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걸음걸이2013. 10. 8. 02:42





많이 주제 넘지만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하다 하다 연극이라니~ 생각도 들었더랬다. 콜트콜텍 투쟁을 처음 알게 됐던 "기타이야기" 속의 노동자들은, 그저 기타만 열심히 만들던 노동자들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는 사이 뮤지션이 되고 셰프가 되고 시인이 되고,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로 단련된 동지들이 연극배우가 되어 무대에 섰다. 
공장에서 클럽빵에서 또 어느 거리에서 기타 만들던 투박한 손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콜밴과, 다른 어느 투쟁사업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문화예술인들의 깊숙한 연대. 미처 존재를 몰랐던 젊은 인디뮤지션들이 꾸준히 발견되는 문화제와 뭔가 감성과 재기 넘치는 작당들. 단지 '기타 공장' 노동자들의 싸움이어서 가능했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 연극일까, 왜 햄릿일까. 첫 공연을 보러가며 곰곰 생각을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근데 "구일만햄릿"은 그냥 연극도, 그냥 햄릿도 아니었다. 2,500일이 다 되어가는 콜트콜텍 싸움의 역사와 역동적인 연대가, 도전과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 노동자들의 노력과 용기가 녹아 있는 또 하나의 투쟁이었다. 안 해 본 것 없는 지난 싸움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지금도 진행형인 노동자들의 삶을 담담히 전하는 영상, 콜트콜텍 투쟁을 깨알같이 상징화한 의상과 소품들 그리고 어쩌면 안간힘이겠으나 할 수 있는 모든 걸 기꺼이 다 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무대 위에서 "햄릿"과 '콜트콜텍'을 오가던 배우들은 극이 진행되면서 한 겹씩 가벼워진다. 피날레에 이르러 마침내 좀은 어색했던 분장을 지우고 평소와 다름없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커튼콜에서는 자연스러운 웃음과 살아있는 표정의 원래 얼굴로 반갑게 돌아온다. 그렇구나... 원래 있던 자리로, 비록 공장은 없어졌지만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워 왔듯이. 어쩌면 결국 노동자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햄릿"의 배우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힘겹게 돌아간 자리와 그때의 모습은 물론 이전과 다르겠지, 세상에 그저 흐르는 시간은 없으니 말이다. 
콜트콜텍 투쟁의 자리에서는 많이 웃고 때로 울기도 하다가 잔뜩 벅찬 마음이 되어 귀가할 때가 많았는데 오늘 역시 그랬다. 좋아하는 공연장 무대의 궁금했던 도전을 확인하는 기쁨 그리고 별개의 깊은 고마움과 감동. 공장 안에서 진행됐던 수많은 투쟁들과 공장을 지키고자 했던 필사적인 투쟁들 그리고 밖으로 떠밀려나온 뒤 지금껏 변함없이 이어지는 투쟁들은 이따금 함께할 때마다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꾸준히 살아가는 '평범한' 노동자들과 그 곁에서 '지극하게' 연대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투쟁의 힘이 이런 것일까. 많이 웃고 돌아보고 기억하며, 싸워나갈 기운과 살아낼 힘을 주고 받는 시간.

"구일만햄릿"이 실은 '팔일만햄릿'이 되었다 한다. 놓치지 마시길, 
14일(월) 그리고 22일(화)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연극실험실혜화동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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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