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자정이 넘어 귀가한 명주는 거실 바닥에 코를 박은 채 숨이 멎은 엄마를 발견한다. 거두절미하고 엄마의 죽음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속도감 없는 스릴러처럼 전개된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아파트 소독원도, 엄마의 안부를 묻는 마트 사장도, 이따금 집으로 찾아오는 진천할아버지도, 겨울에 돌아가는 에어컨을 의아해하는 옆집 청년도 명주의 긴장감을 높이고 경계심을 고조시킨다. 명주는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었다. 외출했다 돌아와 마주한 예기치 못한 죽음에 황망한 명주를 움직인 것은 엄마의 휴대폰으로 날아든 연금 입금 문자였다.
명주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다. 결혼하고는 부유한 시댁과 남편의 횡포에 위자료도 포기하고 이혼하며 딸 은진을 데리고 나왔다.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은진을 키웠지만, 도를 넘는 일탈과 뻔뻔함으로 엄마를 경악하게 했던 은진은 초라한 집을 떠나 재혼한 아빠에게 돌아갔다. 자동차공장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며 화상을 입어 고질적인 발바닥 통증을 얻었고, 입증되지 않는 통증은 일상을 무력화시켰다. 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생동성 알바를 눈여겨보기도 했던 명주는 결국 친정 엄마가 혼자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끊이지 않는 불운과 불행 속에 돌아온 집에서, 엄마는 치매 진단을 받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이 시작됐다. 때로는 아기처럼 때로는 폭군처럼 변하는 엄마를 아픈 몸으로 돌보면서 명주는 지쳐갔다. 꾸준히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어느 밤 홀로 떠난 엄마에게는 다달이 입금되는 연금이 있었다. 기초연금 307,500원과 유족연금 698,000원을 합친 백만 원 남짓의 돈은, 언제든 미련 없이 세상을 등질 마음이던 명주를 잠시 멈춰 세웠다. 명주의 선택은 사회가 외면한 삶 앞에서 무색해지는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생각하게 한다.
명주의 옆집에는 준성이 산다. 낮에는 뇌졸중 후유증에 알콜성 치매기가 있는 아버지를 돌보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해 생계를 감당한다. 난소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와 해외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형의 부재는 준성을 일찍 철들게 했다. 정상에 가까운 인지기능을 다행으로 여기며 아버지를 세심히 챙기는 준성은 물리치료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준성이 매일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 산책하고 운동하는 집 앞 공원에는 혼잣말을 하며 트랙을 도는 여학생, 인근 요양원에서 빠져나와 아무나 붙잡고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가 풍경처럼 존재한다.
엄마가 죽은 후 명주는 옆집 청년 준성과 수시로 찾아오는 진천할아버지 등을 통해 미처 몰랐던 엄마의 다른 모습을 만난다. 활달한 성격에 농담을 즐겼던 엄마, 부자만 사는 옆집에 반찬을 나눠주고 김장을 함께했던 엄마, 진천할아버지와 다정한 문자를 주고받고 함께할 제주 여행을 위해 돈을 모았던 엄마 그리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증평에 땅을 사두었던 엄마. 곁을 떠나 신산한 세월을 보낸 뒤 돌아와 마주한 치매 노인과는 다른 엄마의 모습을, 명주는 타인들 덕분에 뒤늦게나마 조금 알게 된다.
백만 원의 연금은 명주에게 전에 없던 약간의 여유를 선사한다. 생존 이상을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명주는 대학 졸업반이 된 딸 은진을 떠올리고 선물을 하기로 한다. 아빠에게 돌아간 후 몇 년간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던 딸, 하지만 재회는 유쾌하지 않다. 떠나갈 때와 다름없이 계산적이고 자기만 아는 은진의 출현은 명주에게 새롭고도 지속적인 위기가 된다. 엄마의 사정은 알 바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집요하게 연락하고 찾아오는 은진의 존재는 재앙에 가깝다.
소설은 701호와 702호에 이웃해 사는 명주와 준성을 번갈아 등장시키며 고립과 빈곤 속에서 홀로 간병하는 이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천형처럼 부여된 혼자만의 간병은 나날이 심신을 갉아먹지만, 간병에만 매달리기에도 버거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생계 활동이 필요하다. 병든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함께 환자로 만드는 가난과 간병의 이중고는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지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굴레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나선 길에는 낭패와 불운이 기다리고, 사회안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데면데면한 이웃에서 서서히 안면을 트게 된 명주와 준성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고통의 무게를 공감대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준성의 아버지가 돌발 상황으로 사망하자 명주는 홀로 전전긍긍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먼저 경험한 각자도생 사회의 끝없는 비참을 준성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명주의 고백과 제안은 핍진하다. 소설은 두 사람이 증평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혼잣말하는 여학생과 보따리 할머니 그리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등장시키며 마지막까지 불안한 반전을 우려하게 만든다. 하지만 준성에게 ‘운수가 좋은 날’이기를 바라는 맺는 문장을 통해 독자를 공범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예전에 책 관련 팟캐스트에서 잠시지만 인상적으로 언급하는 걸 들었는데, 책 모임 10월의 책으로 정해져서 읽게 됐다. 9월의 책은 선정한 나조차도 그저 그랬었는데, 이번 책은 무거운 소재지만 흥미롭게 읽었다. 독자를 시험하듯 시작부터 대담한 사건을 툭 던져놓고 담담하게 이어가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다. 소설 초반 명주가 찾아보는 뉴스들처럼, 비극이나 패륜으로 소비된 기사 속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들이 이랬을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표현을 거의 만나지 못한 덕에 ‘문학성’이란 무엇일까 라는 주제 넘는 독후감도 남았지만, 그건 내 몫이니까.
책 말미 몇 쪽에 걸친 ‘추천의 말’ 중 첫 글부터 ‘작가의 말’까지, 새롭지 않다거나 진부하다는 등의 언급이 있다. 나 역시 읽으며 두 사람의 주인공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갖은 고통과 불행이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세상 어딘가에 이런 이들도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면 수긍이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겪지 않았기에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선택과 삶이지만, 선정적으로 재현되거나 사회적으로 무화되기 십상인 존재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중요한 것 같다. 여러 사회 문제가 집약된 소설이지만, 나는 준성 아버지의 한 마디를 이 책의 메시지로 기억하려고 한다. “이것도 한 인생인 거야.”
신여성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림을 그렸고 글을 썼고 화려한 연애와 쓸쓸한 죽음의 주인공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예전에 [원치 않은, 나혜석]이라는 연극을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내용은 다 까먹은지 오래다. 책등에 자화상의 얼굴 부분이 증명사진처럼 담긴 이 책, 오래 묵었다. 가끔 책장 정리를 할 때면 앞표지의 흑백 사진과 강렬한 제목도 눈길을 끌어서, 마주할 때마다 곧 읽어야지 하면서도 게으름과 다른 읽어야 할 책들에 밀리기 일쑤였다. 작년엔가 팟캐스트 ‘게이PC방’의 예전 에피소드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관심이 생겼고, 모임에서 내 차례가 되어 9월의 책으로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를 추천하면서 마음먹고 먼저 읽었다.
나혜석은 1896년 수원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수원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인 1913년 경성 사립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수 졸업한 뒤, 4월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 사립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했다. 일본 유학을 한 오빠 나경석의 적극적인 추천과 개명관료였던 아버지의 후견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의 신식 교육도 유학도 드물었던 시기, 나혜석을 비롯한 여학생들의 졸업과 유학 소식은 신문 기사로도 보도됐다. 십대 중반이면 조혼 풍습에 따라 부모가 정해주는 상대와 결혼해 시집살이와 다산과 양육을 운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대다수 여성들의 삶이었던 시대였다.
유학 시절 나혜석은 당시 일본 사회의 진보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해방론과 신여성운동의 영향을 흡수하며 지적 성장과 더불어 글쓰기를 시작한다.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과 여성 문예동인지 <청탑> 등에 글을 발표하며 여성으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예술가로서 포부를 키우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강요하는 결혼을 거부해 학비가 끊기자, 1915년 초 조선에 돌아와 여주의 공립보통학교 교원 생활로 돈을 마련해 도쿄 유학을 이어간다. 나경석의 소개로 게이오대학생이자 시인이던 최승구와 사랑에 빠진 것도 이 시기다. 1915년 말 아버지의 사망으로 결혼 압력이 사라지지만, 즈음 최승구는 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조선으로 귀국한다.
1916년 봄 최승구는 25세로 이른 죽음을 맞는다. 그의 가족들로부터 연락을 받아 찾아간 전남 고흥에서 마지막으로 최승구를 만난 나혜석은 다음날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발작을 일으킬 만큼 충격을 받는다. 예술과 삶이 조화롭게 접목된 생활을 꿈꾸던 나혜석에게 요절한 시인 최승구는 일생 이상화된 연인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며 큰 그림자를 남긴다. 1920년 김우영과 결혼한 나혜석은 신혼여행으로 최승구의 무덤을 찾아가 비석을 세웠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젊은 날 죽어가는 그를 곁에서 보살피는 대신 일본으로 속히 돌아와 학업에 복귀한 자신을 원망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1918년 4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나혜석은 잠시 교단에 서기도 하지만 건강 문제로 그림 공부와 글쓰기, 신문 만평 연재 등을 주로 한다. 1919년 1월과 2월 <매일신보>에 “섣달 대목”과 “초하룻날”을 주제로 연재한 풍속화풍의 만평들에는 나혜석이 가진 당대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예리한 관찰력이 드러난다. 1919년 3월 2일, 나혜석은 일군의 지식인 여성들과 이화학당 기숙사 방에 모여 3.1운동에 여학생들을 참가시킬 계획을 논의하고 자금 모금과 만세운동 확산을 위해 활동한다. 8월 초 일경에게 체포되어 5개월간 수감됐다가 경성지방법원의 ‘면소 및 방면’ 결정으로 출옥한다. 혹독한 감옥 생활은 이후 삶의 고비를 극복하는 자신감의 원천이 된다.
이후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나혜석은 1920년 4월 김우영과 결혼한다. 최승구의 죽음 후 이광수와도 잠시 가깝게 지냈지만 이를 반대한 나경석은 조혼한 부인과 사별하고 유학 중인 김우영을 소개했고, 두 사람은 몇 년간 도쿄와 교토를 오가며 교제했었다. 변호사 자격을 얻은 후 귀국해서 3.1운동으로 수감된 여성들을 변호했던 김우영은 적극적으로 구혼했고, 나혜석은 세 가지 약속을 내걸고 결혼을 받아들였다.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주시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하여주시오.”
나혜석의 결혼은 현실적 한계에 떠밀린 선택의 측면도 컸다. 조혼 관습과 신식 사조가 혼재된 시대의 신여성들에게 사랑하는 상대와의 결혼이나 경제적 자립은 거의 불가능했고, 1919년 어머니가 죽고 혼자된 나혜석에게 가족들의 결혼 압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을 거라고 저자는 부연한다. 결혼 얼마 후 찾아온 임신은 또 다른 질곡이 되지만, 출산 후의 부자유스러운 상황을 예상한 나혜석은 임신 기간 중 두 달간 도쿄로 건너가 그림 공부에 매진하고 돌아와 전시회를 연다. 1921년 7월 첫딸을 출산하고 몇 달 후에는 만주 안동현의 부영사로 발령받은 김우영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다.
