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 표지에는 흰 바탕에 아마도 동경대 시계탑이 있는 야스다강당으로 짐작되는 세피아톤의 사진이 박혀 있다. 제목과 부제, 표지에서 느껴지는 담담함과 침착함이 제법 두꺼운 본문에서도 줄곧 유지되면서 내용에 담긴 거대하고 깊은 이야기를 더 인상적으로 전해주는 책이다.
역자 해설의 제목('우리가 몰랐던 전공투 운동')처럼,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슬로건과 '적군파' 등이 지배적인 이미지로 되어 있는 일본의 전공투(전학공투회의) 운동이 도쿄대의 경우 실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등이 당시 도쿄대 전공투의 초대 대표였던 저자의 반 세기 후 회고담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또한 근대 일본에서 과학기술이 어떻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며 전쟁과 파시즘에 복무했고 전후 현재까지 발전과 성장 논리의 기저가 되어 사회와 인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고찰한다. 그와 함께 형식적 민주주의와 제도화가 동반하는 소외와 왜곡, 성장과 발전 일변도의 정책이 수익자 외부에 폭력적으로 만들어내는 소수자의 저항과 투쟁 등 자본주의 합리성이 주조하고 대중의 동의 위에서 의심받지 않고 직진 중이던 현대사회의 체제와 매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이고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저자는 물리학을 사랑하는 학생으로 1960년 도쿄대 이학부에 진학한 첫해 미일안보조약에 저항하는 안보투쟁을 경험하면서 가두와 교실을 오가는 대학생이 된다. 당시 한국전쟁 특수로 고속 경제성장의 기초를 다진 일본은, 과거의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원인을 과학기술의 저발전에서 찾았고 이에 대한 반동은 메이지유신과 1930년대 전시에 이어 세번째의 국가주도 과학기술 붐으로 이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전쟁에서 경제로 무대를 바꿔 국가총력전체제를 유지하는 일본의 고도성장이 십수 년간 지속된다.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 도교대 물리학과 학생으로 또 대학원생으로 재적하며 1960년 안보투쟁, 1962년 대학관리법 반대투쟁, 1965년 미국의 베트남 침공과 전쟁이 시작된 이후 1966년 결성한 도쿄대 베트남반전회의 활동, 일본물리학회가 미군의 자금지원을 받아 반도체물리학대회를 열었다는 사실 확인과 함께 이에 대한 문제기와 이후 일체의 군 지원 거부를 이끌어낸 1967년 운동, 1968년 의료영리화에 반대하는 도쿄대 의학부 학생과 연수의사에 대한 처분을 계기로 시작되어 7월부터 야스다강당을 점거해 투쟁주체들의 공동체적 해방공간을 열어내고 당시 자신들의 존재기반이었던 도쿄대 해체 슬로건을 건 자기부정의 투쟁으로 나아갔던 도쿄대 전공투 운동 등으로 채워졌던 저자의 '나의 1960년대'가 기록되어 있다.
도쿄대 당국이 전공투 퇴거 명령을 내린 1969년 1월 17일 이후의 투쟁에 대비하기 위해 저자는 야스다강당을 떠나고, 1월 18일 기동대 투입으로 1월 19일 야스다강당은 함락된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저자는 약 8개월의 수배생활을 보내고 9월 전공투의 전국적인 연합조직인 전국전공투연합 결성대회에 의장으로 내정되어 참가하기 직전에 체포되는데, 여기에서 막 결성된 적군파가 처음 등장하고 이후의 폭력적인 내부대립이 시작된다. 저자가 다루는 부분은 자신이 야스다강당에 머물렀던 기동대 투입 직전까지다.
