회라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절감했고, 그런 강의가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 군대가 미치는 전방위적인 악영향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공감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군필자의 무용담 속에서는 부적절한 남성성과 과거형의 일탈을 뽐내는 배경이 되거나 규율과 정신력과 애국심 따위의 싸구려 가치로 포장되어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방송되는 군대 그러나 실은 압적인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의 존엄은커녕 최소한의 이성마저 내팽개쳐지는 짐승의 시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 뻔한 군대 말이다. 대다수 남성들이 청년기 2년 내외의 기간을 그런 폐쇄된 공간에서 소위 군기를 내면화하고 '인간 개조'가 되어 사회로 나온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다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대다수 남성들이 그런 2년을 거치고도, 학창시절을 제외하면 그러한 형식적인 공동체성조차 체감할 일이 없는 여성들까지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노동조합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을 체화할 수 있다면 어떨까. 조직을 통솔하고 책임지는 대표자의 위치가 역할보다는 위계의 정점, 군림하는 권력으로만 인식되는 한국 사회에서, 소위 '장'에서 일반 구성원으로의 전환이 좌천이나 강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순환이자 질서로 수용되는, 그런 조직은 내가 알기로는 아직까지는 '민주노조' 말고는 없다. 일하거나 일을 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조합원이 될 수 있고, 그 노동조합이 조직 민주주의와 기업과 사회의 탐욕과 불의를 견제할 수 있는 집단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사회는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뭐 이런, 좀은 뜬금없는 셍각을, 나는 8.18 합의 이후 다시 투쟁에 나서는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을 보면서 자주 했다. 

2013년 투쟁으로 구속되었던 박현제 전 지회장이 출소한 이후 한 명의 해고자로, 조합원으로 돌아가 다시 전과 다름없이 투쟁하는 모습, 2013년 집행부를 사퇴했던 송성훈 전 지회장이 아산지회의 합의 이후 불복종을 선언한 현장 모임 조합원 중의 하나로 다시 투쟁에 나서는 모습. 그런 모습들에 나는 진심으로 울컥했고 닿지도 않을 마음의 응원을 지치지도 않고 보냈다. 권위에 눌리지 않고 위계에 고개 숙이지 않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원칙을 집단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대중 조직 형태가 '민주노조'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내부를 들여다보면 갖은 복잡한 사정이 있을 테고 그 속의 사람들은 이런저런 다름으로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에 잠식된 조직이 아니라면 당연한 다양한 이견과 갈등과 관계의 문제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살면서 단 한 번도 조합원인 적이 없었던 나에게, 투쟁하는 동지들의 '민주노조'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의 응원이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조직이다. 4년을 끌어온 판결이 이제 났고 대법까지는 또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지만, 10년을 꼬박 싸워온 동지들의 승리가 그간의 고통과 설움과 혼란을 넘어 다시 힘찬 투쟁에 나설 수 있는 든든한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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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4. 9. 15. 01:52