6년간의 만주 생활은 나혜석의 인생에서 가장 안정되고 생산적인 시기였다. 조선인 최고위 관료인 부영사의 아내로, 첫딸에 이어 두 아들을 출산하며 세 아이의 엄마로 바쁜 중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 선전에 입선해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다양한 글을 발표한다. 특히 1923년 1월 <동명>에 발표한 “모된 감상기”는 임신과 출산, 육아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엄마로서의 의무를 홀로 짊어져야 하는 여성의 운명에 대해 솔직히 토로하며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까지 표현한 도발적인 글이다. 엄마 되기의 고통과 모성 신화의 부조리를 폭로한 글은 남성 논객과의 지면 논쟁으로도 이어졌고, 나혜석은 이후에도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권리와 행복을 강조하는 글을 꾸준히 발표한다.
나혜석의 이러한 활동은 개인적 상황과 사회적 지위가 선사하는 여유로움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포함한 당대 여성들이 시대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계몽주의적 노력이기도 했다. 가부장적 전통의 불합리함과 차별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여성으로서 또 예술가이자 지식인으로서, 나혜석은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며 거대한 장벽에 도전한 것이다. 신식 교육과 유학, 최승구와의 연애와 김우영과의 결혼 등 나혜석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친오빠의 강력한 개입과 영향력이 작용했지만,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는 나혜석의 선택과 의지였다.
1927년 봄 김우영은 만주 안동현 부영사 임기를 마치고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구미 여행 기회를 얻는다. 부부는 6월 19일 부산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다. 1년 남짓 유럽에서 지내며 함께 공식 석상에 참여하고 각지를 여행하지만 김우영은 베를린에서 법률을,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며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10월에는 파리의 조선 유학생 환영회에서 천도교 지도자 최린을 처음 만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으로 급진전된다. 유럽에 머무는 1년 여 동안 나혜석은 유럽 곳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 서양미술사의 원전들을 접하고 여성참정권 운동 경험자에게 영어를 배우며 세계관을 확장한다. 1928년 9월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부부의 여행은 1929년 3월 12일 부산항 도착으로 마무리된다.
19개월의 구미 여행은 나혜석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 단발머리와 양장으로 구태를 벗고 유럽과 미국에서 자유의 공기를 호흡했던 조선 최고의 엘리트는 넷째를 임신한 몸으로 부산 동래 시댁에 닿았다. 김우영은 변호사 개업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나혜석은 적잖은 시댁 식구들과 부대끼면서 네 아이를 양육하며 떠나기 전과도 판이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 중에도 여행하며 수집한 작품들과 직접 그린 그림들로 전시회를 열고 여러 매체의 인터뷰와 여행담 기고 등 활동에 매진하지만, 최린과의 파리 연애 소문이 퍼지고 김우영과의 관계도 악화된다. 결정적으로 나혜석이 최린에게 보낸 편지가 발각되자, 서울에서 딴살림을 차려 살고 있던 김우영은 이혼을 요구한다.
1930년 11월 김우영과 이혼한 나혜석은 다음해 5월 선전에 입선하며 화가로서 다시 주목받고 다양한 기고를 이어간다. 하지만 제전 출품을 위해 집중적으로 그린 작품들 대다수를 화재로 잃는 불운이 닥친다. 재기를 꿈꾸며 1933년 서울 종로에 ‘여자미술학사’를 열지만 ‘불륜과 이혼’으로 사회적 위신이 바닥으로 떨어진 나혜석의 전업 작가 홀로서기는 녹록지 않다. 그림 작업을 계속하지만 지지부진한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담은 다양한 글들을 각종 매체에 발표하며 생계를 잇는다. 특히 1934년 <삼천리>에 발표한 “이혼 고백장”은 김우영과의 만남과 결혼, 이혼까지의 과정을 통해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정조 관념을 비판한 글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이어 최린에게 정조 유린 위자료 청구 소송도 제기하지만, 상당 금액을 받고 취하한다.
“이혼 고백장”과 정조 유린 위자료 청구 소송은 당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고, 현재까지도 나혜석의 이미지를 박제하는 사건으로 기능한다. 파리에서 최린과의 연애와 귀국 후 연락은 개인적으로 김우영과의 의를 저버린 일일 수 있지만, 남성의 불륜과 축첩은 당연시되고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정조가 강요되는 현실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온당한 것임에도 인정받지 못했다. 시대적 한계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몰락한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옐로우 저널리즘과 대중의 관음증에 의해 비난과 주목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초월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혜석은 꾸준히 자신의 경험과 행복에의 의지를 담은 수필, 구미 여행 관련한 기록과 몇 편의 소설 등을 발표하지만 화가로서 이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지는 못한다.
19개월의 구미 여행 이후 삶의 나락을 경험하며 유일하게 기댈 언덕인 그림에서도 고전하던 나혜석은 파리행을 갈망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부산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며 뒤늦게 절감한 모성애는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절망으로 화했다. 첫째 아들이 12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친엄마의 보살핌을 강조하며 재결합의 유언을 남긴 시어머니의 부고에 달려간 부산에서는 김우영에게 수모를 당하고 쫓겨난다. 1937년 겨울 김일엽이 출가한 수덕사를 찾아가 1943년까지 주로 수덕여관에 머물며 여러 곳을 오간다. 그림을 그리며 고암 이응노와 교분을 나누기도 하고, 방학 때마다 찾아왔지만 엄마로부터 외면당한 김일엽의 아들을 친아들처럼 대했다는 기록 등 이 시기의 생활이 당사자인 김태신의 글로 전해진다. 나혜석이 발표한 마지막 글은 1938년 8월 <삼천리>에 실린 “해인사의 풍광”이었다.
40대 중후반의 나혜석은 무너진 심신으로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일제 관료로 승승장구하는 전 남편 김우영의 거처를 따라 대전과 서울을 전전하며 아이들을 찾아다녔고, 오빠 나경석이 그림에 전력하라고 공주에 집을 얻어줬지만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가 쫓겨난다. 보다 못한 올케가 몰래 청운양로원에 가명으로 의탁했지만 그곳 역시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몇 년 후인 1947년 이화여대 미대 학생이던 박인경이 안양의 경성보육원에서 52세의 나혜석을 만나 자서전 정리를 도왔다는 기록이 알려진 마지막 행적인 듯하다. 1948년 12월 10일 나혜석은 서울 원효로의 시립 자제원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한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믿음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던 나혜석이 세상을 떠난 날은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날이다.
저자가 인용한 나혜석의 글들은, 한두 구절의 강렬함으로 전달되는 파괴력에 비해 진중하고 침착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 에고이스트이자 진지한 계몽주의자였던 그의 용감성이 도발적 언행으로만 치부되고, 드라마틱한 인생과 죽음이 후대에도 작품보다 강렬한 이미지로만 남은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읽으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여성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누구의 삶이나 마찬가지일 것이고, 당사자가 가장 오랫동안 크게 천착한 문제가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테니 말이다.
한편 얼마 전에 읽은, 같은 시대를 비슷한 세대로서 완전히 다르게 살다간 [장강일기]의 정정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라는 배경과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삶의 행보를 생각하면, 비판적인 평가를 할 만한 지점은 있는 것 같다. 나혜석의 태생적 조건과 엘리트 교육은 부역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제에 협력한 아버지의 재력에 기인한 것이었고, 결혼 이후의 안정적인 생활과 다수의 선전 입선 등 화가로서의 활동 및 세계 여행 등은 일제 고위 관료였던 김우진의 존재와 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3.1운동에 관여해 옥고를 치른 일,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기관지 <공제> 창간호에 판화를 실은 일, 안동현 부영사 부인으로서 만주의 독립 운동가들을 도왔던 일화 등을 통해 일제에 대한 나혜석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혜석이라는 인물만큼이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당시 조선 사회의 분위기와 지식인 그룹의 다양한 모습이었다. 특히 1910년대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로서 일본 유학을 했던 조선의 청년 지식인들이 1920년대 일제의 문화 통치시기에 사회 진출 기회를 얻은 후 친일로 급선회한 부분에서는, 1980년대 정치 민주화를 이끌었던 386세대가 보수화되고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은 현재의 경향이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직접 경험한 부조리를 사회와 시대의 모순으로 확장하고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던 나혜석이, 출신 계급과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개인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훗날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김우영과의 이혼 이후 지속된 불운과 사회적 추락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떤 책이든 그렇지만 특별히 관점과 맥락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는 독서였다. 특히 한 인물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는 글이라면 배경이 되는 시공간과 환경적 조건에 더해, 주변인들의 영향 등을 참고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그런 복합적 고려에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동시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 사람들의 삶이 천차만별이듯, 일제강점기라는 거시적 동시성만을 공통분모 삼아 인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시도가 부를 수 있는 오독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문외한이기도 하고 책에 실렸거나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림들의 상태도 별로여서, 아쉽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가졌던 그림에 대해서는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책을 읽기 전 조금 부담스러웠던 “인간으로 살고싶다”는 선언 같은 제목은, 시대와 불화하며 고군분투했던 나혜석의 삶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한 마디인 것 같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몇 년 전 11월, 스코틀랜드에 사는 채취인이자 약초연구자인 모 와일드는 야생식만 먹으며 1년간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블랙 프라이데이 주간을 앞두고, 온 세상을 잠식한 팬데믹에도 변함없는 지구 파괴와 소비 열기에 좌절한 마음이 조금은 과격하고 성급한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생태 건축가이자 주류 양조의 달인인 게저, 25년 동안 버섯을 기르며 버섯과 닮아 ‘버섯 맷’이라 불리는 루리와 함께 살고 있다. 10년 전 스코틀랜드 중부 지역의 한 언덕에 지은 목조주택에서 이들은 서로의 기술과 자원을 공유하며 나름의 풍요로운 생활을 해왔고, 버섯 전문가이자 채취협회 회원인 맷은 저자의 실험에도 동참한다. 이 책은 모 와일드의 야생식 채취와 섭취 1년을 기록한 실험 일지이고 무수한 생명들의 개성과 식생에 관한 설명서이자, 그들과 더불어 변화한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야생식으로 1년 살기에 앞서 저자는 실험의 조건과 규칙, 예외 사항 등을 정리한다. 이에 따라 서식지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변, 울타리, 숲 등 다양한 지형에 자유롭게 접근해 먹거리를 채취하되, 90%가량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던 이전과 달리 채취로 먹거리 조달이 불가능한 겨울에는 야생동물과 생선을 섭취하기로 한다. 기존과 같이 식량의 저장을 위해 건조기, 냉장고, 냉동고, 오븐 등을 활용하고 채취와 운반을 위해 자동차를 사용한다. 식재료에는 야생화된 재래종이나 귀화종을 포함하되 채소를 키우지는 않는다. 모든 식량은 채취, 사냥, 선물, 물물교환 등으로 얻고 돈을 쓰지 않으며, 선물은 상업적으로 생산되지 않은 것을 받는다. 예외적으로 갑자기 결정한 만큼 미리 비축하지 못한 견과류를 구입하고, 이전에 저장해둔 올리브기름 그리고 설탕이 들어간 잼 중에서 1년 이상 보관이 불가능한 것들은 야생식 기간 중 활용하기로 한다. 몸의 변화를 알기 위해 시작과 함께 주기적인 장내 미생물 검사도 진행한다.
