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26. 9. 19. 18:18



옛 흑백 영화처럼 지직거리는 느낌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인트로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식 건물들이 즐비한 거리의 활기 가득한 도시 알제를 소개하는 영상과 내레이션이다. ‘대한뉴스’ 같은 관제 느낌의 보도 영상이 서서히 아웃되면서 감옥 건물이 오버랩되고 아랍인들 가득한 그곳에 수감된 뫼르소의 모습이 보인다. 왜 들어왔냐는 나이 지긋한 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통역을 하는 젊은이에게 뫼르소는 아랍인을 하나 죽였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영화는 살인 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뫼르소를 먼저 보여주고 과거의 사건들과 작렬하는 태양과 뜨거운 공기를 품은 바다와 하늘의 이미지들을 빈번히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1인칭이었던 소설과 달리 카메라는 인물과 사건을 관찰하지만 첫 시퀀스가 주요 사건 이후의 감옥이어선지 회고적인 느낌이 들고, 흑백의 화면은 전체적으로 빛과 어둠의 대비가 도드라진다.    

 

원작이 있는 소설을 읽은 후 영화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고 이번에는 직전에 책을 읽은 터라 더 심했는데, 활자를 통해 막연히 상상한 여러 공간들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확인하고 주요 인물들이 캐릭터로 생동하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는 소설의 사건과 주요한 장면들을 대체로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마리와 제밀라 등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크게 높이고 아랍인과 프랑스인의 차별적 상황에도 중점을 둔다. 뫼르소와 마리가 영화를 보러 간 극장 벽에 붙은 “현지민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이나 법정에서 마리가 제밀라에게 동생일에 대해 유감을 표하자 아랍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생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부분, 마지막 사건이 일어난 해변가 무덤의 ‘무사 함다니’라는 이름이 새겨진 비석과 그 옆 제밀라의 모습 등은 각색으로 추가된 부분이었다. 소설 [이방인]에서 아랍인의 집단적 존재감이 강조되지 않았던 이유가 알제의 프랑스인이 어차피 본국민에 비하면 2등 시민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고려되지 않은 것인지 작품이 부각시키고자 한 주요한 지점이 뫼르소의 ‘반사회성’을 통해 사회와 체제와 통념의 폭력성과 반사회성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오디세이]를 보면서도 느꼈던 것과 비슷한 어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려라는 동시대적 해석이 추가된 것일까 싶기는 했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이방인] 영화화라는 점 못지않게, 교도소 사제라는 작은 역할이지만 스완 아를로가 출연한다는 점도 크게 기대한 부분이었다. 내가 호감을 갖고 기억하게 된 시작은 [신의 은총으로]에서 사제의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에마뉘엘 캐릭터였다. 당시 포털이 명기한 이름은 스완 아르라우드, [추락의 해부]에선 스완 아를로드였던 것 같고 이제 스완 아를로로 정착된 듯하다. 암튼 다작은 아닌 것 같지만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필모그래피에 비해 개봉작이 너무 적어 아쉽던 차에 정말 반가웠는데, 착붙한 헤어스타일로 출현한 모습에 새삼 그 멋짐은 머릿발이었나 싶기도 하고 몇 년 만에 피해자에서 가해자 직군으로 변신한 게 재밌는 우연이다 싶기도 했다. 뫼르소를 연기한 뱅자맹 부아쟁은 수감된 후 수염이 자라고 초췌해질수록 빛과 어둠의 대비와 함께 클로즈업되는 장면마다 화보를 방불케하는 비주얼이었다. 외국 배우 잘 모르지만 영화 본 후 찾아보니 참 좋아해서 영화관에서 두 번 보고 dvd까지 산 [썸머 85]의 다비드였다. 내가 좋아한 캐릭터와 배우는 알렉스를 연기한 (살짝 리버 피닉스 느낌이 났던) 펠릭스 르페브르라는 배우였고, 물론 그의 이름도 당연히 까맣게 잊었었다. 책에서 튀어나온 듯 살라마노를 연기한 드니 라방의 미친 싱크로율과 반가움도 추가해야겠다. 오종 감독 덕분에 여러 모로 흥미로운 영화 감상.

