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1. 6. 19. 06:25






한 달에 한 번이나 만날까 한 엄마니 말다툼하는 일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한 번씩은 진짜 어쩔라고 그러냐~ 지금이야 그렇지, 나이 먹으면 가족밖에 없다! 로 요약되는 뻔한 잔소리를 듣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주변의 혼자 사는 언니들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우리 세대는 다르다,  꼭 자기가 꾸리는 가정이 아니라도 혼자 사는 사람들 나름대로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잘 살 수 있다~는 둥의 반론을 제기한다. 차마 꺼낼 수 없는 내심은 어차피 다 혼잔데 뭘 어쩌라고? 하는 거지만, 아름다운 거리를 견지하는 커뮤니티의 가능성 역시 조금은 믿고 있다.
 

혼자 사는 걸 무척 즐기는 나 역시 가끔은 외롭고 심심하고 또 따스한 정 같은 게 그립기도 하고, 그래선지 아무리 강렬한 감정으로 시작된 것이라도 꼬박 1년을 채우면 반드시 끝이 났던 이십대의 연애들이 무색하게 무려 2년 가까이 한 친구를 만나고 있다. 몰두하는 방식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고, 사는 곳이 멀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것이 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진행형인 연애의 결정적인 이유는, 가족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과 친구에게서 가끔 느끼는 가족을 대신한 그러나 가족에게 기대하는, 어떤 가족적인 따스함이 아닐까 싶다.
 

매체가 견지하는 가치 지향이 많이 반영된 '일다'의 영화평을 먼저 읽었다. 보지도 않은 '안토니아스 라인'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꽤 자세히 줄거리를 늘어놓는 글에서 그닥 잘 나지 않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니 하는 부분들이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찾아가 본 홈페이지에서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함께 만들었던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란 걸 알았고, 산뜻하고 가벼운 영화의 포장과 소개가 좀 안스럽기는 했으나... 아무리 새로운 이야기도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하는 걸 더 많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업영화의 숙명이려니, 하고 말았다.
 

세 개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하나 하나와 이후의 또다른 하나로 이어진다. 세 이야기 모두에는 분명 주변에 있는데 그 남다름이 크게 부각되거나 변별되지는 않았던 인물들이 단체로 등장하고, 사랑이니 연애니 관계니 하는 큰 말들에 가려 묻혀져있던 심사 복잡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절망하듯 따지듯 내뱉는 말은 대체로 "도대체 왜 이래?"와 "니가 나한테 어떻게!"로 요약되는데, 원초적인 말들이 난무하는 만큼 영화는 신랄하게 '현실적'이다. 한편 끊임없이 삐걱대고 엇나가고 비껴가던 인물들의 화해는 너무 갑작스럽고 공상적이며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나는 감독이 정말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영화는 상상을 동원해서라도 새로운 정신과 가치를 담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첫번째는 고답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에 희생(?)하는 누이와 제 멋대로인 동생과 미워할 수만은 없는 나이 든 그의 여자가 등장한다. 불편하게 덜거덕거리는 일상을 몰고 온 것은 무책임하고 뻔뻔한 남성의 몫 / 어색하고 난감해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여성의 몫, 하지만 복잡하게 꼬인 관계 속에 놓인 한 아이의 출현으로 결국 그들은 모두 각자 흩어지는 방식으로 제 자리를 찾는다. 조용한 생활에 균열을 냈던 짧은 동거가 끝난 후 남은 누이의 집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나이 든 동생의 여자와 그녀 사이를 가르던 담배연기는 이제 그녀에게서 내뿜어진다. 소녀같은 누이로 분한 문소리의 톤이 어색해서 보기가 좀 힘들었지만, 가끔 묘하게 야생의 이미지가 있다 느꼈던 엄태웅의... 가부장제의 저주를 한 몸에 받은, 느글느글하고 능력없는 마초 연기. 정말 정나미 떨어지는 호연 덕분에 박진감이 넘쳤다.    


두번째 이야기는, 가족 관계에서 받은 정형화된 상처가 없는 나는 사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랑 찾아 헤매는 미모의 엄마 덕에 일찍 철 들고 필요 이상으로 깔깔해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지상목표인 현실주의자 선경은 물론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갈망을 그야말로 질질질 흘리고 다닌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 묶여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잔인하고 스스로를 자학하며 낯 모르는 사람에 대한 친절이 몸에 배어버린 젊은 여자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 보기에 무척 아팠다. 자기를 비롯한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에 좇기는 삶의 가련함보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입밖에 내지 못하는 그 여림이 더 안타까웠다. 공효진의 연기는 무척 훌륭했다. 더불어 일상적인 캐릭터로 등장한 류승범은 낯설지만 좋았다.

해사한 두 청춘이 등장하는 마지막 이야기, 정유미는 발견 운운하는 기사에 공감이 될만큼의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봉태규는 늘 보이는 평균적인 자연스러움이 실은 굉장한 재능일 거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했다. 흔치는 않지만 가끔 그런 아이가 있다. 예쁘고 독특하고 착하고, 그래서 빈 듯 하고 그래서 꽉찬 듯 하고 그래서 알 수 없는. 그런 아이 옆에 연인으로 붙어있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이렇게 영화로 만나는 건 드문 일인 것 같다. '가족의 탄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담긴 에피소드였지만(정유미는 영화 속에서 내내 뜨개질을 한다, 봉태규와 실타래을 던지고 받고도 한다, 관계를 잣는 메타포? 뜨개질을 계속하는 그녀는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가상의 요정이기도 한 것 같다), 그 막중한 역할보다 더 마음이 가닿았던 건, 몇 번이나 팔을 올리며 꺼진 타임스위치의 불빛을 되살려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헤픈 게 나쁜거야? 니 옆에 있으면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아! 잘은 모르지만, 이십대에나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대략 15년은 지난 후의 이야기들이 막바로 펼쳐지는 건, 감독이 정말 욕심을 낸 부분인 것도 같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나보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마지막 춘천집에서의 장면들은, 정말이지 상상의 공동체를 보이고 싶어한 감독의 욕심이었겠지만... 도식적이지 않기 위해 억지로 언해피엔딩을 갖다붙일 필요는 없을 거라고도 생각하고. 그들 관계의 비밀이 곧 출생 혹은 성장의 비밀로 치환되어 버린다면 좀은 아쉬운 일이지만... 마지막에 보인 그들의 쿨함이랄까, 어떤 환희랄까. 평화롭고 간질간질한 모계의 아름다움 같은 것도 연상됐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피가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피가 섞였다,는 것은 단순히 가족을 구성한다는 것과는 다르게 훨씬 복잡한 차원의 구속력과 끊을 수 없는 욕망 같은 걸 동반하는 것 같다. 가족주의라는 게 실은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어떤 순혈주의의 재현은 아닐까. 암튼 많은 이야기들이 넘치는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였다. 이따금 째앵~하게 울린, 라이 쿠더가 떠오르는 기타 소리도 아련했고. 잘 알지도 못하는 감독을 너무 많이 들먹였는데, '사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사람이란다.   




2006-05-31 03:37,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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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