저자는 지구를 사랑하고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끼며 원시 인류의 생활 방식을 지향하는 인물이다. 아프리카에서 성장하고 세계 곳곳에서 거주하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단순함과 풍요로움, 생명의 순환과 과거 인류의 지혜를 내면화한 자유인이다. 대안적 삶의 경험치와 식물과 버섯 등 자연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가졌고 50세에 대학에 진학해 약초학을 전공한 전문 지식 보유자이기도 하다. 평범한 현대인에 비하면 실험에 적합한 이력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과 60대 초반이라는 연령을 생각하면 1년간의 야생식은 생존을 건 모험이기도 했다. 겨울과 함께 시작된 실험 초기에는 식물과 버섯을 충분히 채취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이웃이 잡아 건넨 사슴고기나 조류, 직접 낚시한 물고기 등 기존과 급격히 달라진 식단을 경험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저혈당과 영양 부족, 긴 겨울의 우울증 등 위기의 순간을 이웃과 친구들의 선물,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정신의 자유로 이겨낸 저자의 1년은 ‘감사의 시간’으로 마무리된다.
실험을 시작한 겨울부터 ‘야라흐’(켈트어로 봄이자 배고픈 시기를 뜻하는, 4~5월의 봄이 오기 전 춘궁기라고 한다.)를 거쳐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마지막 나날’까지, 일기 형식으로 쓰인 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야생식 재료인 자연 요소들에 대한 설명과 요리법 등 ‘야생의 식탁’을 구성하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무관심한 분야여서 반복되는 패턴의 글이 전반부에는 솔직히 지루했는데, 읽다 보니 실험에 가닿게 된 사유의 근원과 태도의 자연스러움 같은 것들이 서서히 드러났고 흥미가 생겨났다. 실험의 직접적인 매개였던 팬데믹과 블랙 프라이데이가 불러온 분노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파괴하는 생명과 지구에 대한 저자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실험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회적 저항이 아니라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저자의 삶에 깊이와 확신을 더하는 계기로 보였다.
저자는 원시 고대 인류와 켈트족, 이교도 전통, 마녀 등 문명과 현대가 역사의 뒤편으로 감추고 낙인찍은 존재들에게서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할 힌트를 찾는다.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어서 처음엔 낯설었지만 오래 탐닉하고 공부하고 감지하며 삶의 사표로 삼은 가치 같았다. 그래서인지 실험에 임하는 저자의 일상, 관련한 과거 조상들의 이야기, 비슷한 결을 가진 친구들과의 일화 등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나이든 자, 많이 아는 자가 적게 말하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은 큰 미덕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의 글이 그랬다. 남다른 인생을 살아온 것 같지만 과거사를 늘어놓지 않고 쉽지 않은 실험을 감행하면서도 부담스럽게 주장하지 않아서,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도 거리감을 느끼기보다 미처 몰랐던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이라는 부제와 그린 컬러의 표지가 주는 책에 대한 첫 느낌은 초반부, 저자가 이웃에게 받은 사슴고기를 직접 해체하는 부분에서 반전되었다. 야생식에 대해 모르지만 막연히 비건을 떠올렸는데 육식이 나오는 것도 동물의 시체를 직접 해체하며 묘사하는 것도 낯설었다. 작업하면서 생명의 흔적과 그에 담긴 영혼을 생각하며 경건해지고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먹으며, 자신의 시체도 언젠가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고 자연으로 돌아가리라는 저자의 순환적 사고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읽으면서 이름과 상황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누구의 성별도 달리 언급되지 않는 점 그리고 친구 크리스티나의 출산을 돕고 마야의 출생을 축하하며 단 한 번의 위반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배움에의 의지와 호기심을 동력으로 영성, 마녀, 세대를 초월한 여성 연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모습에는 야생식과 채취 빼고(시도할 의지와 용기가 없으므로)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일단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성향과 별개로 태도가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류의 삶을 벗어난 경험을 기록한 독서에서 책은 좋았지만 저자에게서는 피로감을 느낀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저자의 유연함과 조화로움 덕분에 읽으며 점점 빠져들었고 독보적으로 편안한 독서였다. 자신의 장례식에 틀었으면 하는 노래로 Tom Waits의 “Green Grass”를 꼽은 것도 반가웠다. 이 노래는 몰랐지만 Tom Waits는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본문에 ‘한국산 호미’가 등장했을 때처럼 저 멀리 나와 아무 상관없는 존재라고 여겨졌던 이와의 느닷없는 연결감 같은 게 불쑥 느껴진 대목이었다.
8월의 모임 책이었다. 야생도 식문화도 관심 없는 편이라 시큰둥했지만 추천자가 한 권만 선택해 결정된 터라 어쩔 수 없었다. 4년째인 모임의 톡방에는 6명이 있지만 한참 전부터 참여자는 4명으로 고정, 그중 성실하게 책을 읽는 이는 2명이다. 책 읽는 한 명이자 책을 추천한 이가 너무 바빠 책을 못 읽을 수도 있겠다고 모임 며칠 전 양해를 구했다. 마침 전날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김이 샜고, 어차피 나머지 2명은 안 읽을 텐데 읽지 말까? ‘프롤로그’와 1부의 도입 부분은 괜찮았는데 본문이 시작되자 줄줄이 나열되는 식물과 버섯 이름들이 대부분 초면이다 보니, 친절한 세밀화 그림들에도 불구하고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에 갈등이 됐다. 그러나 기왕 대출했으니 읽기로 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을 남겨주는 좋은 책이었다.
2월의 모임 책이었던 [더티 워크] 덕에 알게 된 책, 이후 우연히 한국에 방문했던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었다. 총 3부로 구성된 본문은 저자가 국경순찰대 학교에서 교육 받고 국경 지역에서 야전 요원으로 근무한 1년, 이후 정보국에 차출되어 일하다가 작전 수행을 위해 다시 야전 근무에 투입되고 순찰대를 그만둘 때까지 그리고 퇴직 후 국경 지역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친구가 된 건물 관리인 호세의 멕시코 추방과 그를 도우며 경험한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멕시코 이민 3세대인 저자는 자연을 사랑해 국경 지역 국립공원의 파크레인저로 일한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광대한 자연과 국경 지대의 문화적 요소를 흡수하며 자랐다. 할아버지 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친족들 대부분과 달리 ‘칸투’라는 외조부의 성을 물려받은 저자는 멕시코 전통의 영향 아래 성장하며 국경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대학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며 국제질서 하의 이론적 국경에 대해 공부한 저자는 물리적 국경을 직접 체험하고자 국경순찰대에 자원한다.
어쩌면 낭만적이고 순수한 열정으로 선택한 국경순찰대의 일은, 국경에서 마주치는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순진한 예상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멕시코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저자는 자신의 존재가 국경 지대에서 단속된 멕시코인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인간적으로 대우했지만, 생존의 기로에서 택한 월경에 실패하고 송환센터를 거쳐 떠나온 땅으로 보내지는 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위험하고 황량한 국경 지대에서 사망한 이들의 사체나 동행의 죽음 후에 속수무책으로 남겨진 이들을 거듭 만나며 저자는 애초 의도와 달리 무력감과 죄책감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누군가 목숨 걸고 감행하는 시도를 저지하고 중단시키는 자신의 일과 그에 수반되는 폭력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으로서 느끼는 중압감도 점차 심해진다. 반복되는 악몽과 잠잘 때의 이갈이,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 반응, 자신이 선택한 일의 괴로움을 부정하려는 무의식과 커져가는 우울감 그리고 이따금의 돌발행동을 경험하며 저자는 자신이 미쳐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1년간 국경 지대 황무지에서 야전 요원으로 근무한 뒤 저자는 마약단속국의 말단 정보 요원으로 차출된다. ‘나사 통제 본부’ 같은 곳이라는 상사의 농담처럼 모니터로 가득한 사무 환경과 수행해야 하는 업무는 [더티 워크]의 드론 분석가를 연상시킨다. 저자는 국경 지역의 감시 카메라를 통해 지구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들, 즉 사체 발견, 마약 압수, 총기류 몰수, 수배 중인 갱단이나 카르텔 조직원 체포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요약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투입되어 야전 요원으로서 단편적으로 경험했던 국경의 다양한 면모와 문제들을 더욱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국경의 사람들 중에는 선량한 민간인만이 아니라 마약 카르텔과 갱단의 조직원을 비롯해 ‘국경산업’으로 돈을 버는 이들도 많았다. 국경순찰대원들에게는 이들과의 충돌에서 자신의 목숨과 안전을 지키는 일도 중요했고 동료 야전 요원 중 총상을 입거나 사망한 이도 있었다. 국경이 넘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이를 이용하는 자 모두에게 위험천만한 무엇이 된 것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이 아니었다. 국경을 넘는 일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이들이 늘어나고, 이 일이 점점 더 큰돈이 되면서 마약 카르텔까지 가세하며 ‘불법이민자들이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국경의 ‘위험한’ 변화를 여러 저서와 언론의 심층 기사 등을 인용해 압축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근본적으로 국경 정책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2000년대를 전후해 국경을 넘은 멕시코인들을 겨냥한 인신밀입국 사업을 조직적인 갱단이 독점하면서 무사히 국경을 넘은 이들을 감금하는 범죄가 급증했고, 마약과도 연계된 범죄는 몸값 요구를 넘어 무자비한 살인과 시신 유기 등의 참극으로 치닫는다. 멕시코 국경 도시의 시체보관소에는는 신체가 훼손된 이름 없는 시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몰려들었고, 국경 지역 곳곳에는 조직이 처형하고 처리한 시신의 집단매장지들이 산재하지만 실제 발견된 것은 10% 미만이라는 내부자의 증언도 존재한다.
특히 이 시기 멕시코 국경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강간과 살해, 시체 유기 등 연쇄적인 범죄가 빈발하여 2003년 유엔 여성차별방지위원회가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2006년 멕시코의 칼데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였다. 격전장이 된 시우다드 후아레스는 이후 여성만이 아니라 누구나 살해되는 도시가 되었고 위험이 당연한 도시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었으며, 같은 시기 리오그란데강 건너의 엘파소는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선정되었다고 저자는 쓴다.
태평양에서 리오그란데강에 이르는 1,086킬로미터의 국경선이 명확히 확정된 것은, 1848년 미합중국과 멕시코 사이에 체결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과 1856년의 최종 합의 후에도 수많은 논의와 실태조사, 측량과 조정 등을 거친 다음이라고 한다. 이후 저자의 할아버지 대까지는 비교적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했던 국경 통제의 수위가 높아지고 순찰이 강화되자, ‘불법이민자’를 통한 돈벌이가 기승을 부리고 마약 카르텔과 ‘인신밀입국’ 범죄가 만연한 악순환은 오늘날의 현실을 낳았다.
학교에서 공부한 국경과 몸으로 체험한 국경의 괴리는 컸다. 정책이 빡빡해질수록 고도화되고 산업화된 국경 범죄의 실상과 이에 대응하는 조직원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폭력을 내면화하며 갈등과 혼란에 빠진 저자는 4년 만에 제복을 벗는다. 국경순찰대를 그만둔 후 자신이 나고 자랐고 두 뿌리가 수렴된 국경 지역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저자는 한 사건을 통해 새롭게 국경을 경험한다. 매일 아침 간단한 식사를 함께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된 건물 관리인 호세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멕시코에 갔다가 적법하게 귀환할 수 없게 되자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것이다.
평소 성실한 노동자이자 친절한 이웃이었던 호세를 돕기 위해 건물주와 지역 교회가 나서서 재판 준비에 필요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부담하고 탄원서를 모은다. 저자는 유창한 통역자이자 친구로서 그의 아내가 모아온, 열한 살에 미국에 입국해 수많은 블루컬러 직업을 거치며 성장하고 결혼해 세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온 호세의 이력에 관한 각종 서류와 증명서들을 정리한다. 체류자격 문제로 법원과 구치소에 갈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의 보호자로 함께하면서, 국경순찰대로 일했던 지난날의 의미를 속죄의 마음으로 자문하기도 한다.