 

영화가 끝난 후 ‘이지훈의 시네필로 특별강연’이 시작됐다. “정상과 병리”(미셸 푸코의 스승이기도 했던 조르주 캉길렘의 책 제목에서 따왔다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똑같이 느끼고 행동하라는 사회의 강요에 동조할 수 없는 인물의 생을 그린 영화”라는 설명과 함께 무척 유익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방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영화는 실존주의와 탈식민주의 입장을 동시에 취하고 있으며, 영화 속 숨진 아랍인 무사의 이름은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사건]이라는 소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카뮈의 부조리 철학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이방인]에 반영된 부분들을 짚고, 부조리 철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뫼르소 캐릭터의 독특성을 신경다양성과 감각과민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점이 새로웠다.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감각의 포화 상태에 대한 묘사들과 카뮈가 살았던 당대에는 명명되지 않았던 자폐 스펙트럼, ‘일반인’과 다르게 감각하고 인지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결국 ‘다정한 무관심’에 닿은 뫼르소의 고백을 생각하면 상당히 수긍이 됐다. ‘살인’이 부조리 철학의 주제를 성립시키기 위한 극적 설정일 수 있다는 점이나 사형이 선고된 후 뫼르소가 집착하는 ‘기계’, 단두대와 관련해 그가 살고 있는 집 1층 가게 간판에 쓰인 프랑스어 ‘기계’가 불안한 삶의 은유라는 점은 신선한 환기였다. 1시간 반쯤 동안 진행된 강연은 무척 흥미로웠고, 성의 있게 준비된 ppt 내용도 좋았다. 서른이 채 되기 전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을 집필하며 이렇게나 다양한 후대의 해석들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천재를 넘어 그는 예지자였을 테고, 아무려나 길지 않은 소설이 확장하는 세계와의 연결지점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강연 덕분에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게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느낀 시간이었다. 꽤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강사의 역량과 친근한 접근 방식이 내게는 무척 적당했다. 부지런을 떨어서 [뫼르소, 살인사건] 챙겨 읽고,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는 지점들이 있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9/19 영화의전당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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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6. 9. 19. 18:08

 

 

양로원으로부터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전보를 받은 나는 알제에서 80km 떨어진 마랭고의 양로원으로 향한다. 사장에게 이틀 휴가를 받아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동료 에마뉘엘에게 넥타이와 상장을 빌려, 2시 출발 버스에 탔고 내내 잤다. 내려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 시골길을 2km 걸어 도착한 양로원, 원장을 만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영안실로 안내받는다. 관리인이 어머니를 볼 수 있도록 관을 열어주려 하는 걸 제지하고, 그가 권한 밀크커피를 달게 마시고 그에게 담배를 권해 함께 피운다. 밤이 되자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이 관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서 밤샘을 했고, 그중 한 사람은 내내 울다 잠들었다. 다음날 오전, 생전 어머니가 원했다는 종교적 장례를 위해 사제가 당도하고, 영구마차와 함께 어머니의 ‘약혼자’였다는 노인 토마 페레스를 포함한 소수의 인원이 간소한 행렬을 이뤄 성당을 향한다. 견딜 수 없이 쏟아지는 빛 속에 들판을 걸어 성당까지 가는 동안, 뒤쳐졌다가 지름길로 접어들다가 하던 페레스 노인은 기절했고 나의 기억도 단속적인 이미지들로만 남았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며 이제 실컷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쁨을 느꼈던 나는, 다음 날 전차를 타고 항구의 해수욕장에 갔다가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던 타이피스트 마리를 만난다. 수영을 하고 극장에서 희극 배우 페르낭델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집까지 함께 온 마리와 잠든다. 마리가 떠난 후에는 발코니에 앉아 일요일 오후의 거리 풍경을 주시하며 이따금 지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같은 층 이웃 살라마노 영감은 늙고 병든 개와 산책을 나가며 욕지거리를 퍼붓고 개는 끙끙대며 끌려간다. 이어 마주친 같은 층의 또 다른 이웃, 사람들에게 전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자칭 창고 감독 레몽 생테스의 청으로 나는 그의 집에 가 포도주를 마신다. 자신을 속이는 정부를 혼내주겠다며 그가 부탁해 대신 써준 편지가 마음에 든 레몽은 나를 진짜 친구라 부르며 굳게 악수를 나눈다.

