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일지2022. 7. 17. 17:55



어제 일을 마치고 이웃들과 저녁을 먹었다. 복날 삼계탕 먹으러 식당에 가는 건 처음 시도해보는 어른의 일상 같은 것이었는데, 두 달쯤 전의 모임 후 내게 생겨난 극적인 변화에 대한 고마움을 무겁지 않게 전하고 싶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애매한 공간이지만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다른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부축해준 통영의 은인들 덕분에 나는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는 통게하에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많이 웃었다. 9시쯤까지 만남이 이어진 덕에 처음으로 라이트를 켜고 야간운전도 해볼 수 있었다. 각 잡은 자리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만듦 부부가 한 쌍의 부엉이 인형 모빌과 직접 만든 가죽 접시를 개업 선물이라며 주셨다. 괜히 부담을 드렸나 미안하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만난 지 길게는 일 년쯤 짧게는 두 달쯤인 인연들이지만 좋은 이웃으로, 시간이 갈수록 "Dear friends"로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도 공유파트너와 함께 출근을 했다. 사장님의 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한 벤은 어제부터 주차비를 한 번에 받지 않는데, 오늘은 나랑 공유파트너의 냄새도 맡고 입구 방향으로 어슬렁거리기도 하면서 자기 할 일 다 하고 나서야 "옛다" 하듯 받아갔다. 사장님의 간절함이 안타깝지만 물질에 연연하지 않고 주체적이면서도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벤이 더욱 마음에 든다. 어제 식당 가는 길에 통게하에 들러 탄생 50일을 갓 넘긴 찡찡이를 만났는데, 진돗개여선지 벌써 아기티는 벗은 것처럼 보였지만 뭔가 새초롬하고 얌전해서 보호본능이 절로 일어났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건 생각해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나 빼고 이웃들 모두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어서 어제 수다의 반 이상은 아이들 이야기였다. 벤을 자주 만나며 이전보다 친숙해진 느낌이고 동물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는 마음이 녹기도 하지만, 이기적인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이 그저 대단해보일 뿐이다.

 

오늘 공간은 조용했다. 가죽공방에서 아이스크림을 주고 가셨고 나는 토요일 모임을 위해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을 읽었다. 공유파트너는 좀 아까 서울로 떠났고, 조금 후 집에 가면 화요일까지 온전한 휴식이다. 딱히 하는 거 없이 쾌적한 공간에서 책 보고 뭔가 끄적이고 때로 수다 떨고 하면서 하루 여섯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만, 그래도 규칙적인 출퇴근이다 보니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래 냉난방기 바람을 쐬는 탓인지 어제는 종아리가 너무 땡기고 팔다리가 아파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였다. 오늘은 많이 덥지 않아 중간에 끄고 창문을 열어뒀는데 훨씬 나은 것 같고, 잠도 잘 잘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 주는 공유파트너가 좀 길게 머물 예정이고 토요일 저녁에 모임도 있다. 일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일정이지만 감당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아직도 적응이 필요한 일들이다. 이제 정리하고 집에 가서 편안한 시간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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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