‘불법체류’와 밀입국 전력이 있는 호세의 재판 전망은 어두웠고 그가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실히 살아왔다는 점과 세 아이가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 등을 기소 재량에 호소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백방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강제 송환 연기 신청 기각과 함께 호세는 멕시코로 추방된다. 절망에 빠진 저자는 자신이 지금껏 거대한 거인의 발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고, 자신을 짓누르는 거인의 실체를 마주한 것 같다고 어머니에게 고백한다. 국경순찰대 지원을 만류하고 일하면서 어딘가 변해가는 모습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말에, 대답을 회피하거나 화제를 돌리며 스스로를 방어하던 저자는 마침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은 것이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호세가 1인칭으로 들려주는 긴 이야기다. 마약 조직이 장악한 위험하고 미래가 없는 고향의 상황, 제대로 교육 받은 건전한 시민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싶은 바람, 밀입국과 강제 송환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고마운 마음, 법의 권위와 준수의 의무를 인정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는 더 큰 갈망, 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계속 시도하겠다는 꺾을 수 없는 미국행의 의지까지. 호세가 모든 것을 걸고 다시 넘고자 하는 국경의 실체는 무엇일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텍사스주 국립공원 끝자락의 리오그란데강을 찾아 자유로이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함께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자신이 지금 어느 쪽 나라에 있는 것인지 망각했다는, 자신을 둘러싼 강과 산은 한 몸이 되어 있었다는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다.
몇 년에 불과했지만 이주 단체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조금 다른 마음이 된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과 한국의 국경은 사뭇 다르고 미국의 멕시코인들과 한국의 이주노동자들도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국경과 출신국이 한 인간의 생의 범주와 더 나은 삶을 위한 바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멕시코계 후손으로서 멕시코인들의 비참을 목격하는 저자의 마음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할 것이고, 아마 그런 이유로 국경순찰대에 지원하고 견디며 상처받고 결국 이런 글까지 써내고야 말았을 것 같다.
[더티 워크]를 읽으며 이 책이 궁금해진 가장 큰 이유는 저자가 책을 출간한 후, 걱정했던 국경순찰대와 과거의 동료들이 아닌 활동가들의 비난에 직면했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렇게 편협하게 활동하는 사회운동가들이 있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는데, 책을 읽은 후에는 그들이 정말 활동가였을까 의구심이 일었다. 책에는 작심한 폭로라기엔 이미 많은 것이 알려져 있는 현장과 조직의 일원으로서, 다분히 개인적인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약간은 내부 고발의 성격도 띤, 무엇보다 국경에 태생적으로 연루되어 있고 매우 다면적으로 국경을 경험한 사람의 깊은 궁구와 성찰이 담겨 있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서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만 자신의 많은 것을 내던져 조금은 다르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는 이상주의자 청년의 분투와 세계의 냉정함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혔다. 어쩌면 호기롭게 도전했던 국경순찰대에서의 충격적인 경험과 결국 상처입고 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기연민을 배제한 채 객관화하고 사회화하려는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현장 연구처럼도 느껴졌지만 연구를 마친다고 빠져나올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이 무겁기도 하다. 고마운 책이다.
프란시스코 칸투•서경의 옮김 2019.5.3초판1쇄인쇄 5.17초판1쇄발행, (주)서울문화사
참으로 좋아해서 여전히 가끔씩 떠올리며 살아가는데 책의 존재를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저자가 ‘거스 반 세인트’로 되어 있으니 그에게도 외래어 표기 기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구스 반 산트로 굳어진 이름과 동명 같지 않기도 하고 검색으로 찾기도 어려웠을 것 같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연히 발견하고 너무 오래 전 책이라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가운데 무려 도서관 보존서고에 묻힌 책를 상호대차로 대출할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에서 모티프를 따고 또 어디선가에서 영감을 얻은 약간 옴니버스 같은 기획이었다고(아닐지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내심 영화 자체에 대한 감독의 의도와 각본에 대한 이야기, 제작노트 기록 같은 걸 기대했는데 몹시 번지수가 다른 책이었다. 그런 장르가 있다면 영화소설 혹은 영상소설? 스크린에 펼쳐지는 인물의 대사와 감정, 서사와 이미지를 그대로 텍스트로 옮겨 쓴 듯한 책이었다.
단, 영화에서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나오지 않았던 전지적 시점의 설명이 꽤 많이 덧붙여져 있는데, 원작에도 있는 것인지 모두 역자의 재량 서술인지 궁금하다. 인물들의 내면이 어떤 부분에서는 과하게 느껴질 만큼 상세하게 묘사되어 때로 거슬리기도 했지만 덕분에 오롯한 존재감의 마이크와 스코트만이 아니라 거리의 부랑 청소년들과 그들의 문화 전반이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1992년에 출간된 책이다 보니, 영화의 톤과 별개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한계가 고스란히 텍스트에도 반영되어 있는 점은 묘한 느낌을 주었지만 말이다.
이십 여 년 동안 영화를 예닐곱 번은 본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본 지 몇 년이 지났는데 활자의 묘사와 함께 머릿속에 영화의 장면들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게 신기했다. ‘사실’보다 이미지가 더 강력하게 기억되기 때문인지, 영화 내용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읽으며 새롭게 느껴졌던 것 역시 신기한 경험. 스스로를 줄거리전제감상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미지나 소회보다 서사의 기억이 쉽게 휘발되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무의식적 강박이 생겨난 걸까 싶어지기도 했다.
영화 포스터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마이크와 스코트의 오토바이 장면이다 보니 그들이 이복형의 집으로, 패밀리 트리 인 호텔로 엄마를 찾으러 떠날 때 타는 오토바이가 모두 훔친 것이었다는 것이 미처 몰랐던 중요한 사실로 느껴졌다. 전혀 염두에 없었는데 밥과 부랑아들이 몹시도 일자리와 안정된 일상을 원한다는 점도 새로웠다. 마이크의 엄마를 찾아간 로마에서, 엄마가 사라진 자리에 나타나 스코트의 사랑을 차지한 카르멜라의 존재와 극적 배치도 의미심장하고 인상적이었다. 그 새로운 사랑은 마이크에게 엄마와 스코트, 이중의 상실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이어서 더욱.
전체적으로는 과연 이 책을 구스 반 산트가 쓴 그대로 번역가가 옮긴 것일까 하는 의아함을 떨칠 수 없었고, 본문 외에는 역자의 말이라든가 부가 설명이 전혀 없어 알 수 없었지만 대체로 기꺼운 마음으로 읽었다. 디테일의 측면에서 새롭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많았기에, 대조할 역량이나 필요는 없지만 책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누렇게 바랜 책장과 아날로그 시절의 도서 관리 흔적들도 한 몫을 한 여러 모로 진한 향수의 독서였다.
어렸을 적만큼은 아니지만 갖은 결핍으로 외롭고 외로운 마이크를 읽으며 여전히 마음이 울렁거려서, 역시 나의 인생 영화는 [My Own Private Idaho]이며 성도 모르는 Mike는 인생 캐릭터라는 걸 확인했다. 또한 그가 미카엘이라는 것도 새삼. 마이크도 미카엘도 모두 리버 피닉스였기에 그 이른 죽음이 남긴 전복성과 충격 때문에 강렬하게 각인된 것이지만, 그의 시절과 나의 시절이 교차한 그 시기로부터 오래 이어지는 마음이 나는 고맙다. 그 길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다호에 한 번은 가보고 싶다.
19세기 초중반을 살다간 샬롯, 에밀리, 앤 브론테 세 자매의 글을 발췌해 담은 작은 책이다. 읽은 건 어릴 때 으스스하게 매료됐던 [폭풍의 언덕]뿐이니 이들에게 별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 [벨기에 에세이]라는 제목에 끌려 선택했다. 본문은 “앤 브론테의 죽음에 대하여”라는 샬럿의 짧은 시를 시작으로 6편의 일기와 11편의 편지를 묶은 “바람 부는 하워스에서” 그리고 12편의 산문이 담긴 “벨기에 에세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초에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글들이 아닌데 서문처럼 읽힌 첫 번째 글을 동생의 죽음에 부치는 시로 넣은 점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망자의 고통이나 남은 자의 비감을 토로하기보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담담히 수용하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내용도 이채로웠는데, 아버지가 목사였고 종교의 무게가 지금과는 다른 세계였을 테니 그렇겠지만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예기치 않게 시작부터 죽음을 마주하며 그들의 삶이 궁금해 살펴보니 책 말미에 짤막하게 실린 생몰년도는 샬럿 1816~1855, 에밀리 1818~1848, 앤 1820~1849. 세 자매가 모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떴고, 시대를 감안해도 너무 짧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밀리와 앤이 함께 썼다는 일기 부분에는 자매들이 자란 하워스 목사관에서의 소소한 일상, 가족과 주변인의 소식 등이 담겨 있고 일기의 원본과 배경이 된 공간의 사진 몇 장이 실려 있다. 자매들은 오랫동안 함께 구축한 상상의 세계에서 ‘곤달 연대기’ 등의 서사를 진전시키며 글쓰기를 이어갔고, 성인이 되어서는 여러 곳에서 입주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훗날 함께 학교를 세우려는 계획과 포부를 키워나갔다. 누군가의 생일이면 과거에 함께 쓴 일기를 열어보고 지나온 날들과 몇 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자매들만의 의식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일기는 1845년 7월 30일, 에밀리의 생일 다음 날의 기록이다. 어릴 적부터 공유한 상상의 세계와 미래의 꿈을 여전히 기억하면서 1848년 7월 30일의 삶을 궁금해 하며 자신들의 나이를 가늠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편지 부분에 실린 11편 중 7편의 수신인이 샬럿과 평생 500통 이상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친구 앨런 너시, 3편이 에밀리, 1편이 아버지다. 현재 세 편만 확인된다는 설명과 함께 실린 에밀리의 편지들은 모두 샬럿의 여행 일정과 귀가 등에 대한 간략한 내용과 안부를 담아 앨런에게 쓴 것이다. 샬럿이 아빠와 에밀리 그리고 앨런에게 쓴 편지들에는 비교적 세부적인 사실들이 담겨 있는데 그 수가 적은 데다 작성일이 뒤죽박죽이어서 맥락적 이해는 어려웠다. 1841년 4월 에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국에서 원하는 직장을 얻을 방법이 없어 뉴질랜드 북부의 섬으로 이민을 떠나기로 한 지인 메리의 이야기를 하며, 그에 대해 ‘이성적인 기획력인지 절대적인 광기’인지 염려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1848년의 마지막 두 편지에는 병으로 고통 받는 에밀리와 죽음의 소식이 담겨 있다. 일기에서도 느껴졌던 자매들의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데, 생에 대한 적극성의 원동력이 신앙심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벨기에 에세이” 부분에 실린 글은 에밀리와 샬럿이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1842년에 9개월간 벨기에 브뤼셀의 에제 기숙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쓴 것으로, 프랑스어로 쓴 과제 형식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샬럿은 과제를 봐주던 에제 선생을 짝사랑했고 이후 소설 [빌레트]에 그 경험이 담겼다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제목만으로 19세기 여성들의 벨기에 여행기 같은 걸 기대했던 터라 살짝 당황했지만, 전반부의 일기와 편지가 구성이나 내용의 완결성보다 사료로서의 가치와 무게를 갖는 글처럼 느껴져 아쉬웠던 점을 상쇄해주는 측면이 있었다.