 

마리와 함께인 일요일 낮, 레몽은 편지의 수신인이었을 여자를 때리고 경찰이 출동한다. 소동이 끝난 후 나는 증인을 서달라는 레몽의 부탁을 수락하고 그와 함께 외출해 코냑을 얻어 마시고 당구를 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를 잃어버리고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살라마노를 만나고,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서의 동물보호소에 가보라고 조언을 건넨다. 그 밤 벽을 통해 들리는 살라마노의 기척과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회사로 전화한 레몽이 일요일에 친구의 별장으로 놀러가자는 초대와 함께, 자신이 혼내준 정부의 오빠를 포함한 아랍인 무리들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전한다. 조금 뒤 사장이 파리 사무실 개소 계획과 함께 전근 의사가 있는지 묻는데, 삶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나는 사양한다. 저녁에 만난 마리는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하고, 마리를 보낸 후 저녁을 먹으려 들른 셀레스트네 식당에서는 ‘키 작은 이상한 여자’와 테이블에 합석한다. 그의 행동을 주시하고 밖으로 나와 한동안 뒤따라가다 놓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 앞에서 살라마노를 만나고 집으로 들여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일요일 아침, 마리와 레몽과 함께 집을 나서며 맞은편의 아랍인 무리를 마주친다. 버스를 타고 알제 교외에 내려 바닷가의 친구 마송네 별장에 당도해 수영을 하고 이른 점심을 먹은 후, 나와 레몽과 마송은 산책을 나선다. 바닷가 저쪽에서 아침에 마주친 아랍인들 중 둘과 맞닥뜨려 싸움이 붙고, 그들 중 한 사람이 휘두른 칼에 레몽은 팔을 베이고 입을 찢긴다. 나는 응급처치 후 돌아와 침울해져 바람을 쐬겠다는 레몽을 따라나선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오랫동안 해변을 걸어 도착한 바위 뒤 샘에서 두 아랍인을 발견한다. 침묵 속에 대치하며 나는 흥분한 레몽이 쏠까봐 그가 꺼내든 주머니 속의 총을 건네받고, 아랍인들은 뒷걸음질로 사라진다. 별장으로 되돌아오자 어쩐지 맥이 풀린 나는 바닷가 쪽으로 돌아서 걷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와 싸우듯 이를 악물고 한참을 걸어 다시 바위 뒤 샘을 향했고, 좀 전의 아랍인 중 한 사람이 그곳에 있다. 터져버릴 듯이 넘쳐나는 햇빛과 현기증 이는 공기 속에 나는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네 발을 더 쏜다.

 

2부에서 나는 체포되어 수감된 상태다. 많은 아랍인들과 함께였다가 며칠 뒤 독방에 격리됐고, 감옥이 도시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작은 창문으로 바다가 보인다. 여러 번 심문을 받았고 원치 않았지만 국선변호사가 선임되었다. 무관심했던 경찰서와 달리 예심 판사는 나와 사건에 관심을 가졌고, 변호사는 사생활 조사를 토대로 유리한 논거를 세우고자 애쓴다. 죄수로서 나는 잃어버린 자유로움과 물속의 해방감을 떠올리고 성적 욕정, 흡연 욕구, 불면 등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차츰 적응한다. 자고 기억하고 침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체코슬로바키아 신문 기사를 반복해 읽고, 빛과 어둠으로 시간을 감각하며 엄마가 말했듯 감옥 생활에도 익숙해진다. 그러는 사이 11개월간 이어진 예심 조사가 끝났고, 6월에 끝나는 중죄 재판소 마지막 회기에 사건이 배정된다.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혀진 나는, 재판 구경에 대한 기대와 달리 법정에 꽉 들어찬 사람들에 답답함을 느끼고 신문기자들의 높은 관심에 놀란다. 엄마의 장례 밤샘 때 맞은편에 앉아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는 아들을 바라보던 노인들처럼, 법정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배심원들은 범죄 혐의를 찾기 위해 나를 주시한다. 양로원장과 관리인, 페레스, 레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 셀레스트 등이 증인으로 소환되어 자리를 채우고 있고, 식당에서 테이블에 합석했던 여자의 모습도 보인다. 재판의 포커스는 아랍인 살해 혐의보다 덤덤하게 엄마의 장례를 치른 직후 해수욕장에 가고 여자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이후 부도덕한 친구와 공모한 나의 ‘반사회성’에 집중된다. 법원이 요구하는 대로 사실을 증언한 증인들의 말은 의도가 왜곡되거나 오히려 불리한 증거로 둔갑하고, 아랍인 살해가 ‘우연’이자 ‘불행’이라는 나와 몇몇 증인들의 주장은 웃음거리가 된다. 내가 범죄를 사전에 계획했고 영혼이 텅 비었으며 사회와 무관하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목을 요구한다는 차장 검사의 주장은, “내가 살인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126p)라는 변호사의 관행적 1인칭 반론을 압도한다. 재판 결과는 교수형, 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어떤 존중을 실감한다.

