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송라이터스], “유재하부터 아이유까지, 노래로 기록된 사랑의 언어들”이라는 매력적인 타이틀의 책. 프롤로그의 ‘라디오 헤븐’을 읽으며 라디오 키드였던 어린 날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별이 빛나는 밤에>보다는 마이너한 음악들을 신청곡으로 곧잘 들려주던 종교 방송국 심야 프로그램의 애청자였지만,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음악인들과 노래들을 들려주는 보물 같은 라디오에의 기억과 향수는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지인들과의 술자리 퀴즈에서 비롯된 ‘송라이터’ 개념에 대한 집착과 대중음악에서 가사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저자의 천착으로부터 시작된 기록이라고 한다.
1부 “발라드라는 장르 혹은 정서”에서 처음 등장하는 곡은 1985년 나미가 발표하고 1994년 015B가 리메이크한 “슬픈 인연”이다. 저자는 1985년을 발라드가 태동한 결정적인 해라고 보는데, 실증적인 근거는 그해에 한국형 발라드의 대표곡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발라드 부상에 대해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의 가요계 진출과 일본 시티팝의 영향 등 음악계의 내적인 요인 그리고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 및 소위 ‘신세대의 등장’ 등 사회적 분위기의 반영으로 짚는다. 이 시대는 지금껏 사랑받는 수많은 노래들과 음악인들이 등장한 시기다. 1987년 첫 음반을 유작으로 남긴 유재하,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 등의 명곡들, 도시적 감성과 전에 없던 세련미를 갖춘 빛과 소금, 윤상 등의 음악들, 노랫말과 선율의 서정적 감수성을 극대화하고 완벽한 음악적 조화를 이뤘던 이영훈과 이문세의 협업으로 탄생한 노래들. 더불어 저자가 ‘감정과잉과 찌질함의 인류학’이라 부연한 레퍼런스로 015B와 토이, 윤종신, 김현철, 더 클래식 등이 소환된다. 대체로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나는 1985년의 메가 히트곡이었던 구창모의 “희나리”가 생각났고,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과 “사랑할 순 없는지”의 다섯손가락 그리고 “그때는 외롭지 않았어”와 “다 가기 전에”의 이치현과 벗님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언급하는 발라드곡들의 외연이 꽤 넓었기 때문에, 송골매나 산울림 등이 언급되지 않는 점도 의아했다.
2부는 “#단어로 #듣는 #발라드”라는 키워드로 여러 가지 해시태그를 붙인 10개의 하위 절로 구성되어 있다. 고심해서 붙였겠지만 전체적으로 사랑 노래라는 틀 안에서의 감정을 시기나 상황 등으로 구분한 건데 그 내용에서 크게 변별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1부에서 보였던 현대 가요계의 나름 계보와 역사, 대표적인 뮤지션과 그의 작업에 대한 분석 등이 아닌, 가사 위주의 감상문 같은 글이 동어반복처럼 한참 이어져 지루한 느낌도 있었다. 동어반복은 1부에서도 특히 시티팝 부분부터 두드러지게 느껴졌는데, 그만큼 대체할 만한 표현이 없었던 건지 어휘력의 빈곤인지는 모르겠지만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부분이었다. 가사 중심의 감성적인 서술과 해설이 주를 이루다 보니 그렇고 그런 소프트 에세이들이 의미 없이 반복되는 느낌도 들었고, 다수의 곡에서 가사를 직접 인용하는 세세한 설명들은 방송을 보고 쓴 연예 기사 같은 느낌도 들어 아쉬웠다. 가사 전문을 실으면 저작권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한 걸까? 2부에서만 50곡 정도는 다룬 것 같은데 어쨌든 ‘사랑 노래’다 보니 표현의 참신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 어느 부분은 그냥 받아쓰기+감탄 같아 더 그랬다. 한 마디로 “노래로 풀어보는 사랑학 개론” 같은 느낌이었는데, 연애세포 다 죽은 상태에서 읽기에는 버거운 사랑 타령이었다. 내가 저자에게 기대한 부분이 아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3부 “깊어지고 넓어지는 발라드의 세계”에서는 조금 더 확장된 유사 발라드곡들이 다루어진다. 앞부분을 읽으며, 이따금 다른 곡들을 추천하기도 해서 소개하는 노래들 대부분을 잘 모르는 30대 이하를 독자층으로 타게팅한 걸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길옥윤과 패티김의 “이별” 부분에서 “그들의 각별한 인연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이라는 구절이 나와 좀 놀랐다. 50대인 나도 가물가물한 기억인데 뭐지? 