첫 번째 글 “한 인도인 과부의 희생”은 죽은 남편을 따라 불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는 아내와 그 의식을 목격한 기록이었다. 샬럿이 인도에 갔다는 정보는 없으니 이주한 인도인들의 현장을 벨기에에서 목격한 것 같은데, 내용 자체의 충격파에 어지럽게 혼재된 세계와 인식의 이질성이 크게 다가오는 글이었다. 의아했던 한 가지는, 과부는 스물 셋, 넷 정도로 보인다고 하고서 그 옆에 ‘열 여섯 살’ 난 딸이라고 쓴 부분이었는데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나이차여서 몰입해서 읽다가 의구심이 증폭했다. 원문의 오기라면 달렸을 주석이 없어 편집 과정의 오타인가 보다 싶은데, 이런 부분은 많이 아쉽다.
이후 에밀리의 “고양이”, “해럴드의 초상, 헤이스팅스 전투 전날”, “어머니에게”, “자식의 사랑”, “형제가 형제에게”, “나비”, “죽음의 궁전” 그리고 샬럿의 “앤 에스큐-샤토브리앙의 「순교자들」”, “애벌레”, “죽음의 궁전”, “가난한 화가가 고귀한 귀족에게 보내는 편지”가 뒤섞여 실려 있다. 대체로 두 사람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 인간에 대한 양가적 인식, 독실한 신앙을 전제로 한 세계에의 사유가 녹아 있는 글들이다. “나비”, “애벌레”와 두 편의 “죽음의 궁전”은 같은 글감으로 각각 쓴 글이었는데 신과 자연의 위대함과 유한한 인간의 타락과 비극에 대한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죽음의 궁전”은 감정과 현상을 의인화하고 인간 세계의 질서로 구조화한 상상력과 묘사가 감탄스러웠고, 모티프가 되었을 원전이 궁금해졌다. 화가 초년생 조지 하워드가 밀로드 남작에게 후원을 요청하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미래의 성취를 소망하는 마지막 글에서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이 어느 정도 드러나 흥미로웠고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샬럿의 간절한 바람이 투사된 느낌이었다.
책 전반에 걸친 세심한 주석과 설명, 많지는 않지만 적절히 들어간 자료와 사진들, 영어와 프랑스어 번역자의 ‘옮긴이의 말’에 출판사의 ‘편집 후기’까지 모두가 무척 애써서 만든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과문한 독자로서 원작 언어에 따른 번역 글의 차이를 감지할 수 없었고, 구성과 편집에 들인 출판사의 노고를 책 말미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브론테 자매와 그들의 글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독자라면 무척 반가운 책이 될 것 같다. 초심자로서는 여성의 입지와 활동에 대한 제약이 당연하던 시대의 한계를 별로 느낄 수 없을 만큼 경계 없는 사유와 일상적인 글쓰기와 꾸준한 배움의 길을 걸었던 브론테 자매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좋았다. 너무 짧은 생애로 다 펼치지 못한 탁월한 재능과 진취적인 미래 계획은 안타깝지만, 남겨진 흔적은 충분히 소중한 것 같다.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책에서 다루는 ‘더티 워크’는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더럽다고 여겨지는 일 혹은 임금노동 그리고 물리적 측면보다는 도덕 또는 윤리의 위반을 뜻한다.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사회로부터 더럽다고 여겨지는 개인, ‘더티 워커’다. 저자는 교도소 노동자, 드론 영상 분석가, 도살장 노동자, 시추선 노동자 등을 심층 취재하고 이러한 노동이 현대 미국 사회에서 더티 워크가 된 맥락과 현황 등을 여러 관련 이론과 연결해 서술한다.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더티 워크’ 개념을 처음 사용한 시카고대학교 사회학자 에버렛 휴스를 소환한다. 그는 ‘인간 생태’ 연구에서 직접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시카고 사회학파의 공동 창립자 로버트 파크의 제자로 1948년 한 학기 동안 강의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면서 여러 단상과 지식인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일기를 남겼고, 특히 유대인 ‘문제’에 대한 대화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62년 몬트리올 맥길대학교 강연을 바탕으로 학술지 <소셜 프라블럼스>에 기고한 “선량한 사람들과 더러운 일”에서 그는, 유대인 학살이 사회로부터 ‘무의식적 위임’을 받은 것이며 자신이 나치의 ‘최종 해결책’에 주목하는 것이 ‘우리 가운데 언제나 숨어 있는 위험들에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라고 썼다고 한다.
과거 에버렛 휴스가 제기한 질문들을 현대 미국 사회로 가져온 저자는 팬데믹을 통과하며 명명된 ‘필수노동’ 가운데, 주로 여성과 소수 인종에게 할당된 열악한 저임금 노동들 중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여겨져 더욱 은밀하게 숨어든 더티 워크의 실상과 더티 워커의 현실을 입체적으로 밝힌다. 특히 ‘불쾌한 행위가 사회생활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옮겨졌다’고 쓴 독일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을 인용하며 혐오스러운 것을 격리하는 문명화를 더티 워크의 비가시성과 사회적 은폐와 연결하고, 계급 분석의 초점을 노동자가 겪는 ‘도덕적 부담과 감정적인 어려움에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 리차드 세넷의 <계급의 숨겨진 상처>를 참조해 노동과 도덕적 외상의 관계를 주목한다.
이 책에서 더티 워크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특징을 갖는다. 1) 다른 인간 또는 동물과 환경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며 이따금 폭력을 행사하는 노동 2) ‘선량한 사람들’, 즉 점잖은 사회 구성원이 보기에 더럽고 비윤리적인 노동 3) 타인에게 낮게 평가되거나 낙인찍혔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아니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로 위배했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상처를 주는 노동 4)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에 기반하고 사회질서 유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명시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만약의 경우 책임 회피 가능한, 그러나 누군가 매일 고역을 치르리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위임하는 노동
보통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용인한 일종의 제도적 폭력인 더티 워크는 대체로 가난하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이들에게 할당되고, 사회의 수면 위로 드러나거나 문제가 될 경우 노동자 개인에게 비난의 초점이 맞춰진다. 이는 더티 워크를 지속시키는 권력의 움직임과 복잡한 공모 관계를 감추는 데에 유용하고, 더티 워커를 결정하는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은폐하는 기제가 된다. 저자는 서양에서 백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 계약’을 통해 보장된다고 지적한 철학자 찰스 밀스를 인용해 더티 워크 역시 보이지 않는 계약의 산물이라고 쓴다.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기 더욱 쉽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원인을 거대한 외부의 힘으로 돌리기에도 용이한 계약이다.
PART 1. ‘교도소 담장 안에서’에서 저자는 2012년 플로리다주 데이드 교도소의 정신과 치료시설인 ‘전환치료병동’에서 벌어진 재소자 대런 레이니의 ‘샤워기 치료’ 살해 사건을 중심으로 교도소와 더티 워크를 둘러싼 인권 상황과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탐색한다. 1970년대 정신질환자 ‘탈시설화’ 운동이 1980년대 긴축재정 및 징벌적 형사처벌 정책과 만나면서 주 정부의 정신병원들이 대거 폐쇄되자 미국 사회의 정신질환자들은 교도소에 과밀 수용되었고, 적절한 치료 대신 부적절한 감금과 학대 상황에 놓였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수감자가 1,000퍼센트 이상 증가한 플로리다주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지역 경제가 파탄난 상황에서도 교도소 일자리가 많았다.
1장 ‘학대로 얼룩진 시설로 들어가다’의 주요 인터뷰이인 정신건강 상담사 해리엇은 이 시기 정신보건 서비스 사설공급업체 코라이즌을 통해 데이드 교도소에서 일하기 시작해, 교도관의 재소자 인권 침해를 수시로 목격하고 그에 묵인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런 레이니의 죽음에 침묵한다. 두려움과 일자리의 필요로 내부 고발을 하지 못한 죄책감은 신체적 이상 징후로 이어지고 결국 퇴사 후 플로리다주를 떠난다. 그는 이후 심리치료를 받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저자와 만났을 때 교도소에서 일하며 고통스럽게 써내려간 ‘트라우마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교도소의 잔인한 상황을 전한다. 일을 시작한 초기에 불합리한 관행을 상사에게 공유하자 돌아온 교도관들의 압박에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 뒤, “사다리의 맨 아래층에 속한 채” 무관심과 방임의 동조자로서 느낀 괴로움과 혼란에서는 교도소를 벗어난 후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2장 ‘어떤 시스템이 교도관을 잔혹하게 만드는가’에서 저자는 폭력적인 범죄자를 수용하는 엄중 감금 시설로 지정된 플로리다주의 샬럿 교도소에서 일하다 은퇴한 빌 커티스 등 교도관들 그리고 교도관과 그 가족을 지원하는 심리치료사 스피나리스를 인터뷰한다. 교도관 생활을 “끝없는 불안” 상태로 설명한 빌은 교도소 내에 팽배한 ‘우리 대 저들’이라는 적대적 사고방식과 잔혹한 습성의 ‘연쇄 공갈꾼’ 동료들 그리고 자신 역시 행사했던 폭력 등에 대해 증언하면서, 각종 교정 사업의 민영화와 인력 감축 및 재정 긴축 정책을 주요인으로 지적한다. 주립 정신보건 시설의 급감 및 ‘삼진아웃법’ 등 엄벌 정책의 유행으로 더욱 악화된 교도소 환경은 너그러운 교도관마저 물리력에 의존하게 만들었는데, 때로 발생하는 동료의 죽음과 자살은 자기 보호를 위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1970년대 이후 교도소는 시골성, 인종, 지역, 빈곤이라는 사중의 낙인을 짊어진 지역에 세워졌고, 교도관 생활로 내적 갈등과 도덕적 혼란을 느끼면서도 침체되고 척박한 시골에서 드문 일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1960년대의 정치적 격변과 1971년 아티카 폭동 등의 여파로 1970년대부터 증가된 흑인 교도관들은 만연한 인종차별과 직업 규율 사이에서 가중된 갈등을 경험했고, 전과가 있으면 교도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빈곤율과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흑인과 라틴계 여성이 교도관으로 일할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플로리다시티의 데이드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며 지역을 탐색하는데, 퇴락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목격한 구인공고가 교도관 채용이었다고 적는다.