 

사형 선고 후 교도소 부속 사제의 면회를 거듭 거절한 나의 관심사는 이제 기계 장치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되었다. 살면서 사형 집행에 무관심했던 스스로를 자책하고, 감옥에서 탈출해 힘껏 달리던 거리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희망적인 상상을 한다. 본 적 없는 아버지가 어느 새벽 살인범의 사형 집행을 보고 와서 아침 내내 구토를 했다던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형법 체제를 개혁하는 법률안을 만들어 보기도 하며, 단두대로 향하는 구체적인 경로와 집행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다. 그 순간이 될 새벽녘과 실낱같은 가능성의 상고 역시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때, 세 차례나 면회를 거부한 교도소 부속 사제가 방으로 들어온다. 친구로서의 면회라며 부드럽게 접근해오는 사제의 말에 반박하던 나는 어느 순간 기운을 차리고,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에 폭발해 사제에게 고함을 치고 욕설과 함께 달려들어 장광설을 쏟아낸다. 다시 혼자가 된 후 평정심을 되찾은 나는 기진맥진해 잠들었다가 깨어나, 쏟아지는 별들과 뱃고동 소리를 감각하며 엄마를 생각한다. 다시 삶의 의지를 떠올리고 행복을 느끼며 나는,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그리고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한 청년 뫼르소의 이야기. 제대로 읽은 적 없지만 읽은 것만 같았던 [이방인]을, 영화의 전당 영화 상영과 해설 프로그램 예매하고 읽었다. 책의 절반이 소설이고 절반이 이런저런 관련 글들과 해설, 연보 등인데 일단은 소설과 작가의 글만. 첫 문장과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한 것 외에는 모두 새로운 내용이어서 흥미로웠다. 죽음도 사랑도 결혼도 승진도 넓은 세상도 무죄 주장도 신과 구원도 온통 무의미하다 여겼던 뫼르소가 마지막에 이르러 ‘행복’을 말한다는 점에서, [시지프 신화]의 논리적 전개와 귀결과 거의 일치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무의미하니 순간을 살고 오늘을 살고, 주어진다면 내일을 살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산다, 라고 정리하면 너무 단순한 요약이겠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작가가 미국판 서문에서 쓴,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은” “거짓말(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 누구나 매일 같이 하는 일)하는 것을 거부하는” 뫼르소라는 존재가 일으키는 균열과 파장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남았다. 1940년에 탈고해 1942년에 발표되자마자 화제가 된 이유는 전간기를 살아가는 이들이 다시 전쟁에 휩싸인 시대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현재적 소구력도 만만치 않은 느낌이다. 역자들이 그렇게 고심한다는 작가의 문장과 문체 특성을 알 길 없고, 자신의 부조리 철학을 소설/이야기로 구현한 작품의 깊이를 소화하기 어려운 독자 입장이지만 결국 읽게 되어 좋았다. 특별히 관심한 적은 없는데 [페스트], [결혼‧여름], [시지프 신화]에 이어 네 번째고, 장 그르니에의 [카뮈에 대하여]까지 읽은 터라 이제 작가에 대해 친숙한 느낌이다. 다른 책들도 읽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37p)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닌 것 같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51p) 
“개가 피부병에 걸린 다음부터 살라마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개의 진자 병은 늙음인데 늙음은 낫는 병이 아니다.”(62p) 
““오늘밤은 제발 개들이 짖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늘 그게 내 개인 것만 같아서요.””(63p) 
“그것은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고,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줄들이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그 뜨거움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77p)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가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하늘 전체가 갈라지면서 불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나의 전 존재가 팽팽하게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날카롭고도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들은 깊이 들어가 박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77~78p)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게건 적게건 바랐던 적이 있는 법이다. 그 말에 변호사는 내 말을 가로막았고 매우 흥분한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법정에서든 예심 판사의 방에서든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다그쳤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원래 육체적 욕구에 감정이 방해받는 일이 많은 천성이라고 설명해 주었다.”(83p) 
““도대체 피고인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했다고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방청객들이 웃었다. …… “본인은, 범죄자의 마음으로 자기 어머니를 땅에 묻었다는 이유로 이 사람의 유죄를 주장합니다.” 이 선언은 방청객들에게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았다.”(117~118p) 
“나는, 그것 또한 나를 사건에서 제쳐 놓고 나를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하는 것이며, 어떤 의미로는 나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그 법정에서 아득하게 먼 곳에 가 있었던 것 같다.”(126p) 
“엄마는, 사람이 전적으로 불행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자주 말했다. 감옥에서, 하늘이 빛으로 물들고 새로운 하루의 빛이 감방으로 새어 들 때면, 나는 엄마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발소리가 들려오고 내 심장이 터져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문으로 달려가 판자에 귀를 대고 정신없이 기다리다가 결국은 나 자신의 숨소리를 듣게 되고, 그 소리가 헉헉거린다거나 개가 헐떡이는 소리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스물네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었다.”(137p)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 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역은 우수가 깃듯 휴식 시간 같았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147p)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비워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147~148p)