도쿄대 전공투 운동으로 체포되어 1년여 만에 보석으로 나온 저자는 연구실로 돌아가는 대신 도쿄대 지진연구소의 임시직원 투쟁에 관여해 1971년 3월 다시 체포되었다가 기소 후 그해 6월까지 구류를 산다. 이후 저자는 도쿄대 연구실 대신 독학으로 물리학 학습을 계속하면서 생계를 위해 지인의 회사에서 일하거나 사무실을 내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공안의 방해로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되고 마침 당시 지인의 소개로 학원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학원 강사, 재야 물리사학자로 삶과 공부를 이어가던 중 1987년에는 동료 몇과 함께 '68•69를 기록하는 모임'을 결성해 전공투 운동 기록작업을 시작한다. 1967년 의학부 투쟁부터 1969년 2월까지의 투쟁에서 만들어진 삐라, 팸플릿, 토론자료, 대회의안, 당국문서 약 5천 점을 하드커버 제본 28권과 마이크로 필름 3통으로 정리한 <도쿄대 투쟁 자료집>은 1994년에 국회도서관 등에 기증된다. 저자는 이 장에서 "나는 도쿄대 투쟁에 관해, 단지 그뿐이라면 나 개인의 문제로서 뒤처리를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후까지 '도쿄대 전공투 대표'로 일컬어지는 입장에서 투쟁하며 솔직히 분에 넘치는 것을 젊은 시절에 끌어안게 되었는데, 그 입장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역할은 이 자료집(아카이브) 작성으로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적었다.
저자는 도쿄대라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 이공계 붐이던 시절 촉망받는 물리학도로서 가지거나 꿈꿀 수 있었던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거의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특권'적 위치가 개입될 여지 자체를 차단한 채 과거를 회고한다. 물리학회의 군 지원자금 거부 결의를 이끌어낸 운동 부분에서 그는 전후 핵무기 개발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1955년의 이른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그리고 이 선언에서 아인슈타인이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말 없이, 즉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인류, 인간이라는 종의 일원'으로서 핵의 위험성을 호소하고 다시 태어나면 "상인이나 배관공"이 되고 싶다고"한 부분을 인용해두었다. 더불어 당시의 운동으로 사회와 학계에 팽배했던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과학기술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필요하다면 과학자의 연구 역시 얼마든지 중지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의의를 짚었다.
도쿄대 물리교실의 소립자론연구실 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서 연구하고, 베트남 인민의 투쟁에 연대하며 일본 정부의 전쟁 가담을 저지하기 위해 반전집회와 데모 등 활발히 활동하며 저자는 자신의 생활에 일종의 거북함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다키자와 가쓰미라는,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철학자의 글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표현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헌책방에서 그의 글을 찾아 읽으며 그저 옛날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던 다키자와 가쓰미라는 이름을 저자가 다시 만난 건 1969년 1월, 야스다강당 기동대 투입과 많은 학생들의 체포와 부상 및 자신에게 나온 체포영장 등으로 심신이 극한의 긴장상태에 놓여있던 시기였다.
1968년 6월 규슈대에 건설 중이던 대형 계산센터 건물에 베트남에서 날아온 미공군 제트기가 격돌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고 이후 규슈대는 학생운동과 반전운동이 주목하는 장소가 된다. 학생들의 투쟁으로 유지되던 현장의 미군기 기체가 누군가에 의해 꺼내져 철거되는 사건이 1969년 1월 초에 발생하고, 신문 한 구석에 규슈대의 한 교수가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다키자와 선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저자는 다키자와 선생이 투쟁 속에 쓴 글 <이른바 '대학분쟁'의 맹점>이라는 글에서 "그 스스로 그것을 깨닫든 못 깨닫든, 바라든 바라지 않든 실재하는 인간은 모두 그저 인간일 뿐, 거기로부터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공통의 저변에 놓여 있다"는, 자신에게 호소하는 바가 있었던 구절을 옮기며 한편으로 반전투쟁에 관여하며 한편으로 평화로운 연구실에서 소립자론 연구에 종사하는 자신에 대한 일종의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감정에 있어 극도로 건조한 회고 속에서 다카자와 선생의 현존과 투쟁을 발견한 놀라움과 반가움, 기쁨을 기록한 부분은 매우 짧지만 반짝거리는 기술이었다. 누구나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곱씹고 부응하며 실천하기 위해 따르는 수많는 고뇌의 무게는 전혀 가볍지 않을 것이고, 그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동지적 스승'의 존재는 어쩌면 작은 '구원'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저자는 도쿄대 재학시절에는 대략적인 문제의식으로 가지고 있었던 일본의 군사화와 제국주의화 및 전후 국가총동원체제를 이끈 과학기술 그리고 군산관학 협력체제 및 이에 대한 광범한 대중적 지지와 이를 가능케 했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역사적으로 꼼꼼한 분석과 비판을 병행한다. 분석과 비판은 물리학도로 또 재야 물리학자로 살아온 반 세기의 경험과 연구 및 사유로부터 기인하며, 도쿄대 전공투 시절에 닿았던 '자기 부정'을 피해가지 않는다.