이런 조건에서 일하며 가치관과 관점의 변화를 겪으면서 “도덕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말한 빌처럼 많은 교도관들이 심리적‧정신적 어려움에 빠지고, 구조적 폭력이 공고한 시스템의 말단에서 그들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된다.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트럭 운전사, 물류창고 직원 등과 함께 ‘필수노동자’로 지정된 교도관 중 10만 명이 양성 판정을 받고 17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다중적인 위험을 몰아넣은 교도소의 물리적 열악함은 개선되지 않았고 특정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비난의 화살은 교도관들에게 쏠렸다. 저자는 관련해 과거 노예제를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던 남부 농장주 ‘신사들’과 그들에게 노예를 공급하며 ‘영혼몰이꾼’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잔혹한 노예상을 언급한다. 즈음 대니 레이니 살해 사건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은 플로리다 주정부의 재수사 결과 역시 대중의 비난은 교도관에게 집중시키면서도 교도소에 만연한 면책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3장 ‘인권 대신 이윤을 좇는 교도소 자본주의’에서 저자는 1842년 찰스 디킨스를 초대한 펜실베니아주의 이스턴 주립 교도소를 방문하고 그가 남긴 기록으로부터, 현재 미국 교도소의 물리적‧지리적 변화를 좇으며 잔인성의 가시성과 형식에 주목한다. 대런 레이니 살해 사건은 교도소 인권 상황에 대한 대중의 오랜 무관심을 환기했지만, 공공시설인 교도소의 운영 예산 삭감을 위해 시행된 인력 감축과 교정 사업 민영화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로막는 구조적 시스템으로 이미 안착됐다. 해리엇을 고용했던 코라이즌 등 교도소 의료서비스 제공업체는 재소자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체로 자리잡았다. 민간 부문에 외주화된 노동의 조건은 악화될 수밖에 없고 내부의 재소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비용 절감은 ‘납세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포장된다. 저자는 부적절하게 과밀 수용된 교도소 내 정신질환자를 치료시설로 보내는 프로그램을 채택한 일부 주들과 재소자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으로 상황이 나아진 일부 주들의 사례를 통해 암울한 현실의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다.
PART 2. ‘드론 화면 너머’에는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수행하는 군사작전의 드론 영상을 분석하는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미국이 과거의 팽창주의적 대외 간섭 기조를 폐기한 이면에는 드론을 사용하는 전투 방식이 보편적으로 자리했지만 공적 담론의 장에서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데, 베트남전쟁 이후 징병제가 폐지되면서 미국이 자행하는 전쟁에 대해 미국인들이 무관심해졌고 이러한 방식에서는 미국 병사가 사망할 위험이 없으며 드론 전투 자체가 가진 비밀주의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대신 ‘조이스틱 전사’라는 비아냥 속에 해가 들지 않는 작은 방에서 모니터를 응시하며 도덕적 외상과 윤리적 딜레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전쟁의 부담을 짊어진다. 그들은 업무 시간과 일상생활의 도저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이 모니터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기밀 사항과 업무 수행에 따르는 트라우마를 홀로 감내한다. 전장의 물리적 위험이나 목숨을 건 동료애 같은 것이 부재하는 전투를 외롭게 수행하는 드론 조종사들의 혼란과 환멸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고, 과거 베트남전 등의 귀환병들에게 돌아갔던 형식적인 경의와 명예 또한 남의 일이다.
4장 ‘드론 조종사의 고립된 몸과 마음’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아론은 드론 전투원을 자원해 활동하며 초기에는 제법 잘 적응하지만 결국 깊은 도덕적 외상을 입고 그만둔다. 이후 홀로 침잠하며 치유와 회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던 중 친구의 권유로 ‘평화를 바라는 참전병사단’ 모임에 참여하고, 과거 표적살인에 가담한 자신의 일과 죄책감과 회한 등을 청중들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비밀주의에 휩싸인 드론 전투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기 시작한다. 익명의 협박 메일이 쇄도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으로 사회가 소수에게 위임한 보이지 않는 전쟁과 폭력의 실체를 가시화하며, 그는 “제가 죽인 모든 사람을 위한” 묵념을 청중들과 함께 올리기도 한다. 저자가 참여했던 한 모임에서는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귀환병을 둘러싸고 청중들이 “우리가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 우리는 당신의 책임을 함께합니다.”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얼핏 가해자들끼리의 위로와 치유 같은 느낌도 들지만, 사회의 모두가 연루된 전쟁의 책임을 전투원에게만 전가하는 현실을 성찰하고 그 무게를 나누는 것이 전쟁을 멈추는 머나먼 길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5장 ‘가난과 폭력의 상관관계’의 인터뷰이인 헤더 라인보는 나고 자란 시골 소도시의 탈출구로 영상 분석가를 선택했다. 해군에 지원해 멀리 떠나고 싶었던 그가 신병 모집 창구를 찾았을 때 자리를 비운 해군 담당자 대신 공군 담당자의 제안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군 소탕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을 위한 영상 분석에 투입된다. 아군 병사 보호와 적군 병사 소탕이라는 이중의 임무를 새기며 매일같이 모니터를 응시하면서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죽음을 거듭 마주하던 헤더의 내면에는 점차 의구심이 일기 시작한다. 퇴근 후엔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잠을 잘 때면 강박적으로 이를 갈며 심신의 통증이 심화되던 중 찾아간 상담사는 그를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한다. 그런 헤더가 느끼는 또 다른 부담과 부당함은 출근길 기지 앞에서 자신들을 향해 반전시위를 벌이는 코드 핑크 시위대였다. 자신과는 다른 계급에 속한, 반전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의 독선적인 정의감과 엘리트 의식과도 싸워야 했던 헤더는 결국 3년의 근무 끝에 조기제대한다.
한층 수척해진 모습으로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돌아간 헤더는 드론 영상 속 목표물 같은 괴물 악령과 다정한 양육자였던 아버지의 질타를 당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헤더처럼 잠을 잘 때 강박적으로 이를 갈고 악몽에 시달리는 또 한 사람, 미국의 남쪽 국경에서 국경순찰대원으로 일했던 프란시스코 칸투가 등장한다. 어머니가 멕시코계 미국인인 칸투는 국경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신의 출신과 언어가 이주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국경순찰대에 지원해 3년 6개월간 일한 뒤 도덕적 외상에 시달렸고, 당시의 경험을 담은 [선은 장벽이 되고]라는 책으로 펴냈다. 책을 출간하며 칸투는 국경순찰대의 비난을 각오했지만 그의 낭독회에 나타나 불매를 외치고 ‘나치’라고 호도한 이들은 이주민 인권운동가들이었다고 한다. 관련해 저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리모 레비가 에세이 “회색지대”에 쓴, 나치가 저지른 가장 악마적인 범죄는 죽음의 수용소 내 노동 분업에서 강압된 협력이라는 “회색지대” 안에서 피해자의 무죄성을 강탈한 것이라는 부분을 인용한다. 레비가 경험하고 묘사한 상황의 무게는 압도적이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티 워커로 내몰린 이들의 무죄성 숙고해야 할 부분이다. 책을 펴낸 칸투처럼, 자신의 경험을 언론에 기고한 헤더도 충격적인 비난의 댓글을 마주한다.
PART 3.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6장 ‘착취의 연결고리가 된 도살장 노동자’에 등장하는 플로르 마르티네스의 성장기는 놀랍도록 기구하다. 어린 시절부터 빈곤과 폭력 등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언젠가 찾아올 행운을 믿은 그는 우여곡절 끝에 텍사스주에 당도해 닭고기 정육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가금류 도축공장의 노동 환경은 1906년 업턴 싱클레어가 소설 <정글>에서 열악한 현실을 폭로하며 사회적 주목을 받았고 이후 힘을 결집한 전미정육노동자조합이 단체교섭권을 쟁취해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1970년대 새로운 생산모델을 도입한 IBP 등의 정육회사가 시골 지역에 공장을 세우면서 변화를 맞았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한 사측은 중개업자를 통해 멕시코 등의 이주민과 시에라리온 같은 전쟁 지역 난민을 고용해 노동 조건을 하락시켰고, 시각적 참상과 각종 악취와 필연적으로 산재를 동반하는 도축노동은 급격히 증가한 닭고기 소비량과 함께 이주민에 특화된 “대농장식 자본주의” 더티 워크로 자리잡았다.
미국으로 건너와 결혼한 플로르의 남편은 정육공장의 관리자였다.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억압적인 관리자들에게 멸시와 혹사를 당했고 크고 작은 산재에 시달렸지만, 그럼에도 정육공장은 이주민이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드물게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고위직의 압력을 그대로 아래로 전가하는 관리자 남편과 이혼하고, 공장에서 일하며 얻은 산재를 개인 질병으로 호도하는 사측으로부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퇴사한 플로르는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 봄 노동자 권리 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집단감염의 위험에도 ‘중요한 인프라 산업 종사자의 특별한 책임’을 강조하는 사측은 라인 가동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고, 사태를 추적하던 플로르는 코로나19 감염에 이어 유방암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노동자 권리 센터 직원에게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플로르는 퇴사를 결정하고 저자에게 문자메시지를 전한다. “이건 정말 기적이에요. 나는 원래 지금까지 살아 있을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난 여기 이렇게 있어요. … 멕시코 사람은 고생해서 살아남는 데 익숙하니까.”
7장 ‘정육산업을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저자는 도축노동이라는 더티 워크의 기반이자 원인을 미국인의 식욕으로 꼽는다. 더 많은 저렴한 고기를 원하는 시민들의 욕구에 부응하며 더 많은 이윤을 챙기기 위해 정육산업은 나날이 고도화되었고 노동 조건은 더욱 열악해지고 비가시화되었다. 도축노동은 다양한 하위 분야로 세분화되어 노동자들이 자신이 동물을 죽이고 있다는 의식 없이 기계적 과정을 반복하게 만들었으나, 감정을 가진 인간의 영혼에 남기는 상처는 불가피하다.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공장의 비위생적인 환경이 이슈가 될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각종 규준은 대체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직업안전보건국의 방임으로 무력화되었고, 각종 화학 물질에 노출되고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육식 소비가 급증하면서 한편에서는 동물권 운동이 성장하고 윤리적 소비 실천의 흐름도 증가했지만, 이들의 관심과 문제제기가 노동 환경 개선까지 가닿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윤리적 소비가 구매자의 가처분 소득 수준에 상당히 좌우되며 결과적으로 계급 격차를 반영한다는 한계는 자명하다.
PART 4. ‘현대 사회의 뒤편으로’에서는 시추선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등장한다. 석유와 디지털 기술은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떠받치는 필수 요소지만 노동자들의 위상과 현실은 천지차이다. 8장 ‘시추선 생존 노동자를 둘러싼 모순된 시선들’은 2010년 멕시코만 해상의 반잠수식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 사고 이야기로 시작된다. 환경 재난과 탄소 배출로 석유산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추선 노동은 기존의 물리적 더러움에 도덕적 더러움이 덧씌워졌다. 심각한 기후위기의 대응책으로 대체에너지로의 전환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2019년 전 세계에서 소비된 에너지원의 84%는 화석연료라고 한다. 누구도 석유 사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변화한 지구 환경과 사회의식은 손쉽게 석유산업을 겨냥한다. 독과점이 만연한 업계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조건에서 시추선을 선택한 노동자가 현장의 위험에 사회의 비판적 시선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의 생존자인 스티븐은 어려서부터 자연을 사랑한 문학청년이었지만 고졸 학력으로 가장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여서 시추선 잡역부를 택했다. 그의 아내 세라는 풍부한 예술적 소양으로 사진과 회화를 전공했고, 우연한 만남에서 나눈 지적 대화와 석유산업 종사자가 많은 지역 출신이라는 공감대로 스티븐과 가까워져 결혼했다. 사고 현장에서 스티븐은 신체적 부상 없이 탈출하지만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과학소설과 우주공간에 탐닉하면서 간혹 과음과 돌발행동으로 강박적인 현실 도피 성향을 보인다. 세라는 스티븐을 돌보며 시추선 노동자와 가족들의 초상화 작품 ‘생존자들’을 작업하면서 표류하는 남편과 흔들리는 자신을 치유하려 애쓴다. 그러나 허술한 안전 관리로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사측은 생존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입막음에만 급급하면서 책임 회피와 이미지 세탁에만 몰두한다.