 

 

알베르 카뮈•김화영 옮김
2011.3.25.1판1쇄펴냄 2025.2.28.2판27쇄펴냄, (주)민음사 


 

Posted by 나어릴때
비밀같은바람2026. 9. 6. 10:10



환경변호사이자 2018년부터 유엔 인권‧환경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서론에서 책의 집필 계기를 자연 세계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과거 바다에서 오카라 불리는 범고래 무리를 관찰하며 느꼈던 경이로움, 어느 날 작은 수영장의 둘레를 반복적으로 돌며 느꼈던 심신의 불편함, 이어 떠오른 사육당하는 범고래들이 느낄 괴로움, 고양이와 함께하며 얻게 된 사람과 반려동물의 관계에 대한 성찰 등 저자의 다양한 사적인 경험들 그리고 20년 이상 환경법을 가르치고 관련 변호 활동을 하며 축적된 지식과 영감 들이 ‘자연의 권리’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 책은 총 4부,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동물의 권리”는 지능이 매우 뛰어나 1993년에 ‘명예 척추동물’로 인정받았다는 문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기까지 강화된 인간 중심주의는 지능, 감정, 언어, 도구의 사용, 기억, 문화, 예견, 협동, 이타심, 자기 인식 등을 ‘인간성의 표지’로 삼았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고 위계화한 서구의 세계관은 다윈 이후 조금씩 균열을 맞았고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인간 역시 동물의 일부라는 사실이 점차 실증되어 이제는 상식으로 통용된다. 다른 한편에는 1641년 미국 메사추세츠베이 식민지 청교도들이 통과시킨 동물 학대 금지법을 필두로 한 ‘동물 복지’의 개념과 가치가 오늘날까지 서서히 진전되어 왔다. 1975년 출간된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은 현대 동물권 운동을 촉발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후 다양한 입장의 동물권 옹호 단체가 생겨나고 많은 소송 및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 부분에서 비인간 동물에게 법인격을 부여할 때 제기되는 ‘당사자적격성’에 대한 논란이 등장하는데, 기업도 법인격체라는 자본주의 논리가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한다. 한편 일부 활동가들은 그 대상이 영장류, 고래, 돌고래 등 고도의 지각 능력을 지닌 동물들에 집중되는 점을 지적한다.   

