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국가에 아프카니스탄이 있어 궁금했다. 배경은 1989년의 카불, 거리에서 조악한 열쇠고리와 영화관 암표를 파는 쿠르닷은 경찰에 걸려 고아원에 수용된다.
소련의 침공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지배기의 끝물, 전쟁 피해와 반군 활동 등으로 생겨난 고아들을 수용해 돌보고 교육하는 이들은 어쩌면 부역자에 속하는 이들이거나 소련에서 파견된 이들이다. 교사들은 성의를 다해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육하지만, 아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에서는 그들만의 위계와 억압이 작동한다. 고아원 옆에는 정신병원이 있고 황량한 주변에서는 탱크전복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학교에 다닌 적 없는 쿠르닷은 난생 처음 앉아본 교실에서 같은 반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하기도 하고,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과의 단체생활을 통해 우정을 나누고, 모두를 살피는 교사들에게 가르침과 보호를 받는다. 아이들에게 고아원은 부모 없는 소년들에게 적당한 식사와 돌봄을 제공하고, 그중 일부는 ‘선구자 캠프’ 체험으로 비행기를 타고 소련 수학여행까지 보내주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동급생 친구가 정신병원에 갇혀 알 수 없는 주사에 폐인이 되고, 전복된 탱크로 열쇠고리니 목걸이를 만들겠다며 챙겨온 불발탄 사고로 친구가 목숨을 잃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던 반장이 쫓겨나는 등 크고작은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런대로 평화롭게 고아원의 일상은 유지된다.
급작스러운 변화는 어느날 바깥으로부터 온다. 반정부연합군이 친소파 대통령을 구금한 뒤 이슬람국가를 선언하고, 그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격랑의 영향은 고아원 역시 피할 수 없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안심시키지만 불안함 속에 소련과 관계된 모든 것을 모아 태우고, 이슬람 복식을 갖추는 등 고아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장한 반정부연합군들이 학교로 들이닥치고, 아이들을 보호하려던 선생님은 그들의 총에 쓰러진다. 모두가 충격이 휩싸이고 아이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선생님을 부축하고 옮긴다. 용기를 낸 쿠르닷이 반정부연합군들을 차례로 때려눕히고 필살기를 날려 위기를 모면하자, 고아원 아이들도 달려들어 반정부연합군들과 격투를 벌인다. 싸움의 중심에 선 쿠르닷의 클로즈업으로 영화는 엔딩.
도입부에서 쿠르닷은 암표를 파는 영화관에서 발리우드 액션영화에 몰두한다. 쿠르닷이 한 소녀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 불발탄 사고로 친한 친구를 잃었을 때, 존경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키려다 희생되었을 때, 그러니까 주인공의 결정적 순간에 영화는 발리우드 무비처럼 뜬금없는 배경 이동과 함께 노래와 춤을 시전한다. 엔딩에서 초인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반정부연합군에 맞서 싸우는 쿠르닷의 액션 역시 초반에 보여준 발리우드 영화 주인공과 꼭 닮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아프카니스탄을 관심한 이유는 하나, 십여 년 전에 읽은 <판지셰르의 사자 마수드>라는 책 때문인데.. 지금의 이프카니스탄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터라, 소련 지배기의 고아원을 배경으로 정치사회적 판단요소는 거의 배제한 채 소년들의 유년과 성장을 다룬 이 영화가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 모호했다. 그냥 상업영화 같기는 했는데 (물론 그게 문제될 건 아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선정한 이유는 그저 색다르고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렇다면 괜찮은 픽이었다고.
10/11 롯데시네마센텀시티
24회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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