편집증적인 공포와 공황 발작에 시달리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은 스티븐은 믿었던 사측에 대한 분노와 환멸에 더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자신이 했던 일과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에도 빠져든다. 이는 사고 이후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이 노동자의 고통은 외면하고 오염된 자연과 해양생물에만 집중되는 현실과도 연관된다. 석유산업 등 자원 채굴 산업은 한때 지역을 먹여 살리고 사회의 경제를 떠받치는 동력으로 인식되어 주민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으로 작용했지만, 환경 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제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저자는 루이지애나주와 캘리포니아주를 대상으로 해양 시추 사업의 위상과 영향력을 비교한 연구를 예로 들며, 시추 노동을 결정하는 요소로 계급과 함께 지역 및 지리 조건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시추 사업 이입에 대한 지역의 저항성이 주민의 경제적 수준과 정치적 진보성, 학력 등에 어느 정도 좌우되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오염과 위험을 감수하고 산업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도소가 주로 시골 게토에, 정육공장이 외딴 산업단지에 지어지듯 정유공장과 시추선이 주로 루이지애나주와 앨라배마주에 들어서고 유지된 이유다.
9장 ‘실리콘밸리의 어두운 이면’에 등장하는 더티 워커는 앞서 나왔던 노동자들과는 다른 맥락과 선택을 보여준다. 구글에서 일하며 자신의 일이 비윤리적인 사안과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고 사직한 잭 폴슨과 로라 놀란은 전문성과 창의력을 겸비한 엘리트 노동자다. 이들은 각각 중국 정부의 규제를 따르고 사용자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는 검색 엔진 개발 프로젝트 드래곤플라이, 미국 국방부의 기밀 영상과 데이터 분석력 강화 프로젝트 메이븐의 존재를 인지한 후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다. 내부에서 비밀리에 수행되던 프로젝트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자 문제를 인식한 이들은 일부 동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다. 기술의 유연한 전용 가능성에 잠재된 문제점, 자신의 일이 불러올 영향력과 파장을 알 수 없게 구획화되고 파편화된 테크업계 노동의 본질, 책임이 분산된 시스템이 비가시화하는 위험 등을 인지한 이들의 선택은 직접적인 문제제기 그리고 자의에 의한 ‘퇴장’이었다.
더 많은 연결, 더 좋은 세상에의 기여를 강조하는 구글 등 대표적인 테크 기업들은 무수한 사용자의 정보 수집을 통해 천문학적 이익을 얻고 과도한 권력을 행사한다. 미디어 기술의 고도화와 과잉 상태는 테크 기업의 부정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 환기했고 때때로 드러나는 반윤리적 이슈는 대중의 반발을 야기하기도 한다. 구글에서 퇴사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했던 잭 폴슨이 화려한 이력에 직업윤리까지 투철한 지식 노동자로 알려지면서 테크업계와 학계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다는 사실은 업계의 현실과 대다수 더티 워크와의 차이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잭과 로라 역시 자신의 일과 조직에 대한 배신감과 회의를 느끼고 나름의 고통을 겪지만 이들은 여타의 더티 워커들처럼 심각한 경제적 문제나 깊은 도덕적 외상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다음 스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유사한 업종으로 금융인이 거론되는데 이들도 마찬가지다. 고임금과 사회적 지위, 성공 자체가 부여하는 도덕적 가치 획득이 가능한 직업군의 ‘더티 워커’들은 윤리적 타협을 요구하는 일 앞에서 불만을 제기하거나 퇴각할 수 있고, 나아가 공동체를 위한 폭로가 대중의 비난이 아닌 새로운 기회를 불러오기도 한다.
저자는 ‘나가며’에서 에버렛 휴스를 다시 소환한다.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숨겨진 더티 워크를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은 여러 차원의 방벽이고 가장 중요한 방벽은 우리 자신이 세우는 방벽이며, 에버렛 휴스는 프랑크푸르트 일기에서 이러한 장벽을 세우는 사람을 ‘수동적 민주주의자’라고 썼다고 적는다.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깨끗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계속 모르기를 원한다고도 썼는데, 실은 2월의 모임 책이어서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이 부분에서 뜨끔하면서 집중력이 확 높아졌다. 다루는 더티 워크의 배경이 되는 정책과 제도의 변화, 사회 분위기와 이를 둘러싼 다양한 입장과 진영의 인식, 관련된 역사적 사실과 매커니즘 및 연구와 이론의 다양한 연결 등을 통해 이해를 높여주는 서술이 좋았다. ‘더티 워크’는 새롭게 접한 개념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관행화한 구조적 비가시성과 경제적 불평등은 어쩌면 조금 당위적인 이야기였는데, 그럼에도 모르는 분야에 대한 입체적인 서술과 생생한 사례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여러 번 등장하는 조지 오웰과 그의 작품, 다수 인터뷰이들이 글쓰기와 책 읽기 등 활자에 친화적인 인물이라는 점, 대체로 어두운 이야기들이었지만 더티 워크가 정해진 숙명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어느덧 냉담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선택하지 않을 책이었는데, 간만에 책 모임의 보람을 진하게 느꼈다.
본문이 시작되기에 앞서 몇 장의 사진들과 카뮈의 삶을 간략히 서술한 출판사 편집부의 ‘책 머리에’ 글이 나온다. [결혼·여름]이라는 제목만으로는 언제 쓰인 어떤 글들일지 짐작하기 어려워 막연했는데 글의 주요 배경이 되는 알제리 지역의 대표적인 장소 사진들과 지도, 카뮈의 생전 모습과 묘지 사진 등을 먼저 살펴보며 마음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었다. 표지에서부터 느껴졌던 출판사의 감각과 성의가 친절한 길잡이 덕에 더욱 사려 깊게 다가왔다. “결혼”에 담긴 네 편의 글은 카뮈가 고향 알제리에서 살았던 20대 시절의 습작으로 1938년에 알제에서 한정판으로 출간됐던 것이고, “여름”의 여덟 편은 1939년부터 1953년에 집필되었다고 한다.
1913년 알제리의 벨쿠르에서 태어난 카뮈는 손찌검이 일상인 할머니와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어머니와 살았다. 가난했지만 도서관을 해방구 삼았던 밝고 총명한 소년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돈벌이에 나서야 할 운명이었는데, 교사 루이 제르맹의 설득 덕분에 할머니의 반대를 극복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십대 때부터 앓은 폐결핵으로 교수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고 이른 결혼은 실패로 끝나는 등 20대 중반까지 이어진 시련에도 청춘의 카뮈는 삶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다. 먼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 후 은인인 제르맹 선생에게 수상 기념 연설문을 모은 책을 헌정하는데, 이때 주고받은 편지에서 선생은 어린 시절 그에게서 보았던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기쁨’과 낙천주의를 언급한다.
첫 장 “결혼”에 묶인 글들은 폐허가 된 고대의 유적과 조야한 현대 문명, 압도적인 자연이 기묘하게 불화하고 조화하는 알제리 몇몇 지역의 인상기이자 찬가 같은 느낌이었다. 첫 글의 도입부부터 줄줄이 열거되는 나무와 꽃 들의 이름이, 아는바 없이 진지하고 회의적인 느낌으로 내게 새겨져 있던 카뮈의 이미지를 흔들었다. 돌과 바다, 태양, 식물에 대한 찬탄, 삶의 경이와 행복에의 의지, 모순과 아이러니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기술들이 조금 낯설어 적응이 안 되기도 했다. 그의 내면과 영혼에서 이어진 듯한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탄과 감각적인 묘사, 현대 문명과 발전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오가는 행간에서 나는 약간 길을 잃은 느낌을 받았다.
책 서두의 사진과 지도를 들춰가며 글의 추상성에 어떤 구체성을 덧붙여 이해해보고자 했는데 중반부까지는 이따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있으되 마음에 크게 와 닿는 글이 없었다. 서사가 없다고 하면 이상한 말이겠지만,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의 기둥이 있다고 한들 전반적으로 의식의 흐름에 좀은 과하게 느껴지는 미문과 찬탄이 부담스러웠다. 하여 초반에는 역시 습작은 습작인가 싶다가, 내게 이제 청춘의 환희를 수용할 수 있는 감성은 완전히 사라진 건가 싶다가, 그리스 신화와 알제리의 자연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감흥이 없는 걸까 싶다가…. 이 얇은 책을 읽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자책하며, 머리로는 다양한 잡생각이 출몰하고 눈으로는 활자를 따라가는 통독 상태와 의지를 발현한 각성 상태를 오갔다.
책을 읽는 내면과 책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내면의 충돌을 다스리며 중반을 넘어, “아몬드나무”에서부터 글자가 글로 변하면서 몰입이 시작되었고 특히 후반부 “헬레네의 추방”은 드디어 필사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혀 모르는 도시와 자연과 사람들에 대한, 사적인 깊은 감정과 경험이 배인 묘사보다는 차라리 전쟁이 파괴한 것들이나 당대 작가의 위상 등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느 정도의 보편적 추론이 가능한 시사적인 주제를 다룬 글들이 훨씬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다소 주리를 틀며 지나왔지만 중반부까지의 지난한 독서로 나름의 적응 궤도에 오른 후 마주한, 덜 추상적인 글의 지도에 머릿속이 환해진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갈구, 명징, 약동, 작열’ 같은 단어들이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든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결국엔 괜찮은 읽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카프카의 모든 예술은 독자에게 다시 읽게 만드는 것”이라는 카뮈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 ‘옮긴이의 말’처럼 문득 떠오를 때 들춰보면 마음에 박히는 문장들이 반가울 책인 것 같고, 그러라고 이렇게나 공들인 표지와 편집으로 만든 것 같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에 자리하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는, 프란츠 파농이 독립 혁명을 위해 활동한 나라라는 정도가 아는 것의 전부인 알제리에 대한 거리감은 책을 읽은 후에도 물심양면 그대로 남았다. 외국 작가가 쓴 어떤 글이든 배경 장소에 방문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작가의 사유만큼이나 ‘그 시절의 장소성’이 절대적인 책이라는 느낌이어서 더욱 그런 듯하다. 어릴 적 다이제스트로 접한 [이방인]과 작가를 수식하는 ‘부조리’라는 표현의 강력함 때문에, [페스트]를 흥미롭게 읽은 후에도 남아 있던 무겁고 심각한 카뮈의 이미지를 새롭게 환기한 독서였다.
부제로 붙은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문구와 책 소개를 보고 재미있게 읽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이전 독서가 선사한 흥미진진한 충만감 때문인지 읽기 시작할 때 적잖은 기대감이 일렁였는데 그런 마음은 중반부에 이르기 전에 사라졌다. 생물학과 지질학 등 과학 연구자인 저자 호프 자런의 삶과 일, 관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그보다 훨씬 뜨겁지만 덜 정제된 느낌이었고 때로 그가 하는 일만큼이나 커다란 끈기를 요구하는 읽기였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일의 경험을 필요에 따라 매우 구체적이거나 혹은 듬성듬성하게 시간순으로 서술하면서 연구 대상인 식물 세계와 연결한다. 겨울이 긴 미네소타의 작은 마을에서 북유럽 이민자의 후손으로 보낸 어린 시절과 대학 진학 이후의 독립적인 삶, 실험실을 주요 무대로 보낸 청년기와 결혼과 육아, 박사 과정부터 함께한 빌과의 만남과 이란성 쌍생아라고 묘사할 만큼의 오랜 파트너십 등 자전적 일대기가 글의 한 축을 담당한다. 실험실과 연구 과정에 대한 세밀화 같은 묘사들, 전쟁이나 우주 과학 분야와 비교할 때 규모가 작고 언제나 부족한 식물 관련 예산과 재정 확보 문제, 학계에 만연한 성차별 등 자신이 속하고 경험한 과학계의 크고 작은 면모가 다른 한 축이다. 전공 분야인 나무와 땅에 관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연구 과정에서의 깨달음, 식물의 생장과 생존 방식을 인간의 삶에 투영할 때 갖는 의미들이 더불어 서술된다.