 

2부 “종의 권리”에서는 특별한 보호 필요성이 인정되는 동물의 범위가 지각 능력 중심에서 절멸 위기종으로 확장되고, 인간에 의해 오염되고 황폐화된 땅이 권리 주체로 등장한다. 1962년 출간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의 영향 및 1970년대 세계적으로 고조된 환경에 대한 우려로 1973년 미국에서는 ‘절멸 위기종법’이 제정되고 그해 전세계 80개국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조인했다. 지구정의나 생물다양성 등을 주장하는 환경단체들의 ‘절멸 위기종법’을 근거로 한 제소가 꾸준히 이어지고 승소하면서, 관리 목록에 올랐던 종의 다수가 복원 목표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CITES’로 시작된 세계적 흐름은 1980년 ‘세계 보전 전략’, 1982년 유엔이 합의한 ‘세계 자연 헌장’, 1991년 논의를 시작해 2000년에 발표된 ‘지구 헌장’ 등으로 이어졌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 참여한 각국은 유엔의 ‘생물 다양성 협약’에 합의했다. 다른 종의 본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세계적 규범이 캐나다, 코스타리카, 방글라데시, 일본, 탄자니아, 뉴질랜드, 유럽연합 등의 법제에도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보호와 개선 및 모든 생명체에 대한 연민을 시민의 기본적 의무로 부과하는 인도에서는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환경 소송에 대한 진보적인 판결이 도출됐다. 2012년 야생 아시아버펄로와 아시아사자 관련 판결에서 대법원은 법의 인간 중심적 편향 가능성을 언급하며 “우주에서 인간과 동물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야생 지역에 스키 리조트를 지으려던 월트 디즈니사의 개발 계획이 결과적으로 무산된 이야기로 시작하는 3부는 나무에서 강과 생태계까지 외연을 넓힌 “자연의 권리”와 관련한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미국의 환경변호사 토머스 린지와 활동가 마리 마길이 주도한 ‘지역사회환경변호기금(CELDF)’은 2000년대 이후 공장식 축산, 석유/가스 프래킹, 대규모 취수, 유해 폐기물 투기, 노천 채굴 등 지역주민의 삶과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산업 관행을 금지하는 법정 소송 및 지방조례 통과 등에 힘썼다. CELDF의 지원과 협력으로 2006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퀄킬 카운티의 터마쿠아 버러에서 2006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조례가 통과되었고, 미국 도처에서 석유/가스 업계의 개발 계획에 맞서는 주민들의 저항 및 CELDF의 연대가 이어졌다.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투표권을 인정하고 20세기에 최초로 여성 총리와 대법원장 등이 취임했던 뉴질랜드에서는, 2011년 중앙 정부와 마오리족의 협상으로 자연권 분야에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 마오리 세계관을 수용해 팡파누이강에 법인격체의 권리가 있음이 인정되고, 2014년 제정된 법에 의해 테 우레웨라 국립공원은 정부 국유지가 아닌 ‘인격체의 권리를 가지고, 그 자신이 소유하며, 그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할 법적 실체’(181p)로 탈바꿈한다. 아오테아로아/뉴질랜드에 이미 1천 년 이상 살았던 마오리족이 1840년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으로 영국에 부당하게 주권을 이양하고 부족의 권리를 상실했던 과거가 자연의 권리로 복원되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남아메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헌법적·법률적 기반이 된 “자연의 권리”에 대해 살펴본다. 지구상 생물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나라 중 하나인 에콰도르는 석유/가스, 채광, 벌목, 팜유 농장 등 갖가지 채취 산업과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려왔다. 과거 잉카와 스페인 제국에 정복당했지만 여전히 많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그중 다수인 케추아족은 산업화에 저항하고 있다. 부패와 혼란이 가득한 정치판에 2006년 좌파 정당이 하나로 모인 알리안사파이스 운동이 등장했다. 대표였던 경제학자 출신 라파엘 코레아는 빈곤 퇴치와 부채 상환 예산 일부의 교육비 및 의료비 전환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이 되었다. 에너지 및 광산업 장관에 취임한 경제학자 알베르토 아코스타는 국제사회가 야수니 국립공원 내 이스핑고탐보코차티푸티니 유전의 추정 매장량 가치(당시 약 35억 달러) 절반을 기부한다면 영구히 개발하지 않겠다는 ‘야수니-ITT 제안’을 발표했고, 원주민 출신 학자 모니카 추히가 참여한 개헌국회에서는 새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포함했다. 이웃한 볼리비아에서는 1990년대 중반 정계에 입문해 2005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보 모랄레스가 변화를 이끌었다. 원주민 세계관을 근간으로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볼리비아는 2010년 ‘어머니 지구의 권리에 관한 법’에 이어 2012년 관련 기본법을 제정해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생태주의적 지향을 명확히 천명했다. 안데스 국가들의 획기적인 변화는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빈곤 퇴치와 자연권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 더해 정부의 우경화까지 많은 문제를 노정했다. 그러나 1948년 발표된 ‘세계 인권 선언’을 보완하기 위한 ‘세계 어머니 지구 권리 선언’ 주창, 2009년 유엔총회의 매년 4월 22일 ‘세계 어머니 지구의 날’로 선언, 2014년 개발도상국 모임 ‘G77’ 국가와 중국 지도자들이 볼리비아에서 채택한 ‘산타크루즈데라시에라 선언과 행동 계획’, 세계자연의권리연합(GARN)의 국제자연의권리재판소 설치 등 운동의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