이러한 기록이 향하는 가장 엄중한 주제는 2011년 3.11 후쿠시마, 저자는 물리학자이자 전세대로서 패전 이전세대가 전쟁과 파시즘을 막지 못했듯 원전과 3.11의 파국을 막지 못한 데 대한 후회를 언급하며 "나는 이제 곧 73세가 된다. 매년 베트남반전회의나 도쿄대 전공투 동료의 부보가 들려온다. 나 스스로 앞으로 몇 년 살지는 모르지만 남은 인생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만 한다. 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개인으로밖에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소박한 소회를 덧붙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책 본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 책의 발단이 된 2014년 10월 14일의 강연과 마찬가지로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로 끝을 맺는다. 일러두기에 보면 2015년에 나온 이 책의 본문은 경어체이지만 가독성을 감안해 평어체로 옮겼다고 되어 있다.
오랜만에 접하는 거대하고 침착한 책이었다. 각종 자료와 십수 편에 이르는 보주까지 분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 물론 최대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했다고 생각되지만 나로서는 완전 문외한인 이공계 베이스에 일본근대사까지 복합적으로 또 꼼꼼하게 짚어낸 책이어서 얼마나 소화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박노자의 해제에 임경화의 역자 해설, 도쿄대 투쟁 관련 연표까지 차분히 읽고 나니 개개의 구체적인 서술은 금세 잊힐지 몰라도 책이 제기하고 관통하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만은 나름 이해를 하게 됐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미덕은 독서의 방점에 따라 아주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사롭게 인간에 관심 많는 독자인 내게 가장 큰 부분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생면부지 저자의 존재 자체였던 것 같다. 번역서이지만 글에 투영된 인간은 어느 정도 행간에 밸 수밖에 없다는 전제 하에, 자신을 드러내거나 앞세우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는 성실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어른 한 사람 알게 된 듯한 기분이랄까. 서두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반세기나 지난 옛날 일이 테마라, 나는 다 아는 일도 젊은 독자는 전혀 모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다소 집요할 정도로 설명적인 서술을 첨가했다." "그중 몇은 20대 젊은이가 힘껏 발돋움하며 집필했던 미숙하고 조잡한 글이라서 솔직히 지금 읽으면 애들 같아서 창피한 것도 있고 지금이라면 이런 글은 절대 안 쓸 것 같은 것도 있지만, 그것이 당시 내 자신의 레벨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표명하기 위해, 또한 그 20대의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위해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원래대로 수록했다." "강연 자체에 혹은 나중에 가필하면서 기억이 희미해진 부분이나 착각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고, 그만큼 만들지도 꾸미지도 말고 기를 쓰지 않고 솔직히 서술하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인간이 일흔이 넘어도 세속적인 허영이나 그런 것에서 좀체 벗어날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정직할 수 있었는지 불안하기도 하다. 그 판정은 독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등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리고 책 말미 역자는 해설에서 전공투 운동 당시 도쿄대 교양학부 조수로서 운동에 참가했던 생물학자 사이슈 사토루의 저자에 대한 언급을 다음과 같이 옮겨두었다. "그는 어쨌든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라서 모두가 우러러봤다. 이대로 쭉 가면 도쿄대 이론물리를 짊어질 인물이라는 데 대해선 우리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운동에 뛰어든다는 건 장래를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커다란 쇼크였다. 야마모토가 나왔기 때문에 '이건(섹트 등의) 직업적 혁명가가 지도하는 학생운동이 아니다'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고작 책 한 권으로 접한 저자를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전공투 운동 이후로 일본의 학생운동은 급격히 퇴조했지만, 분명 감동이기는 하다.
젊은 날의 고민과 실천 속에 닿은 신념을 이후의 삶의 과정으로 일궈내고, 자신이 처한 '객관적' 조건에 대한 반성을 통해 더 넓은 사회적 역사적 성찰의 자장을 구축하며 살아간 야마모토 요시타카. 자신이 치열하게 살았냈던 시대의 복잡다단한 함의를 담담하고도 철저한 회고담으로 남겨준 저자에게 전할 길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나의 1960년대] 야마모토 요시타카, 임경화 옮김
2017.6.30 초판1쇄발행,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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