독자들과의 공감을 위한 ‘우리’라는 주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선지, 이 책에서 크게 남발하지는 않지만 아쉬운 대목이었다. 케이팝 이전의 케이팝, 락발라드, R&B, 듀엣곡 등 조금 다른 기준으로 묶은 노래들이 3부에서 범주화되어 소개되는데, 서술 방식은 앞선 부분들과 동일하다. 물론 노래, 특히 가사에 방점을 두고 소개하는 글이니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생각됐지만 그래도 그래도 스멀스멀 엄습하던 지루함이 배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송라이터스]라는 포괄적 제목에 비해 대상이 되는 레퍼런스들은 저자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고, 대중적 성취에 치우쳐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음악들을 다루는 결과론적 분석이다 보니 대중의 반응과 시대를 초월한 공감, 무엇보다 훗날의 ’재발견‘ 등이 중요했던 걸까 싶기도 했다. 1부에서 저자는 1980~1990년대 음악들이 시티팝, 케이팝의 맹아 혹은 원형으로 ‘재발견’되고 있다는 표현을 종종 하는데, 노래와 멀어진 지 오래라 어떤 맥락인지 애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후배 뮤지션들의 언급이나 오마주를 곁들인 리메이크 등 음악계 현장의 현상을 말하는 건지, 음악인이나 평론가 등 전문가들만의 회로가 아닌 일반 청자들이 유의미하게 인지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이 있는 건지 말이다. 어렸을 적 매달 나오는 음악 잡지를 사모으며 분량의 5%도 할애되지 않은 좋아하는 뮤지션과 음악 기사를 탐독했던 자로서 종이 잡지의 시대가 저문 지금, 팬덤들이 경쟁하는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가 아닌 케이팝 담론이 생성되고 순환되는 공적(?) 장소가 존재하는지도 궁금해졌다.
소시적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독자로서 오랜만에 읽는 반가운 노래 이야기들이었지만, 소시적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계보가 무색해진 시대고, 책이 딱히 이를 염두에 두지도 않지만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비교적 엄격한 구분선으로 존재했던 ‘언더-오버그라운드’ 개념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점도,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요신의 한 축을 담당한 인디 뮤지션들이 아예 배제된 점도 의아했다. 내가 많이 좋아했던 김창기, 신해철, 조동익 등의 이름에는 반색하는 마음이 됐지만, ‘발라드’의 스펙트럼을 무척 넓게 잡았음에도 누락된 많은 뮤지션들이 책장을 넘기며 계속 생각났다. 신촌블루스, 시인과촌장, 유앤미블루, 예민, 일기예보, 여행스케치, 윤도현, 송시현, 언니네이발관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들. 그리고 송라이팅을 별로 하진 않지만 한 시대 씹어 먹은 이선희, 언급은 되지만 노래가 따로 소개되지 않는 동물원과 봄여름가을겨울, 푸른하늘 등도, 노래의 현재적 생명력과 뮤지션의 위상과 영향력 등을 감안한 걸까 싶기도 했지만, 개인의 선호에 기반한 레퍼런스 선정의 자의성이 내내 느껴졌다. 물론 내가 사랑했던 노래와 뮤지션이 별로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개인적인 불퉁함이다.
읽는 내내 이런 마음이다가 마지막 작가의 말의 “과몰입의 결과물”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했다. 딱딱하고 분석적인 평론을 업으로 삼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에게 이 정도의 문학적 감수성을 펼칠 자유는 분명 있는 거니까. 그럼에도 벤딩, 벨팅, 멜리스마, 어그멘티드 코드 등 일반 독자가 알기 어려운 음악 용어에 대한 설명이 없는 점과 소개되는 곡의 목록이 따로 없는 점은 아쉬웠고, 그러나 소개하는 곡들에 큐알코드를 덧붙인 성의는 고마웠다. 그리고 1991년 데뷔 때부터 십수 년 동안 누구보다 깊이 좋아했던 김장훈에 대해 붙인 “제2의 김현식을 꿈꾸며”(139쪽)라는 수식어는 주제 넘게도 몹시 유감이었다. 쓰다 보니 나도 과몰입이네. 가끔 노래 이야기를 나누면 저자를 언급하곤 했던 모임의 한 사람이 추천해 읽게 된 7월의 책이었다. 나는 <벌거벗은 세계사>의 재즈와 힙합 편을 통해 그를 뒤늦게 알았고, 사후 방송된 비틀스 편을 봤었다. 구조화된 방송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노래를 사랑하는 저자의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독서였다.
김영대
2025.11.17.1판1쇄 2026.1.9.1판3쇄, (주)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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