 

“결론: 마침내 지구에 찾아온 권리의 시간”에서 저자는 앞서 소개했던 많은 사례들이 담지한 핵심을 자신의 주장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우리의 법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도, 인간의 위치를 자연의 정복자에서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 되돌려놓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269p)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가 짚은 대로, 인간 중심주의와 자연의 모든 것에 대한 인간의 재산권 의식, 무제한의 경제 성장 등은 현재 지구가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이다. 저자는 당위적으로 주입되어 현실에서 힘을 잃은 ‘자연보호’라는 가치 지향적 접근 대신,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가장 유용한 잣대로 공인된 법을 통해 자원의 권리 담론을 펼쳤다. 자연을 권리 주체로 인정한다고 할 때 문제가 된 당사자적격성, 나 역시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기업의 권리’ 반례에서 바로 수긍이 됐고 자본주의에 잠식된 스스로를 새삼 자각했다.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인 기업의 재산권이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설득력을 얻는 자연의 권리에 의해 조금씩 제한받고 있는 현실이 다행스럽고도 씁쓸하게 느껴진 것도 비슷한 결이었던 것 같다. 자연의 권리에 대한 국가/정부의 태도에는 원주민 세계관과의 연결성, 기후위기의 영향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은데, 선언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로 인식되는 만큼 일종의 전략으로만 활용되거나 실제 구현 가능한 역량이 부재한 집단에서 더 적극적으로 주창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에콰도르와 볼리바르 대통령의 말로에는 불가피한 권력의 속성도 결부됐겠지만, 2017년에 발표된 원저 이후 약 10년간,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한편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태 중심주의로의 전환, 동물이나 기타 자연의 당사자적격성을 인정하고 대변인 혹은 후견인으로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역시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주의적 발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적어둬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주체와 객체로 나눌 수밖에 없는 상대성에 기인한 보편적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모임원 3인 중 하나의 사정으로 8월은 스킵하고 진행된, 9월의 모임 책이었다. ‘자연’과 ‘권리’라는 재미없는 보통명사 조합의 제목, ‘세계의 운명이 걸린 법률혁명’이라는 거창하고 딱딱한 느낌의 부제, 한 인터넷서점 페이지에 남겨진 박한 평가 등이 어우러져 책을 읽기 전에 선입견이 생겼었다. 하지만 추천자가 고른 3권 중 어느 책도 구미가 당기지 않아 나머지 모임원의 선택을 따른 결과여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책. 영 내키지 않았던 선정부터 읽기 직전까지 받은 인상에 비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후로는 제법 흥미로웠다. 적잖은 기관, 사건, 선언, 소송, 인물 등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초면인 터라 조금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그래선지 저자의 기술에서는 인물 소개에 인상평을 곁들이는 버릇이 도드라졌다. 어차피 다 모르는 사람인데 왜 굳이? 싶었으나 어쩔 수 없었지만 “왜소하지만 설득력 있는 그녀는”(219p) 같은 묘사는 불필요하지 않나 싶은 강력한 거부감이 일기도 했다. 아무려나, 책 덮으면 바로 사라질 무수한 세부적 요소들을 기억하겠다는 부질없는 욕망을 내려놓고 흐름 속 이해에 만족하기로 했더니 결과적으로 괜찮은 독서가 되었다. 한 가지 더, 후반부 안데스 국가의 사례들을 읽으며 생전 아마존 개발을 막기 위해 땅을 매입했다던 리버 피닉스가 떠올랐고, 간만에 그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흔쾌해졌다. 