일주일 전 개인적으로는 순간 머릿 속이 하얘지는 아찔한 충격이 있었고, 실은 이미 일 년 전에도 반 년 전에도 마음 단속을 마쳤던 일이니 별 거 아닌 듯 단절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자위하면서도 그 내심이 마냥 굳건하지는 않은 지라... 실은 딱히 그것만도 아닌 이유로 한껏 게으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떠들썩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명절을 연휴로 보내고, 다시 쳇바퀴 도는 생활과 활동 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며 별 하는 것도 없는데 늘 왜 이리 심경은 무겁고 갖은 부담감에 포위된 느낌인지 스스로도 의아할 지경. 지난해 초여름 다녀온 강릉 바다가 자꾸만 아른거리고, 늦가을 일 삼아 다녀올 부산 바다로 퉁치자 해놓고서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강릉을 검색하는 도중에 이럴 거면 차라리 다 때려치우고 장난처럼 꿈처럼 되뇌이던 노후의 삶을 빨리 준비하기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그게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자기를 직시하는 지혜로움인지, 인내도 헌신도 없는 존재의 자각으로 인한 도망 궁리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대개 존경할(?) 만한 누군가를 갈구하며 혹은 순전히 내 판단이지만 적어도 나보다는 나은 누군가의 자장 아래 도모에 안주해 온 이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만. 어쨌거나 하는 것보다 말이 많은 누군가에 질려버리고 움직임 없이 명분만 논리적인 누군가에 질려버리고, 하는 동안 중심 없이 그때그때의 마음만을 부여잡고 걸어온 내 걸음에 문득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경쟁과 이해와 포식으로 점철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활동도, 지금의 세상이 굴러가는 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노골적이지 않은 경쟁과 사사롭지 않은 이해와 그것이 경험이든 능력이든 희생이든 결국은 개인적인 역량을 자양 삼아 포식하는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절감하는 순간순간은, 어깃장스런 심사의 인정과 별개로 꽤나 자주 출몰하고. 갈망의 내용조차 흐릿한 채로 후발자의 시큰둥함과 한계를 마주하며 조금씩 냉정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어차피 세상은 현혹 속에서만 정답고 눈물겨움의 본령은 자기연민이기 쉽다는 걸 모를 나이가 아닌데도, 어쩌자고 이렇게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채 살고 있는지.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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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노트2014. 8. 27. 02:16


해야 할 일들, 써야할 글 생각으로 몸도 머리도 바쁠 때는 정신이 없는 대신 외롭지 않다. 날짜가 정해진 해야할 일들에 좇기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동의한 일정을 어기는 건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이 동반된 상태에서 내내 좀 가쁜 마음으로 지내는 게 불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내가 자주 마주치는 참 여럿의 투쟁사업장 동지들의 일상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라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건 '내 삶'이니까. 5월부터는 발간 일정이 안정되었고 25일을 전후해서는, 다음호 작업이 끝나 발송 준비와 진행을 하고 다음다음호 기고 요청도 마무리되고 다음다음호에 내가 써야할 글의 주제도 결정된 상태가 된다. 물론 다음에 만날 사업장에 대한 조사를 하고 글의 큰 틀을 잡고 질문을 정리하는 등의 준비를 아예 내려놓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발송을 마친 후 월말까지 며칠은 그런대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기간이다. 이번 달은 바로 지금. 

일주일 남짓 전의 나름 충격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주말 오랜만에 나눈 짧은 인사의 여운이 더해져, 이제는 명백히 빛 바랬지만 참 좋아했던 시절의 마음 그리고 감당도 위로도 할 수 없지만 연민마저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마음이 다시 되살아나는 중이다. 약간의 물리적 여유와 그리움과 미련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상에 젖어 사람들의 담을 기웃거리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남긴 '결이 고운 사람'이라는 말에 괜히 울컥하는 감정이 되었다. ... 그리고 요즘 이 노래가 참 좋다, 나도 내가 마음에 두는 누군가들도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음결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동안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런 내가 되어 언젠가는 이렇게 말할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GgXRI5Gx-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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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4. 8. 25. 02:08


동의할 수 없는 이상한 편가르기가 계속되는 자장 속에, 존재감은 없지만 어쨌든 머무는 일은 꽤나 고역이다. 워낙 개인적인 성향이기는 하지만 한편 '곡속장'적 관계맺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이라선지, '보았고, 보지 않았고'에 대한 반응의 편차는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만큼이다. 내 의견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구도 내게 묻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불편한 이유도 다르지 않겠지. 나는 세상에 완전히 무결한 존재도, 완전히 흠결한 존재도 없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누구도 누구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의든, 명분이든, 원칙이든, 그 무엇이 이유가 되었든 누군가가 누군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폭력이다. 원칙은 정말 중요하지만, 투쟁은 원칙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한다. 비약을 좀 하자면, 누군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혹은 해도 된다는 생각의 궁극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사형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옳음을 배수진으로 누군가를 한없이 모욕하는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이들의 맞은 편에서 인권이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쉬운 것 같지만,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어떤 운동집단이나 조직을 보면서 나는, 훗날에라도 저들이 권력을 잡거나 힘을 가지게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지금껏은 상상만으로도 절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말과 글이 무기가 될 수 있고 중요하지만, 그 이상을 표현하고 웅변하는 게 마음과 태도라고 생각한다. 늘 남을 비판하고 늘 화가 나 있고 늘 뾰족한 이들에게서 나는 어떤 전망이나 희망을 찾기가 어렵고,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마저 점점 사라져간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나나 잘 하자,로 귀결되는 소시민적 결의자인 나는 역시, 나나 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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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4. 8. 23. 01:19