저자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인물이다. 문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해서 네 아이를 낳아 기른, ‘늘 화가 나 있는’ 엄마와 함께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문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쳤다.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전문대학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와 함께 실험실에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에서 나름의 따스함을 묻어나는 데 반해, 책을 헌정한 엄마와의 유대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려나 부모와 그들이 만든 환경에서 형성된 저자의 특성이 글을 쓰는 과학자로 살아가는 토대가 되고, 훗날 빌의 당부와 만나 이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대학 시절까지를 다룬 1부가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잘 읽혔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며 만난, 근무 시작 전 담배 세 갑을 몰아 피우고 기계처럼 일한 밤 퇴근할 때면 여직원들을 집까지 데려다주는 리디아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단편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던 저자가 학부 논문 주제인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카퍼필드]에 나오는 구절들을,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만나는 인물에 빗대는 부분은 그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적절하게 느껴졌고 흥미로웠다.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저자의 솜씨가 마음에 들었고 이후가 기대됐지만, 중반부 이후의 전개에서는 전체적으로 TMI가 많고 산만한 데다 장황한 느낌이 자주 들었다. 저자의 일상과 식물 세계의 원리를 나란히 서술하는 데에서 때로 연결고리가 허약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전반적인 구성이 불균형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아쉬웠다.
초반에 서술된 어린 시절이 그렇게 어둡거나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중반부 이후 늘 조울증에 시달리고 때로 광기에 휩싸이며 온갖 불운한 상상이 함께했던 과거가 당위적 전제처럼 등장해 미처 예상치 못했던 거리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가장 극단적인 서술이 연관되는 부분은 미시시피 강변의 덩굴옻나무 연구 과정에서 얻은 급성 알러지 치료약 후유증이나 임신으로 평소 복용하던 약을 끊은 상황에 기인한 것이었으니 이해하고 싶었지만, 마치 초면인 사람이 불쑥 자기 힘든 이야기를 쏟아 붓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즈음부터 내게는 글도 인물도 좀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그런 서술 방식을 통해 당시 느꼈던 기진맥진함과 숨 막힘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한 거라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머릿속에 늘 생각이 많고 어떤 상황에서든 관련된 다양한 상상이나 회상, 공상 등이 뇌리에 떠오르는 스타일의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런 상상들까지 집요하게 기술하거나 별로 와 닿지 않는 비유 혹은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수식어를 붙인 문장들이 중반 이후 자주 의식됐다. 사소한 모든 것까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거의 편집증에 가까운 과정을 수십 년간 집요하게 반복하면서 강화된 성향이 글에도 반영된 것일까 싶기도 했다. 하여, 1부 마지막에 등장해 저자와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친밀성을 나누는 빌이 내게는 고마운 존재였다. 저자에 의해 형상화되고 기록된 모습이지만 말이 별로 없고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궁금해 할 여지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1월의 모임 책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야만 했고, 민망하지만 본문 전반에 걸쳐 빌드업되는 빌과 저자의 관계가 독서를 끌어가는 하나의 힘으로 작용했다. 20대 중반부터 내내 붙어 지내며 빌과의 이성애적인 교감이나 일방적이었더라도 감정의 파고 같은 것이 한 번도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간헐적으로 그런 가능성을 예측할 만한 서술이 존재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빌에 대한 감정은 이성애를 제외한 사랑과 우정, 의존, 지지 등 한 인간이 타인에게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긍정적인 감정의 총합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단지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도 얼핏 그린라이트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생략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저자에 대한 빌의 감정은 알 수 없고, 보편적이고 익숙한 감정의 토대 위에서 글을 전개하는 게 극적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관계 맺기이기 때문에, 힘겹게 읽은 만큼의 관계는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구절절 쓴 만큼 별로이기만 한 건 아니긴 했다. 저자의 성향, 식물에 대해 알려진 지식들, 빌과 저자의 관계, 과학과 일의 세계 등 서술되는 모든 면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불규칙하다 못해 일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지는 실험실 생활에 대한 묘사들은, 저자의 학문적 성취와 위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젊은 날의 오랜 불안과 방황과 치열함이 뒤섞여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크게 영감을 받는 이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치열하게 해나가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치열하게 할 수 있는 만큼 밀고 나갔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세계에 매진하는 이야기가 내게는 멋있기보다 도저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저자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금세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전혀 몰랐던 식물 세계의 인상적인 단편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도 적어둔다.
[파리 스케치]를 읽고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알게 된, 헤밍웨이의 첫 번째 아내 해들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시를 전공한 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 폴라 매클레인이 헤밍웨이의 책에서 “해들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구절을 발견한 후 해들리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다가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책 말미 ‘저자의 말’에는 “그들의 삶을 최대한 정확하게 재현해내는 데 만전을 기울였다”는 말과 함께 참고한 도서와 자료의 긴 목록이 나열된다. 제목처럼 ‘파리의 아내’ 시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작지 않은 판형에 500쪽에 이르는 분량 속에 헤밍웨이의 글에서는 알 수 없었던 해들리의 어린 시절, 헤밍웨이와의 만남과 결혼, 파리 생활, 기묘하고 지난한 이혼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먼 훗날 헤밍웨이의 죽음과 관련된 부분이 ‘에필로그’에 담겨 있다.
몇 장의 흑백사진들로 시작되는 책은 본문에 앞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말을 새겨 놓았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가 당신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서 빼앗아가지 않고 남긴 것이다. - 거트루드 스타인”, “단 한 가지 진실이란 없다. 모두가 진실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어 “파리는 대책이 없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에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1920년대 파리의 풍경, 아들 범비와 함께 돌아온 파리에서의 가난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일상 그리고 시류에 맞지 않는 결혼 생활에 대한 당시의 믿음과 그 모든 것을 끝내게 만든 “나중에 등장해 모든 것을 망쳐놓을 그 아가씨”에 대한 짧은 언급이 담겨 있다. 작가는 해들리를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다. 3인칭 해들리에 대한 글을 읽은 직후여선지, 다른 사람이 빙의라도 한듯 ‘내가’, ‘우리가’라고 말하는 문장을 읽자니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읽다 보니 적응이 됐다.
해들리는 세인트루이스 출신으로 어렸을 때 다리를 크게 다친 후 원치 않는 과잉보호 속에 성장했다. 잘 회복해 문제가 없었지만 자신을 가엾은 존재로 여기며 언니와 차별하는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아픈 척하는 일이 잦았다. 엄마는 충고와 비판을 달고 사는 집안의 지배자였고, 밖으로만 돌던 아빠는 어느 날 지하실에서 총기로 자살했다. 아빠의 죽음 이후 우울감에 시달리던 해들리는 잦은 결석으로 동기들보다 1년 늦게 학교를 졸업한 뒤 이모가 사는 필라델피아의 브린 마 대학에 진학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한다. 대학에 입학한 여름 큰 언니가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지병이 있던 엄마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자 해들리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돌보고 임종을 지킨다. 친할아버지는 공립도서관과 제약회사, 외할아버지는 학원과 사립 고등학교 설립자였던 건전하고 모범적인 청교도 집안의 후손이었지만 해들리는 이십대 후반에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 가족의 그늘 아래 자신의 가능성이나 미래를 접어둔 채 살아가는 ‘노처녀’였다.
헤밍웨이와 해들리가 처음 만난 건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얼마 후다. 절친 케이트와 함께 그의 동생 켄리가 사는 시카고로 여행을 떠난 해들리는 밤마다 열리는 파티에서, 켄리의 아파트에 세든 헤밍웨이를 알게 된다. 29살의 해들리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듯 사교계와 연애 경험이 없고 자신의 외적 매력도 잘 모르는 수수한 여성이었고, 7살 연하의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작가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자신만만하고 열정적인 청년이었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해들리가 집으로 돌아간 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고, 1921년 결혼해 시카고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언론사 기고를 그만두고 창작에 매진하며 때로 부상 트라우마와 우울에 시달리던 헤밍웨이의 작품을 검토한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의 작가 셔우드 앤더슨이 관심을 갖는다. 낯선 가난에 적응하며 불안정한 헤밍웨이를 돕는 데에 집중하던 해들리에게는 돌아가신 외삼촌이 팔천 달러의 유산을 남긴다. 오랜 유럽 여행을 다녀온 셔우드 앤더슨이 전하는 파리 생활 정보와 “검증은 안 됐지만 언론계 너머로 지평을 넓힐 수 있을 만큼 ‘비범한 재능’을 갖춘 상당히 젊고 훌륭한 신문기자”라는 헤밍웨이에 대한 소개장을 안고, 두 사람은 1921년 12월 파리로 떠난다.
파리로 이주한 이후의 생활 부분에서는 헤밍웨이의 글에서보다 많은 주요 인물이 등장하고 여러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셔우드 앤더슨의 소개장 덕분에 교류하게 된 예의 유명 인사들은 물론, 스위스와 스페인 등지로 떠난 몇 차례의 여행에서 만나거나 함께했던 지인들, 헤밍웨이는 싫어했지만 해들리에게는 중요한 친구였던 키티, 두 사람 모두에게 다정하고 특별한 친구였지만 부부관계 파탄의 주인공이 되는 폴린 등 대부분이 파리의 문화예술계와 사교계에서 화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두 사람만의 일상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싸움과 인상적인 에피소드, 해들리가 리옹역에서 헤밍웨이의 원고들을 잃어버린 일의 전말, 모든 것을 철저히 기록하고 관리하던 헤밍웨이가 생리주기까지 따져가며 막으려 했던 해들리의 임신, 혹독한 파리의 겨울을 피하고 당시 최고 수준이었던 병원에서 범비를 출산하기 위해 감행한 캐나다행과 계획보다 이른 파리 귀환, 헤밍웨이와 폴린의 불륜과 그 사실이 알려진 후 예정대로 강행한 지인들과의 스페인행, 폴린까지 합세해 세 사람이 함께한 기묘한 날들과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 등의 기록은 [파리 스케치]에 대한 답장이자 긴 주석 같기도 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배어 나왔던 깊은 회한을 떠올리게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초반에 느꼈던 1인칭 서술의 거북함이 사라지고, 헤밍웨이와 해들리의 내면과 외면을 아우르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읽었다. 헤밍웨이의 글에서는 간략히 다뤄졌거나 누락되었던 정황의 세부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많았고, 헤밍웨이의 입장에서 기록된 사건과 현상에 대한 다른 관점이 드러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물론 결말을 알고 있는 자의 과도한 암시나 복선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있어서, 너무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거 아닌가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것만큼이나 시대상에 대한 설명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과거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의 오래 전 회상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져 생략하거나 염두에 둘 수 없는 시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간 세상에 나온 많은 자료들을 참조한 2010년대의 저자가 현재적 시점에서 구현해낸 과거가 알려주는 사실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다른 맥락이지만 [스토너]를 읽으며 이디스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서사가 있었다면 했던 마음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소 호사가스러운 관심에서 선택한 책이었지만 어떤 표준이 수립되기 이전의 세계와 인물이 선사하는 향수를 전해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