 

 

“언론인 엘리자베스 콜버트가 문예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말했듯이, “우리를 다른 종과 나누는 것이 ‘종류가 아니라 정도’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현대의 삶에서의 거의 모든 측면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다른 동물과 관계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들을 이용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강력한 도덕적 의무가 있다.”(60p) 

 

“인간은 매년 100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을 죽이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매년 한 사람이 적어도 15마리의 동물을 죽인다는 말이다."(75p)

 

“‘법인격체’란 법에 의해 특정한 권리 능력을 부여받은 실체로서,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기업도 법인격체이며, 배, 교회,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법인격에 수반되는 권리와 책임은 그 실체의 속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90p) 

 

걸출한 하버드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을 포함해서 점점 더 많은 생태학자가 “자연에 절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즉, 다가오는 생물 다양성 소실의 대재앙을 막으려면,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우선권 주장을 적어도 50퍼센트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일부 국가는 이미 이 야심 찬 목표에 놀랍도록 가까이 왔다. 부탄, 세이셸, 슬로베니아,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가 그렇다. 오스트리아, 벨리즈, 베냉, 브라질, 코스타리카, 크로아티아, 프랑스, 독일, 모로코, 나미비아, 뉴질랜드,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스페인, 탄자니아, 잠비아에서 자연의 비중은 모두 25퍼센트 이상이다.(142~143p)

 

그때 국제적 명성을 누리는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자연의 권리에 관한 영향력 있는 기고문을 써서 힘을 보탰다. 그는 에콰도르가 세계 최초로 그런 담대한 결단을 내리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래요, 이상하게 들리죠? 자연에 권리가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 미친 소리지요. 자연은 사람이 아닌걸요!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인권을 누린다는 말은 완전히 정상적으로 들립니다. 1886년에 보편 정의의 모범이라는 미국 대법원이 인권을 사기업에로 확대했습니다. 법이 기업에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 마치 그들도 숨을 쉬기라도 하는 것처럼요.”(218~219p) 

 

국제자연의권리재판소는 부분적으로는 노벨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이 1966년 베트남인에 대한 미군의 인권 침해 혐의를 수사할 목적으로 설치했던 국제전쟁범죄재판소(International War Crimes Tribunal)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국제전쟁범죄재판소는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두 차례 공판을 열었고, 18개국 대표들이 이에 참가했다. 재판부는 25명의 유명 인사로 구성되었는데, 대부분 정치적으로 좌파에 속한 이들이었다. 라틴아메리카러셀재판소(Russell Tribunal on Latin America)와 상설민중법원(Permanent People's Tribunal) 등 유사한 기구의 설치가 뒤를 이었다. 라틴아메리카러셀재판소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의 독재 정권이 1970년대에 저지른 인권 침해를 밝혔다. 상설민중법원은 에리트레아, 동티모르, 과테말라, 자이르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를 다루었다. 더욱 최근에는 국제이라크재판소(World Tribunal on Iraq)가 조직돼 미국의 침략과 그 후의 점령 과정에서 일어난 인권 침해를 드러냈다.(264p)   

 

 

데이비드 보이드•이지원 옮김 
2020.10.6.초판1쇄인쇄 2020.10.16.초판1쇄발행, (주)교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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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