지금 이 시각 청와대 앞, 아니 청와대 한참 바깥의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세월호 유족들과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집에. 오늘의 할 일을 하고, 또 내일의 할 일을 하고, 계획된 일들이 차질을 빚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언젠가부터 나는 가급적 일정대로 움직이고 있다. 현장에 있을 때는 나름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하지만 타임라인에 흐르는 수많은 간절함들에 미안해하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단속하는 날들. 어차피 모든 걸 감당할 수 없고,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마음 가는 모든 곳에 있을 수 없다는 합리화. 그렇게라도 해서 자꾸만 고개를 드는 부채의식을 접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뻘쭘함을 무릅쓰고 쭈뼛쭈뼛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걸음한 자리에서 느꼈던 불편함,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저 가만히 곁에 있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도 마음 가는 곳에 있어야만 했던 안달. 실은 그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로부터 나를 다독이고 중심을 잡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가서 있는 듯 없는 듯 머리 속의 생각은 갈래갈래 여러 길을 오갈 때, 돌이켜보면 그 속의 내 마음은 곧잘 대상화였고 타자화였고 한편 자기만족이었다고, 물론 내 동기로부터 비롯된 모든 움직임이 자족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려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좀더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지고 비겁해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서 대한문에 가야해, 그리고 구미로 가야하지. 그러니 이제 잠을 자자, 스스로에게 말하는 마음이 오늘은 참 편치 않다. 소시민적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그러면서도 내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내가 바라는 삶과 실천은 실은 딱 그 수준인데, 고작 그런 마음으로 이겨내기에는 참으로 감당 안 되는 날들이다. 나는 정말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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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회색노트2014. 8. 20. 00:59


너무한 날들이 계속된다. 활동을 하면서 부딪히는 일상적인 난관이나 버거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싸우는 이들의 온 삶에 야만이 닥치는 날들. 힘을 가하는 야만은 없는 듯 뒤에 숨어 있고 중력처럼 짓누르는 하중에 눌린 피해자들만 울부짖고 호소하고 살기 위해 배신하고 싸우기 위해 좌절하는. 현대차 아산과 전주의 조합원 총회 소식을 들으며 가슴 한 구석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 아무 것도 한 것 없고 말 보탤 뭣도 없는 내가 이런 기분인데, 그 오랜 시간 자신과 싸워가며 투쟁을 이어온 당사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싶다. '철탑의 불씨를 현장의 파업으로' 이어가자며 조합원들이 횃불을 들고 울산지회장이 엎드려 상소문을 읽으며 파업을 읍소하던, 참으로 비장하게 "우리 승리하리라"가 울려퍼졌던 그 날이 자꾸 떠오른다.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그 광경은 살면서 내가 본 최고의 그야말로 쌩쑈였다. 정말이지 눈물나는 쌩쑈. 최소한 법대로라도 하라는 요구조차 세상 모르는 순진한 외침이 될 뿐이라면,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사하고 단지 살기 위해서 비굴해지는 자들을 다시 싸움의 장으로 불러낼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박정식 동지는 어떤 마음일까. 답답한 날이다. 세월호 특별법 야합은 차마 감당도 안 되는 비닐같은 멘탈에, 전해진 사진 속 지팡이를 짚고 청와대 앞에 선 고목 같은 김영오 동지의 모습만 오롯이 남았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야만이 여전히 공기처럼 떠다니는 날. We shall overcom, someday...  https://www.youtube.com/watch?v=RkNsEH1GD7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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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