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1. 12. 7. 18:11

 

 

어릴 적 접하며 빠져든 것에는 소위 ‘계보’가 있었다. 그 속에서 몰랐던 세계를 하나씩 만나는 느낌은 뭔가 차근차근 쌓여가는 정돈된 안정감을 선사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성인이 된 후 ‘포스트모던’의 폭발과 함께 음악도 책도 따라갈 계보를 잃고 좀은 멍한 상태가 되어 뒤늦게 깨달은 바였다. 계보가 꼭 필요했는지 묻는다면, 게으르고 주체적이지 못한 탐색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궤도를 벗어난 낯선 선택으로 인한 실패의 가능성을 피하고 싶었고 어떤 권위 속에서 지성과 취향의 안전한 오두막을 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떤 흐름을 따라가며 만난 세계가 나의 감성에 아주 잘 맞는다는 걸 거듭 확인한 경험 때문이었다. 


일찍이 하덕규 님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했지만, 저마다 제 속에 지닌 너무 많은 나들이 존재하는 채로 언젠가부터 너무 많은 ‘나’들의 이야기가 범람하고 있다고 느꼈다. 개별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로서의 ‘나’를 누구나 보유하고 있고 그 나들은 또 수많은 나들의 집합이니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나들이 있는 것인가. 당연한 사실임에도 나는 어지럽다고 느꼈던 것 같다. 수많은 나들이 모두 궁금하지는 않았고 어떤 정제된 상태, 그러니까 꼭 계보는 아니더라도 내가 반색하며 수용할 만한 나들이 어디엔가 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가당치도 않은 바람을 가졌던 것 같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목소리를 내는(이라는 말 뒤에 존재하는 이들 역시 있겠으나) 세상이 도래하고 등장한 수많은 글들이 나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누구나 가진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은 욕망은 당연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 텐데, 나는 그런 세태 자체를 부담스럽고 소란하다고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왜였을까? 이 책은 마음의 문을 꾹 닫고 편협한 나만의 세계에 안주하고픈 욕망과 그럼에도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미련 사이에서 매일 서성이는 스스로를, 나는 왜 아무도 찾지 않는 블로그를 놓지 못하고 '나만을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무언가를 적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질문하게 만들었다. 

‘자격’으로 시작해서 ‘자격’으로 끝나는, 그러나 자격 없음에 대하여, 아니 자격이라는 단어의 관습과 무게를 휘발시키고 쓰는, 그리고 하는 내가 된 과정과 방법에 대해 기록하고 손 내미는 책이었다. 난생처음 알게 된 한 사람이 지나온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너무 많이' 자신을 내보이면서도 먼저 웃거나 울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이 인상적이었다. 나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은 없는데, 그럼에도 왜 나는 무언가를 쓴다는 걸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새삼 생각해본다. 오래 전, 일과 관련된 참혹한 현장에서 허우적거리다 돌아와 한 권의 책을 읽고 놀랍게 환기되었던 마음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표지 그림의 조명이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를 보며 책을 읽은 후 내 마음 같다고 느꼈다.  
 


홍승은
2020.1.30.초판1쇄 2020.6.15.초판4쇄 발행, 어크로스출판그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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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